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밍한 정치
대한민국 22대 총선 결과가 나왔다. 결론은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을 중심으로 하는 야권이 190석 가까이 획득한 압도적 승리다. 정권심판론 태풍이 세차게 불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열망한 200석은 달성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하고 특검법을 만들고 탄핵과 개헌을 발의하고 조기 대선을 치르는 초유의 드라마는 꿈으로 남았다. 대참패를 당한 국민의힘 역시 이번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해 남은 집권 3년을 정국을 주도한다는 계획이 무산됐다. 어느 쪽도 절대 반지를 거머쥐지 못한 만큼 대화와 타협이냐 대립과 갈등이냐는 갈림길에 서 있다.
대통령 입장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총선에서 자신을 결사옹위할 친위세력 육성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는 공천 잡음을 감수하고 대폭 물갈이를 통해 ‘친명(친 이재명)’ 위주의 민주당 원내 세력을 만드는데 성공한 이재명 대표와 대비되는 부분이다. 더욱이 이준석, 나경원, 안철수 등 대통령에게 핍박을 받은 서사를 가진 중진 정치인들이 대거 생환했다. 차기 당권과 대선을 둘러싸고 여권의 권력추가 이들에게 급격하게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여권에 대한 대통령의 장악력은 약화될 전망이다.
특히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후 국힘 당 대표직에서 쫓겨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화성을 당선은 태풍의 진원지가 되기에 충분하다. 정권심판론이 거세게 분 젊은 층이 다수인 민주당 우세 지역에서 벌어진 3파전에서 자신만의 정치적 서사로 극적 역전승을 거두었다. 대통령은 물론 거여 민주당에 대해서 일전을 겨룰 충분한 경쟁력과 잠재력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3년은 너무 길다’라는 구호로 돌풍을 일으킨 조국혁신당은 국회가 개원하면 특검법 발의를 통해 정부 여당을 직격할 태세다. 선명한 정권심판론으로 눈부신 성과를 이룬 조국혁신당이다. 이러한 추세를 이어가기 위해 대여 공격의 선봉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200석을 달성하지 못한 만큼 대통령의 거부권을 넘어서는 성과는 있을 수 없다. 이 와중에 조국혁신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야권 성향 지지자 확보를 두고 선명성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거대 야권을 이끄는 두 지도자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공교롭게 둘 다 형사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 대표는 대장동 사건을 비롯해 형사 사건의 피의자로 선거 기간 중에 법정에 출석해야 했다. 민주당이 독자 과반을 확보해 체포동의안에 대한 ‘완벽한 방탄체제’는 완성됐다. 그럼에도 사법 리스크 자체는 계속된다. 조 대표 역시 이미 2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됐고 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다. 대법에서 형이 확정되면 곧장 감옥으로 가야 한다. 총선에서의 정치적 승리가 사법적 성과로 이어질 지 주목된다.
윤 정부는 애초부터 거대 야당과 함께 출범한 정부였다. 집권 후 2년 만에 치르는 총선은 엄밀하게 말해 대선 후반전 성격을 갖고 있었다. 집권 여당이 반드시 과반을 확보해야 비로소 정권교체를 내용적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이번 총선 참패로 윤 정부는 본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심판 받아 불구 상태로 잔여 임기를 보내야 할 처지가 됐다. 숨만 쉬면서 내부에서 광합성 작용만 하는 ‘식물정권’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국회를 장악하지 못한 최약체 정부가 무수한 오판과 실언으로 쌓은 오만한 이미지 때문에 폭망을 초래했다.
선거의 효능은 모든 정치적 논쟁과 대립에 한 매듭을 짓는 것이다. 이번 총선은 정반대 결과를 낳았다. 현 정부에 대한 극도의 분노와 기분 나쁨이 용광로가 엎어진 것처럼 총선판을 태워 버렸다. 정치의 금기와 금도가 무너졌고 여야 모두의 손에 회칼이 주어진 셈이다. 극단적 진영 대립은 이들에게 자신이 상처를 입어도 상대의 목줄을 끊을 때까지 싸우라고 충동한다. 이들에게 휘둘린다면 앞으로 남은 3년은 오직 정치공방 대란에서 시작해서 대란으로 끝날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은 여권의 탄핵 저지선 확보와 야권의 200석 실패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대통령의 독주로 싫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헌정중단을 허용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결론은 견제와 균형으로 국정을 운영하라는 국민의 요구가 아닐까? 민주정의 기본 원리인 견제와 균형은 대화와 타협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화와 타협을 위해서는 먼저 상대를 극혐의 대상으로 보는 것을 의지적으로 중단해야 한다.
“도무지 너무 미운데 어떡하냐고?”
이렇게 하소연할 수 있다. 아무리 미워도 상대방을 인정하고 국민을 위해 대화에 나서는 것이 대의정치의 명분이요 대의다. 미숙한 정신 상태로 자기 감정대로 행동하려 한다면 정치라는 공적 영역에 나설 자격이 없다. 상대 진영을 거덜 내는 ‘복수혈전’이 아니라 국민의 살림살이를 지켜내는 ‘민생안정’이 진짜 정치 효능감이다. 전자는 그저 밍밍하게 맛이 없는 것이 한국 정치의 희비극이다.
정동철 /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