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전직 그림자

 

1980년 미국을 유일의 강대국으로 이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할리우드 배우 출신이다. 그러나 배우로 활동하다가 대통령이 된 건 아니다. 젊은 시절 직업 배우로 활동하다가 50대 중반에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8년간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역임한 그는 70세에 대통령이 됐다. 당시로는 역대 최고령이었다.

공화당 소속의 레이건 대통령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임기 중 강력한 무기 경쟁을 통해 소련(소비에트연방공화국)을 굴복시켰다. 동서 냉전 시대였던 당시 미국과 소련은 각각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맹주(盟主)였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 점령으로 경제가 어려웠음에도 미국과 무리하게 무기 경쟁을 벌이다가 결국 연방이 해체됐다.

그는 또 영국의 마가렛 대처 총리와 함께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건축한 대표적인 지도자로 손꼽힌다. 그가 재임했던 1980년대 이후 미국 보수층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정신적 지주로, 현대 미국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그의 정치 활동에서는, 전형적인 배우의 모습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대통령,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은 ‘선출직’ 공무원이다. 시험을 쳐서 공무원이 된 ‘늘공(늘 공무원)’과 달리, 선거에 떨어지면 백수다. 그렇지만 이들에게는 어느 직업도 갖지 못하는 권력이 있다. 법이 허용한 범위에서 자기 권력을 사용한다. 권력 사용을 법이 제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무소불위(無所不爲)’다.

이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다 비슷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정치에 뛰어들고 있으며, 이곳만큼 다양한 전직들이 몰리는 곳도 드물다. 대부분 스스로 들어오지만, 때로는 정치권에서 대중적 지지도 높은 이를 영입하기도 한다. 지지율이 높아야 일단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스스로 뛰어들어 바닥부터 시작했든, 낙하산처럼 외부에서 영입됐든 일단 당선되면 누구나 그 자리에 충실해야 한다. 지난 경력이 ‘선출직 공무원’ 일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이전 자신’은 잊어야 한다. 현직 수행에 과거 모습이 자주 드러나는 건 좋지 않다. 레이건 대통령 재임 8년간, 그에게서 ‘할리우드 배우’를 느낀 이가 없었던 것처럼… 그래야 자신도 유권자도 불행해지지 않는다.

 

한국의 현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그만둔 지 1년 만에 대통령에 뽑혔다. 지난 대통령 선거는 정권 교체 여론이 절반이 넘는 상황에서 치러졌다. 그만큼 야당 후보가 당선되기 유리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투표율은 지난 대선 때보다 낮았고, 그 결과 아주 근소한 차이로 당선됐다. 이는 그가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더 많다는 의미다. 이 정도 결과라면 겸허해야 한다.

500만 표 이상 차이로 당선됐던 이명박 정부도 자만심에 빠져 집권 초기 미국과의 FTA 협상을 안이하게 대처했다가 임기 내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었다. 50% 이상의 지지율로 집권했던 박근혜 대통령도 ‘과거의 자신’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서 ‘탄핵’이란 불명예를 안고 물러나야 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촛불의 힘’에도 불구하고 유권자 10명 중 4명만이 자신을 지지한 현실을 잊고 ‘내로남불’로 일관하다가 결국 5년 만에 정권을 내줘야 했다.

그래도 3명의 전직 대통령은 시작할 당시엔 지지율이나 평가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현 대통령은 취임한 지 불과 2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했다. 여론조사는 정확하다. 사실 누가 봐도 지난 두 달 동안 뭘 했는지 느끼지 못한다. 매일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대화하는 것도 처음엔 신선하게 보였으나, 새로운 정책 설명보다 과거와 비교하는 변명과 해명에 치우치면서 동력을 잃고 있다.

대통령실과 정부 내에 검찰 출신이 많은 것에 대해 그는 “과거 정부도 민변 출신이 많았지 않느냐”고 답했다. 민변과 검찰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최고의 사정 기관 출신들이 권력 핵심부에 모여 있는 것에 대한 우려임을 모른다면 현실 인식이 부족한 것이고, 알고도 그런 답을 했다면 여전히 자신을 검찰총장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언론에선 벌써 ‘관종(관심종자)’이란 말까지 나온다. 검찰총장 시절, 의원들과 맞서는 모습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어 대통령이 된 분이다. 최근 여당의 자중지란에 대해 ‘당 문제엔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일관하는 것도 무책임해 보인다. 불과 몇 달 전에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당의 일인데 말이다. 이러니 과거 검찰총장의 모습이 아직도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김인구 / <한국신문> 편집인

gginko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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