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한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소식에 정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논란이 뜨겁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도 그런 얘기가 적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시도가 노골화되고 있다. 교육부는 9월 ‘2015개정 교육과정’ 고시 일정에 맞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여부를 결정한다. 이에 앞서 지난 7월 30일 ‘교과용도서 개발체제 개선방안’을 통해 검정교과서 통과 절차를 더욱 엄격하게 정비했다. 교과서 발행제도가 개방형에서 국가주도형으로 돌아가고 있다.



정부 여당도 소리를 높이는 모양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대놓고 ‘긍정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며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로 추켜세우는가 하면 1948년 8월의 정부수립을 ‘건국’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개적으로 올해를 ‘건국 67주년’이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한국사 국정화의 배경은 이런 인식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항일투쟁사를 지워버리고 또 갈라진 북녘의 역사도 제거해 버리고 이승만 정부를 대한민국 시원(始原)으로 하는 반쪽 역사를 정치권력으로 강제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교과서 발행제도는 크게 국정제, 검·인정제, 자유발행제로 구분된다. 지난 ‘2010 교과서 선진화 방안’에 따라 인정도서를 대폭 확대하며 개방성을 늘려가고 있는 추세고 선진국들은 한발 더 나아가 자유발행제를 지향하여 민간이 주도하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과서로 확대해가고 있다. 우리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1974년 시행되었다가 그 후 국정제는 단계적으로 폐지수순을 밟았다. 그리고 지난 ‘2007개정 교육과정’에 의해 완전히 폐지되었다.



이승만 정부에 대한 평가를 여기서 논할 바는 아니다. 다만 살아있는 현대정치사를 특정 정치권력에 의해 특정한 방향으로 강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뜻이다. 이런 식의 행태가 이뤄진다면 앞으로 권력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권력에 의해 새로운 한국사 국정교과서가 발행돼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질 뿐이다. 게다가 선진국의 사례를 봐도 국사 교과서를 정부나 정치권력이 관장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역사적 해석의 다양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만 왜 거꾸로 가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급기야 서울대학교의 역사 관련 5개학과 교수 34명이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 2255명도 반대 입장을 주장했다. 놀랄 일이 아니다. 한국사를 국정화하겠다는 데 조금이라도 양심 있는 학자나 교사라면 누가 거기에 동의하겠는가. 



관변 학자들을 끌어 모아 권력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왜곡하고 재단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그렇잖아도 친일 후예들의 망언이 최근 도를 넘어서고 있다. 물론 그들은 ‘친일의 후손’이라는 것이 큰 짐이 될 것이다. 항일투쟁과 민주화의 역사적 의미가 강조될수록 그들의 입지는 줄어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그들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역사는 특정 권력, 특정 세력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사 국정화에 반대하는 교사들은 “정부가 공인한 하나의 역사 해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결과를 가져올 국정 교과서는 역사교육의 본질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너무도 당연하고 올바른 지적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강하게 비판하는 우리다. 그런데 우리마저 정치권력으로 현대사를 장악하려 한다면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되겠는가. 정치권력이 자중해야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교과서 발행의 국정, 검·인정 문제는 교육에 대한 궁극적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는 근본 문제에서 출발한다. 어떤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의 중심을 개인의 선택에 맡기느냐, 사회화에 두느냐에 따라 교육목적 설정, 교육과정 체계, 교과서 제도, 학력평가 방식 등은 차이가 난다.



교육계가 개개인의 자율과 선택을 중시하는 학생중심교육으로 꾸준히 흐름을 바꾸어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것은 교육의 가치에 대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일이며, 이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다음으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역사에 있어 다양성을 배제하고 획일적인 역사관을 교육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다양한 상상과 탐구, 검증, 평가를 통해 역사인식을 길러야 하는 역사교육의 본질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다. 역사 공부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개개인의 관점에서 자신만의 역사관을 쌓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견해를 수용하며 비판적 사고를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길러가는 과목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학설을 소개할 수 있는 다양한 교과서가 필요함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한국사 교과서 문제는 정치적 논리가 아닌 교육의 논리로 풀어야 한다. 아이들을 다양한 역사관을 갖는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키워내고 싶다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중단되어야 한다.



<유럽 19개국에 배포되는 유로저널 사설  www.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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