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복권소설’
뉴스로=이계선 작가
1979년 10월 26일. 오후 6시 30분에 나동 안가에서 대행사가 있는 날이다. 김재규정보부장은 4시 30분에 도착하여 행사장을 살펴봤다. 예행연습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화로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대장을 불렀다.
"정총장, 나 김재규입니다. 혹시 시간되시오? 오후 6시 30분까지 궁정동 안가로 오셔서 식사나 같이 합시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승화가 도착하자 김재규는 안가(安家) 가동(棟)으로 안내하면서 양해를 구했다.
"내가 대통령각하와 잠시 의논할일을 끝내고 와야겠습니다. 그동안 정총장은 우리 김정섭 2차장보와 술을 드시면서 기다려주십시오."
"걱정 마시오. 그리하고 있을 테니 김부장은 어서 다녀오시오."
김재규는 다시 궁정동 나동안가로 들어간다. 대통령비서실장 김계원이 먼저와 있었다. 김재규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님, 아무래도 오늘밤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차지철 그놈의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 될것 같소."
김재규보다 세 살이 위인 김계원은 경북 영주출신이다.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하여 김재규는 김계원을 형님이라 불렀다. 육사를 나와 육군참모총장 중앙정보부장 자유중국대사를 지냈다. 놀고 있는 걸 김재규가 천거하여 대통령비서실장이 됐다. 외모처럼 언행이 가지런한 외유내강 형이다. 교회장로이지만 두주불사(斗酒不辭)로 말술을 즐겼다. 박정희대통령의 술친구다.
김계원은 김재규가 졸업한 안동농림학교 선배였다. 시골학교인데도 안동농림고등학교에서는 별들이 많이 나왔다. 특전사령관 정병주소장도 김재규의 후배다. 모두 육사를 나온 장군들이다. 김계원은 대장, 김재규는 중장으로 퇴역한 육사출신인 것이다. 두 사람에게 차지철은 한참 아니꼬웠다. 차지철은 물방개처럼 청와대를 헤집고 다녔다. 차지철은 육사가 아닌 간보후보생 중령출신이다. 나이도 김재규보다 여덟 살이나 아래다.
차지철은 경호실장이 되자 사자등위에 올라탄 여우(狐假虎威)처럼 월권을 휘둘렀다. 자신은 중령출신이면서 부하차장자리에 중장을 앉혔다. 그가 경호실차장 이재전중장이다. 경호실의 권력을 증대시키고자, 나치의 친위대를 본떠 경호대를 군사 조직화시켰다. 각종 의전행사에서 경호대원들에게 특이한 복장을 입혀서 출연시켰다. 자신이 별개의 군대를 지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쇼맨십에 능한 인물이었다. 청와대에서 각 종 무술시범이나 사격대회를 개최하여 박정희의 환심을 샀다.
차지철의 악명을 날리게 한건 국기하기식이다. 국기하기식 제도를 만들어 청와대 마당에서 의장대사열을 받았다. 청와대 하기식은 독재자 히틀러를 방불케 했다. 경호대원들에게 히틀러 친위대를 연상케 하는 특이한 복장을 입혀 청와대 앞마당을 돌게 했다. 부총리 장관 장군들을 불러 참관케 하고 자신은 높은 상석에 올라 사열을 받았다. 부름 받은 장관들은 하나같이 뒤에서 욕을 했다. 그러면서도 차지철이 부르면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경호실이 있는데 “대통령경호위원회“라는 옥상옥(屋上屋)을 만들었다. 위원은 중앙정보부장 국방부장관 내무부장관 검찰총장 치안본부장 육해공 삼군참모총장으로 하고 경호실장 스스로 위원장이 됐다.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공문은 독약조사를 한다는 핑계로 사전에 검열했다. 경호실을 거치지 않고는 누구도 대통령면담이 불가능했다. 대통령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狐假虎威)를 즐기는 차지철의 월권과 만행은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얼마나 방약무인(傍若無人) 했던지 맘에 안 드는 장관들은 불러서 구둣발로 정강이를 까기도 했다. 겨우 경찰서장급인 청와대경호실장이 소통령(小統領)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소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이다. 대통령(代統領).
KBS 자료 화면 캡처
차지철이 원래 그렇지는 안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차지철은 형제들과 성이 달랐다. 형들은 지씨인데 그는 차씨다. 지씨 남편과 사별한 어머니가 차씨에게 재가하여 차지철을 낳았기 때문이다. 용산고등학교를 다닌걸 보면 그렇게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53년 육사시험에서 떨어진다. 간부후보생으로 장교가 된 후 열심 충성하여 박정희의 호위무사가 된다. 박정희의 후광을 업고 국회의원을 연임하면서 외무위원장까지 지낸다. 그때까지는 싹싹하고 예절 바른 젊은 국회의원이었다.
1963년 국민대학 정치학사, 1964년 한양대학 정치학석사, 1965년 한약대학정치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학사1년 석사1년 박사1년. 학위 받는데 겨우 1년이면 됐다. 아인슈타인을 능가하는 천재머리다. 그러나 그는 육사입학시험에도 떨어진 둔재다. 청와대에서 배운 권모술수로 학위를 따낸 것이다. 모두가 엉터리 학위인 것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독실한 교회장로였다. 어머니 김대안권사가 차지철이 죽은 후에 “내 아들 차지철은...”이란 회한록(悔恨錄)을 펴냈다. 차지철은 예수님, 박정희, 어머니밖에 모르는 애국자 크리스천이었다고 그녀는 회고했다. 그런데 예수를 너무 잘 믿은 게 탈이었다. 박정희를 예수로 생각해 버린 것이다. 한국의 구세주 박정희, 한국의 메시아 박정희. 박정희는 예수이기에 엽색을 즐겨도 부일장학회 재산을 뺏어도 죄가 아니다. 박정희는 신이니까. 차지철은 그렇게 박정희교의 광신도가 돼 버린 것이었다. 누구하나 차지철의 오만과 월권을 지적하지 못했다. 워낙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후한 말 한나라황제는 환관(宦官) 십상시의 달콤한 아첨에 넘어가 눈과 귀가 멀어 버렸다. 결국 나라를 망친다. 차지철이 대통령에게 그렇게 했다. 인의 장막을 쳐놓고 간신배처럼 아첨하면서 대통령의 환심을 파고들었다. 박정희교의 광신도가 되어 날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육사장군출신인 김계원이나 김재규가 싫어할 수밖에. 오늘밤 차지철을 단단히 응징합시다. 김재규의 말을 들은 김계원은 뭐가 우스운지 낄낄거렸다.
“흐흐흐 김부장 말이 맞아. 오늘밤 차지철 그놈아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자구.”
그때 차지철의 안내를 받으면서 대통령일행이 들이닥쳤다.
“각하께서 오셨습니다. 모두 연회장으로 들어갑시다”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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