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로창현 칼럼니스트

 

 

작품상 수상으로 아카데미를 오로지 ‘기생충 잔치’로 만든 9일(미국 시간) 뉴욕타임스는 인터넷판 프런트면에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 등 제작진 출연진이 무대에서 기뻐하는 사진을 올리고 ‘Parasite’ Makes Oscar History With Best Picture Win(기생충 작품상 오스카 역사를 만들다)’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기생충’에게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며 그동안 오스카가 백인과 남성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딛고 외국어 영화로는 사상 처음 작품상을 수상했다고 긴급 타전했습니다. 기생충이 한국영화는 물론, 오스카의 역사를 바꿨다는 것은 물론 과장(誇張)이 아닙니다.

 

92년 역사의 오스카는 오랫동안 ‘그들만의 리그’라는 철옹성이었습니다. 미국과 일부 영어권 국가외에는 끼어들 틈이 없는 잔치였고 그들 내부에서도 여성과 유색인종에게는 자리를 내주지 않아 사실상 ‘미국 백인 마초들’의 독무대였지요.

 

지난 92년간 남우주연상을 받은 흑인배우는 1964년 시드니 포이티어 등 달랑 네 명이고 여성 흑인배우가 오스카를 수상한 것은 2002년 ‘몬스터 볼’의 할리 베리가 최초였습니다. 당시 할리 베리가 울먹이면서 역대 흑인여배우들의 이름을 부르며 “마침내 (흑인여배우에게도) 오스카의 문이 열렸다”며 격정적인 수상 소감을 토하던 기억이 뇌리에 남네요..

 

하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여성이 감독상 후보로 오른 것은 지금까지 5명에 불과하고 2010년 ‘허트 로커’의 캐슬린 비글로우가 유일한 수상자입니다

 

2015년과 2016년 ‘오스카쏘우화이트’(#OscarsSoWhite)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는 등 아카데미의 인종과 성차별적 관행에 반대하는 압력이 거세게 일어난 것도 그때문입니다.

 

그덕인지 2017년엔 흑인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문라이트’가 작품상을 안았고 2019년엔 흑인음악가와 이탈리아 이민지의 이야기 ‘그린 북’이 작품상을 받았지요.

 

아카데미는 특히 지난해부터 투표권을 가진 아카데미 회원들을 59개국 842명에게 개방해 후보 작품의 다양성을 높이려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해도 아시아 영화, 여전히 세계영화계의 변방이라 할 한국 영화가 수상은 고사하고 후보로 초청되는 것 조차 쉽지 않은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기생충이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기생충은 지난해 칸느의 ‘황금종려상’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상을 휩쓸고, 아카데미 전초전이라 할 골든글러브 상, 배우조합상, 내친 김에 영국아카데미까지 석권함으로써 오스카의 영광을 차지할지 초미(焦眉)의 관심사 였습니다.

 

무려 6개 후보에 올랐지만 미국 배우는 단 한명도 없이 오직 한국어로 전개되는 영화가 과연 오스카를 수상할 수 있을지 의구심은 남았습니다. 미국 관객들은 체질적으로(?) 영어자막 읽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해하니까요..

 

그러나 일반의 예상을 깨고 기생충은 하이라이트라 할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과 외국어영화상(국제영화상)을 쓸어담는 괴력을 발휘했습니다. 명실공히 101년 한국영화의 기적과도 같은 쾌거입니다.    

 

아시아계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것은 대만 출신 리안 감독이 ‘브로크백 마운틴’(2006) ‘라이프 오브 파이’(2013)로 두 차례 수상한 적이 있지만 할리우드가 제작한 미국 영화라는 점에서 기생충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한가지 아쉬움은 기생충 수상에 너무 취한 나머지 아카데미상 단편다큐 후보로 오른 우리 작품을 너무 소홀히 한 것입니다.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 말입니다.

 

‘부재의 기억’은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의 아픔을 다룬 영화입니다. 기존 다큐의 정형화된형식을 따르지 않고 참사 현장의 영상과 통화 기록을 중심으로 2014년 4월 16일의 구조를 방기(放棄)한 국가의 부재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그 날 그 바다에 우리가 믿었던 국가는 없었다는 사실을 아프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사본 -KakaoTalk_Photo_20200210_2032_38062.jpg

 

 

‘부재의 기억’은 지난 2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사회와 간담회를 열고 현지 동포등 관계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는데요.

 

이날 시상식에 이승준 감독은 세월호 유족 단원고 장준형 군 어머니 오현주 씨와 김건우 군 어머니 김미나 씨와 동행했는데요. 비록 수상을 놓치긴 했지만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큰 결실이라는 점에서 아직도 현재 진행인 세월호 진실이 밝혀지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올해 아카데미에선 음악상에 여성작곡가 힐더 구나도티어가 ‘조커’로 수상했는데 이는 22년 연속 남성작곡가의 아성을 뚫는 기록이기도 했습니다.

 

기생충이 오스카의 마지막 벽을 무너뜨렸으니 언젠가는 한국 배우와 여성 감독과 미술감독과 음악감독이 차례로 오스카의 영광을 차지하기를 바랍니다.

 

 

사족(蛇足) : 봉 감독이 이날 수상소감을 많이 해서 작품상때는 일부러 멀찌감치 있던데 청중들이 위트 넘치는 소감을 듣고 싶어 계속 연호하는 모습이었는데요..봉 감독이 뒷전에 있는 덕에 투자자/책임프로듀서인 CJ그룹 부회장이 엄청 오래 말하더군요..잔치날이니 좋게 이해는 하지만 자기소리 줄이고 배우들한테 마이크 돌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솔직히 막강한 자금과 배급권을 장악한 재벌들이 유명감독을 통해 돈도 벌고 명예도 얻는 모습이 곱게 보이지 않습니다. 봉 감독과 한국 영화의 영광은 분명 대단한 결실이지만 그들로 인해 그늘속에 있는 한국 영화들의 어려움 또한 조명되야 합니다. 재벌기업의 투자 영화들로 인해 군소제작자 영화나 작품성 높은 독립영화들이 개봉관을 잡지 못하고 며칠 상영하다가 내려지는 문제는 분명 개선되야 합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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