벗님들께 보내는 편지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사랑하고 존경하는 벗님 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성삼일(聖三日) 첫 날 ‘주님만찬 성 목요일’입니다. 뉴욕의 코로나 사태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고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쿠오모 주지사는 오늘 뉴욕주 확진자가 16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가 7천 명을 뛰어넘었다며 9.11 사태 당시 뉴욕주민 사망자 2천3백여 명과 비교했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뉴욕의 의료체계는 완전 붕괴(崩壞)되었습니다. 제가 한 두 번 이용했던 종합병원과 긴급진료센타에서 잇달아 문자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몸에 이상이 있어도 오지 말고 가정의와 상담해 집에서 치료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의도 대부분 휴업해 자가 치료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저의 아내 율리아나가 열흘 전부터 코로나 비슷한 증세를 보여 집에 누워있습니다. 큰 아들이 카운티 정부에서 하는 검사소에 간신히 시간을 배당 받아주었습니다. 존스비치 해안가에 있는 드라이브스루 검사소입니다.

 

아침 9시 예약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했는데 차량행렬이 늘어서 있습니다. 신분증과 예약번호 대조하고 몇 백 미터 떨어진 검사소에 도착해 다시 신분검사 마치고 기다리다 검사라인에 들어서니 방역복 차림 봉사자들이 창문을 못 열게 하고 창문 틈으로 화장지를 넣어줍니다. 그것으로 코 속을 닦아달라는 것입니다. 다시 창문을 5센티 정도 내리게 하고 이번에는 긴 면봉을 코에 넣다 빼더니 그것을 봉투에 담아 인적사항을 써 붙이고는 끝났다고 가라고 합니다.

 

이틀 후 인터넷으로 결과를 조회해 보라고 해서 다소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조회하니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음성’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열흘째 누워있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다행히 목이 불편하고 기침만 조금날 뿐 크게 아픈 곳은 없지만 아내가 양성으로 나오면 검사하려고 했는데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뉴욕정부 공식발표보다 훨씬 많은 환자들이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것은 검사절차가 간단하지 않고 의료체계가 붕괴된데 원인이 있습니다. 어제는 성당교우 장의사 사장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밀려드는 사망자를 감당할 수 없어 더 이상 사망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주로 한인동포들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한인들이 주로 있는 요양원에서 15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교회 목사님들도 여러 명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관(棺)을 구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관은 하나도 없고 서민들로서는 꿈꾸지 못하는 무척 비싼 관들만 몇 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조객들도 가족 외에는 오지 않고 영구차도 한정이라 미니밴으로 시신을 옮기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묘지로 향하는 망자는 그래도 다행입니다. TV에는 대형 냉동차에 부대에 담긴 시신들이 수 십구 들어찬 광경도 보도됩니다. 화장장도 24시간 가동해도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도 2곳의 장의사가 있는데 모두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죽은 사람이야 모른다 해도 가족들의 마음은 어떨지 참으로 안타까운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의료체계가 붕괴되어 병이 나도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방법뿐이라는 생각에 오늘은 약국을 다니며 비상약을 구입했습니다. 타이레놀과 손 소독제, 마스크는 구할 방법이 없어 조금 있는 것을 아껴 쓰기로 하고 일반 감기약과 지사제 등을 구해놓았습니다. 약국과 식품점이 영업해 다행이지만 공급되는 물건은 다양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제가 가끔 들르는 가까운 곳에 있는 한국식품점은 밖에 줄을 매놓고 ‘당분간 휴업’ 싸인을 붙이고 문을 닫았습니다. 문 닫기 전에도 직원들이 코로나 발병으로 하나 둘 씩 나오지 않아 8개 캐쉬대 중 한 군데만 열고 영업했었습니다. 이제는 당분간 한국음식은 맛보기 힘들게 생겼습니다.

 

또 오늘은 뉴욕의 대형교회 목사님이 역시 코로나로 숨을 거두었는데 장례식도 할 수 없다는 소식입니다. 전쟁터 같은 뉴욕의 코로나지옥의 어둠은 더욱 짙어가고 있습니다. “This too shall pass"(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씀을 위로로 삼고 지나갈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내일 성 금요일에는 나 홀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다짐하면서 ”일어나소서, 주여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소서, 우리를 영영 버리지 마옵소서.“(시편 43)하며 소리치면서 주님께 대들고 싶은 하루입니다. 다시 소식을 드리겠습니다.

 

 

2020년 4월9일

 

뉴욕에서 장기풍 드림

 

 

장기풍 칼럼니스트.jpg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 무덤의 배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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