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복권 소설' 연재
뉴스로=이계선 작가
박정희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핍박을 받아서 그런지 태어 날 때부터 한이 맺혀있는 남자다.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이대출신 신여성과 동거를 하지만 여자가 떠나가 버린다. 일본 육사를 나온 엘리트이지만 진급은 뒤쳐진다.
동갑내기 정일권은 별을 네 개나 달고 대장으로 전군을 호령할 때 박정희는 겨우 별 하나짜리 준장이었다. 여순공산당 반란사건때 박정희소령은 두 살 아래 백선엽대령에게 살려달라고 목숨을 구걸해야 했다. 해방이 되어 육사 2기로 입학할 때는 8살 아래 김재규와 입학동기였다. 그러니 자존심 강한 박정희가 얼마나 괴로웠을까?
박정희는 자유당시절부터 쿠데타를 노리는 불만세력이었다. 그가 일으킨 5.16은 정당하지 않았다. 박정희의 쿠데타는 집권욕 이었기 때문이다. 5.16당시 민주당 장면정부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장면정부가 그려놓은 보물섬지도를 빼앗아 보물섬을 찾아 낸 격이다. 박정희정권의 두 바퀴는 경제부흥과 정보정책이다. 둘다 그 비책을 장면정권에서 훔쳐냈다. 장준하가 총책이 되어 마련한 장면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경제발전을 일궈냈다. 장면정부시절 이후락이 마련한 “중앙정보부”기획안을 고스란히 넘겨받아 김종필이 초대중앙정보부장이 됐다.
5.16 거사후 장도영과 함께 선 박정희 www.ko.wikipedia.org
한이 맺혀있는 사람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박정희는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정치인들을 안심 시켜 놓은 후 몰래 공화당을 창당한다. 그리고 불쑥 출마하여 대통령이 됐다. 3선개헌을 하고 대선에 출마한 71년에는 악어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가장 불행한 군인입니다. 이번이 나의 마지막 출마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야당후보 김대중은 주먹으로 하늘을 치면서 포효했다.
“박정희후보의 말씀은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구구절절 맞는 예언이 될겁니다. 역사와 민족을 속인 그가 한말은 그에게 그대로 돌아 올 테니까요. 그리고 그의 말대로 이번대통령선거는 마지막 선거가 될것입니다. 이번에 그가 당선되면 이 나라에 다시는 선거가 없는 영구독재 총통제를 만들테니까요“
박정희의 말도 맞았고 김대중의 말도 맞았다. 박정희는 그 후 얼마 안 있어 가장 불행한 군인이 된다. 8.15경축식장에서 아내가 재일교포 문세광의 총을 맞고 죽는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술자리에서 부하 김재규의 총을 맞고 죽는다. 이보다 더 불행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장군들 중에 박정희처럼 비참하게 죽은 군인은 없다. 김대중을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는 10월 유신으로 영구집권에 들어간다. 그의 말대로 다시는 출마나 선거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박정희는 보리고개를 없애고 경제를 부흥시켰다. 그러나 독재의 길로 가기 위해서 많은 민주인사를 빨갱이로 몰아 처단 했다. 절대독재는 절대 부패한다. 절대부패 한 독재자는 죽을 때까지 독재한다. 그래서 박정희는 18년 독재 끝에 김재규의 총을 맞고 죽었다.
박정희와 그의 아첨배들은 박정희가 아니면 나라가 망하는 줄 생각했다. 박정희가 아니면 경제부흥 못 한다. 박정희가 없으면 북한에게 망한다. 민주주의 하면 나라 망한다. 그래서 10월 유신을 했다. 그러나 박정희가 죽었어도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하는데도 경제는 발전했다. 박정희가 죽을 때인 1979년도 GNP는 1493달러였다. 그런데 박정희가 없는 2013년도 GNP는 23000달러로 늘어났다. 17배로 성장한 것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요 사옹지마(司饔之馬)다. 그래도 인생무상(人生無常)이다. 대통령을 지내고 부귀영화를 누려도 모두 황성옛터로 끝난다. 그래서 박정희는 황성옛터를 좋아한다. 불과 30분후에는 황성옛터로 끝나버릴 자신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한 듯 박정희는 처연하게 황성옛터를 불렀다. 그가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부른 황성옛터. 가사를 적어본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 가엾다. 이내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왔노라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 ~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이 잠 못이뤄/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나는 가리로다. 끝이 없이 이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정처가 없이도
아~ 한없는 이 심사를 가슴속 깊이안고/ 이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거라“
노래가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두 여자가 졸랐다.
“앵콜 앵콜, 각하의 힛트송 황성옛터를 부르셨으니 이번에는 동백아가씨를 불러주세요”
대통령은 자신의 두번째 애창곡인 동백아가씨를 불렀다. 왜색가요라 당시 금지곡이었다. 아내 육영수가 비명에 간후 박정희는 밤마다 동백아가씨를 부르면서 아내를 그리워했다. 아내가 죽은후 박정희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이해할수 없는 모순의 극치를 살고 있었다. 아내가 그리우면 여색을 탐했다. 여색을 탐하면 탐할수록 아내를 더 그리워했다. 그때마다 동백아가씨를 불렀다. 그래서 동백아가씨는 박정희의 두번째 애창곡이다. 박정희가 부르는 동백아가씨.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 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묻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아가씨/ 가신님은 그 언제 그 어느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 오려나“
대통령의 노래가 끝나자 돌려가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차지철은 “도라지”를 군가처럼 불렀다. 신재순은 몸을 비틀어가면서 “나 혼자만이”를 불렀다. 김계원도 한 곡조를 뽑았다. 맨 마지막으로 정보부장 김재규차례가 왔다. 김재규는 뜻밖에도 선구자를 불렀다. 선구자는 반독재투쟁의 노래다. 대학생들과 야당인사들이 유신철폐데모를 하면서 단골로 부르는 노래가 선구자다. 그런 선구자를 정보부장이 부르다니? 우선 들어나 보자.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때/ 사나이 굳은마음 길이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노래하는 김재규의 눈가에 아침이슬이 반짝였다. 대통령은 서운한 눈치였다. 차지철이 대통령의 비위를 맞춰주려고 김재규를 물고 늘어졌다.
“김부장이 갑자기 민주인사가 된 모양이오?”
김재규가 맞받아쳤다.
“민주인사 못될게 뭐가 있소? 대한민국에 민주주의 싫어하는 이가 누가 있소? 딱 한사람이 있긴 하지? 그 한사람이 차지철 경호실장아니오? 한사람 차지철경호실장 말고는 없지 싶지. 우리가 반공을 국시로 내걸고 김일성공산독재와 싸우는 것도 다 민주조국 지키자고 그러는 것 아니겠소?”
대통령이 손을 내저었다.
“자 자 그만들 하고 술 한잔 더 들어. 그리고 정국현안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 보자구. 요즘 부마사태로 시끄러운데, 먼저 도승지가 말해보시오”
대통령비서실장 김계원은 조용하고 속이 깊은 사람이다. 분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각하, 정국현안은 저보다 김재규부장이 먼저 보고하게하고 우리들이 토론하는 게 좋을것 같습니다. 김부장은 거미줄정보망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10월 18일에는 헬리콥터로 부산소요 사태 현장을 직접 답사까지 하고 왔습니다. 현장정보를 분석한 통계야 말로 가장 정확한 데이터입니다”
“그게 좋겠군. 그럼 포도대장이 말해봐“
김재규가 힘을 주어 입을 열었다.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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