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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주요은행들을 통해 하루 수백만 달러의 불법 마약자금이 세탁되고 있다는 연방 및 주 경찰의 조사가 발표된 가운데, 은행들의 안일한 신원확인 관행도 도마에 올랐다.

 

하루 수백만 달러 거래... 느슨한 고객 신원확인-관련법 허점 지적

 

호주 주요 은행들이 불법 자금세탁에 이용되고 있으며 관련 규정도 미흡하다는 조사가 나왔다.

호주 연방 및 주 경찰 조사 결과 하루 500만 달러에 이르는 해외 마약거래 조직의 불법 자금세탁 행위에 웨스트팩(Westpac), ANZ, NAB, 커먼웰스뱅크(CBA) 등 4대 주요 은행 계좌가 이용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난주 금요일(15일)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호주 금융정보규제기관인 ‘오스트랙’(Austrac)은 커먼웰스은행(Commonwealth Bank)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시작으로, 거대 불법 자금 흐름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는 은행들의 실태를 들춰냈다.

조사 결과 주요 은행뿐 아니라 제2금융권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범죄위원회(Australian Crime Commission)가 ‘고위험 자금’(High Risk Funds) 조사를 실시하고 2012년 유고슬라비아(Yugoslavia)의 불법 현금이 흘러간 경로를 추적한 결과 벤디고은행(Bendigo Bank)이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 요식적 고객신원 확인으로 사태 악화= 전 영연방 자산압수 태스크포스 코디네이터였던 닉 맥타가르트(Nick McTaggart) ‘오스트랙’ 선임 자문관은 “주요 은행을 포함한 기타 금융기관들이 ‘KYC’(Know your customer) 규칙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은 세부적인 실사(due diligence)가 아닌 요식행위(tick the boxes)만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KYC’는 서비스 제공자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고객의 신원을 확인하는 시스템으로, 자금세탁 방지와 테러자금조달 방지를 위한 한 방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고객신원 확인 절차는 ‘e-KYC’라 칭한다.

맥타가르트 자문관은 이어 “은행 간 정보공유가 활발하지 않으며, 연방 정부가 바이오인식 시스템(biometric system, 지문, 얼굴, 눈동자 등 생체관련 정보로 신원을 확인하는 시스템) 및 세금 데이터와 같은 주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은행들이 협조하지 않아 사태가 악화됐다”는 점도 더불어 지적했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철저한 신원확인을 통해 의심되는 계좌를 관리하지 않는 금융기관들의 안일한 관행과 사법기관의 미온적인 태도로 수백만 달러의 불법자금이 호주 계좌를 통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며, 이번 조사 결과는 누구나 아는 사실을 강조했을 뿐이라고 보도했다.

맥타가르트 자문관은 “특히 온라인 송금 시스템 등으로 불법자금을 해외로 쉽게 빼돌리고 달아나는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턴불(Malcolm Turnbull) 정부가 제안한 기업대표 신원확인 강화법과 기업비리 내부고발자 조항에 대해 환영한다”면서도 “정부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자금세탁방지 전문가로 유엔 마약범죄 사무소(UN Office of Drugs and Crime, UNODC) 고문을 맡고 있는 존 체비스(John Chevis) 자문관은 “하나의 자금세탁 방지 조항이 역효과를 냈다”고 주장했다.

해당 법은 고객의 계좌가 ‘오스트랙’에 의심되는 계좌로 신고됐다는 사실을 해당 고객에게 알릴 수 없도록 하는 조항으로, 경찰이나 ‘오스트랙’의 심문을 용의자가 미리 알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오히려 은행이 마약 자금세탁 활동을 묵인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지적이다.

체비스 자문관은 “한 은행에 지속적으로 대량의 돈이 입금돼 100차례나 신고된 경우도 있다”며 “‘자금세탁 방지법’이 오히려 ‘자금 세탁법’이 됐다”고 현행 법 조항의 오용 실태를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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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세탁방지 전문가 존 체비스(John Chevis) UNODC 자문관(사진). 그는 “의심 계좌가 ‘오스트랙’에 신고됐다는 사실을 고객에게 알릴 수 없도록 한 한 자금세탁 방지 조항이 역효과를 냈다”고 지적했다.

 

▲ 퍼스 남성, 2개 은행 통해 2,900만 달러 세탁= 지난 4월 퍼스(perth) 법원은 웨스트팩과 커먼웰스 은행 계좌를 이용, 2천900만 달러의 마약자금을 세탁한 혐의로 30세 홍콩 출신 남성 카 싱 라이(Ka Sing Lai)에게 10년 형을 선고했다.

그가 이용한 수법은 간단하고 효과적이었다. 그는 홍콩 국적의 다른 사람 이름으로 여러 개의 유령회사(front company)를 열고 이 두 은행에 해당 회사들의 계좌를 만들어 돈을 입금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퍼스 지점에서만 입금 횟수는 하루 최대 10회, 당일 입금액의 경우 많게는 50만 달러에 달했다.

지난 2015년, 라이가 체포되기 전까지 그가 진행한 은행거래 건수는 163건이었으며, 그로부터 8개월 뒤인 2016년 8월, 그가 다시 같은 수법으로 자금세탁을 지속한 사실이 드러나 경찰이 재수사에 착수했다.

NSW 경찰은 라이의 운전기사로 알려진 또 다른 홍콩 국적인 치 밍 토(Chi Ming To)씨의 차를 세워 조사했다가 트렁크 안에서 55만 달러를 발견했다.

이 사건에 대해 경찰은 “은행의 통제를 쉽게 피해간 자금세탁범의 수법에 놀아난 경찰의 씁쓸한 승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 수감 마친 범법자, 석방 후 또 범행= 신문은 “자금세탁 범죄에는 비슷한 패턴이 있다”고 전했다. 홍콩에 거주하는 피터 리(Peter Li)씨는 지난 2013년 11월, 관광비자로 시드니에 입국, 더 스타(The Star) 카지노 화장실에서 수십만 달러에 이르는 현금(경찰 추정)이 든 노란색 봉투를 건네받았다.

그로부터 정확히 24시간 후, 리씨는 시드니 도심 CBD 요크 스트리트(York Street)에 위치한 ANZ 은행에 들어가 두 개의 계좌를 개설했다.

그는 현금 5만 달러 중 1천 달러를 첫 번째 계좌에, 나머지 4만9천 달러를 두 번째 계좌에 입금했다. 이틀 후 그는 두 번째 계좌에서 2만 달러를 첫 번째 계좌로 옮기고 두 번째 계좌에 5만 달러를 추가 입금했다.

이후 그는 퍼스로 이동해 그 지역 ANZ 은행 지점에서 창구 직원을 통해 두 번에 걸쳐 3만5천 달러를 두 개의 홍콩 계좌로 나눠 송금했다. 이로부터 5일 후 리씨가 현금 14만7천 달러를 소유하고 있는 사실이 세관에 적발됐고, 정부 요원들은 그가 시드니에 도착하기 5일 전부터 계획된 범죄기록을 재구성했다.

이로써 리씨는 자금세탁 위반으로 체포됐으나 12월4일 보석으로 풀려났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호주 은행계좌에는 1만 달러 이상을 입금하지 못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보석으로 풀려난 지 10주 뒤인 2014년 2월, 리씨는 마약자금으로 추정되는, 현금이 든 가방을 들고 ANZ 은행 시드니 CBD 지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4시간 동안 인근에 있는 ANZ 은행의 각 지점에서 10회에 걸쳐 입금을 진행했다. 이후 옷을 갈아입고 다시 첫 번째 방문한 지점으로 들어가 의무적 의심거래 통보 발송 금액에 못 미치는 9천5백 달러를 11번째로 입금했다.

11회의 입금은 모두 거짓 이름과 전화번호들을 사용해 ANZ 은행의 같은 계좌로 입금됐다. 같은 날 리씨는 NAB 은행의 여섯 개 지점을 방문, 같은 수법을 이어갔다. 그가 입금한 금액은 한 번에 9천~9천백 달러였다.

현행법상 은행이 고객의 신원을 요청할 의무가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는 탓에 해당 은행들은 리씨의 행동과 관련해 질문을 하거나 다른 은행들과 정보를 공유할 법적인 근거가 없었다. 은행 직원이 리씨에게 그의 행동이 의심되어 ‘오스트랙’에 신고할 것이라는 사실조차 알리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현행법이다.

그러나 11번째 입금 시 은행 직원이 그에게 본인의 이름을 물어봤으나 그가 대답을 거부하자 직원이 NSW 경찰에 신고해 덜미가 잡혔다.

불법 자금세탁의 또 다른 사례도 있다. 2000년대 초, 가짜 ID로 은행계좌를 만들었다가 몇 차례 수감됐던 한 중국계 남성은 2013년 또 다시 가짜 ID로 NAB, Westpac, CBA에 계좌를 개설해 300만 달러가 넘는 마약자금을 해외로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 은행들, 사법기관에 책임 전가= 페어팩스 미디어(Fairfax Media)에 따르면, NAB 은행의 리스크 최고 책임자 데이비드 갤(David Gall)씨는 “불법 행위를 막으려고 은행들이 아무리 노력해봤자 범죄자들은 항상 범죄를 저지르게 되어 있다”며 “금융사기를 막기 위한 보다 현명한 방법을 찾는 것은 정부와 경찰을 포함한 사법기관들의 몫”이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웨스트팩 은행의 대변인은 “고객의 신원 확인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온라인 거래의 경우 외부 데이터 확인 등을 통해 고객의 금융 거래 활동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의심되는 부분은 ‘오스트랙’에 신고하며, 필요한 경우 고객과의 관계를 끊기도 한다”고 말했다.

 

■ 경찰이 조사한

한 개인의 은행입금 사례

지난 2014년 2월, 홍콩 국적의 리(Li)씨가 시드니 도심 2개 은행을 이용한 횟수

-11:22am : NAB, Haymarket / $9500

-11:56am : ANZ, 665 George St / $9500

-12:08pm : NAB, World Square / $9000

-12:19pm : NAB, 134 Liverpool St / $9000

-12:41pm : ANZ, Bathurst & Castlereagh St / $9500

-12:55pm : NAB, Pitt & Bathurst St / $9000

-1:08pm : ANZ, 242 Pitt St / $9500

-1:43pm : ANZ, York & Margret St / $9500

-1:58pm : ANZ, 388 George St / $9500

-2:10pm : NAB, 345 George St / $5500

-2:25pm : ANZ, Barrack & Clarence St / $9500

-3:01pm : NAB, Pitt & Hunter St / $8000

-3:11pm : ANZ, 115 Pitt St / $9500

-3:31pm : ANZ, 388 George St / $9500

-3:59pm : ANZ, York & Margret St / $6000

-4:09pm : ANZ, 242 Pitt St / $9800

-4:21pm : ANZ, Bathurst & Castlereagh St / $5075

 

김진연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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