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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문턱을 넘기며 유난히 프랑스 대통령 관저 엘리제궁의 주방으로 관심이 모아졌던 편이다. 지난 6월 6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엘리제궁에서 화려한 국빈만찬을 즐겼는데, 이때 대통령관저 요리장이 국제외교무대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지 재조명할 기회가 됐다. 

이뿐만 아니라 전 대통령궁의 요리장 베르나르 보씨옹이 40년 경험담을 저술한 저서 ‘엘리제궁의 요리사(Au service du palais)’를 6월 5일 발간하여 일시에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요즘 프랑스에서 화제가 된 도서이다. 

보씨옹은 1973년부터 엘리제궁의 요리사로 종사했으며, 2005년 시라크 전 대통령에 의해 주방쉐프로 승진했다가 작년 10월 정년퇴직했다. 그는 퐁피두 전 대통령(1969-1974년)부터 올랑드 현 대통령에 이르는 6대 대통령의 밥상을 책임졌을 뿐만 아니라, 오바마 미국대통령, 메르켈 독일총리, 카다피에 이르기까지 세계정상들을 대접했던 엘리제궁의 유명한 요리장이다. 



▶ 프랑스 최고급 레스토랑 



현재 엘리제궁 주방에는 20명의 요리사들이 있으며, 쉐프는 35세의 기욤 고메즈. 그는 1997년 엘리제궁에 입성하여 25세에 프랑스 최고의 요리장인(MOF)상을 수상했다. 2013년 가을 베르나르 보씨옹의 뒤를 이어 엘리제궁의 요리장으로 승진했다.

엘리제궁 주방은 정문에서 오른편에 위치한 옛 호위병 마구간 지하에 자리잡고 있으며, 크기는 500㎡에 이른다. 퐁피두 대통령시절에 현대적 시설을 갖춘 오늘날의 주방이 신설되었으며, 이후 대통령의 일상적인 식탁뿐만 아니라 엘리제궁이 주관하는 각종 리셉션 연회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이곳에서 하루 평균 200명, 한해 평균 7만 명에 해당되는 음식이 조리되며, 1년 국가예산은 약 420만 유로에 이른다. 300명 분의 음식을 1시간 만에 조리할 수 있는 성능 좋은 대형화덕도 설치되어있다. 

주방에서 사용되는 냄비, 프라이팬 등 조리용품 일부는 루이-필립시대(1830-1848년)로부터 내려오는 고풍스런 유산물들이다. 1만여 개의 고급 은제품 식기류, 7천여 크리스털 잔들,  9천3백여 세브르 도자기 접시들이 갖추어져있다. 은제품 전용 식기세척기만 6개에 이르며, 약 1만3천여 고급포도주들이 마련되어 있다. 

이렇듯 엘리제궁 주방은 프랑스에서 가장 격조 높은 대형 레스토랑이나 다름없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급 레스토랑으로서 대통령의 식탁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지도자들의 국제 외교협상테이블을 주도하는 중요한 장소이다. 물론 요리장들은 음식외교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초대 손님들의 식성, 종교, 문화에 따라 고심하여 식단을 짜기 마련이다. 



▶ 최고 권력자들의 뒷모습들 



베르나르 보씨옹과 저널리스트 크리스티안 루도의 공저 ‘엘리제궁의 요리사’가 세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은 무엇보다도 저자가 직접 40년 동안 지켜보았던 대통령들의 유별난 식성, 습관, 편식을 다룬 내용이 담겨있는 까닭이다. 사실 이 저서를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최고 권력자들의 감추어진 뒷모습이 밝혀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들 중에서 프랑스 미디어가 화제로 삼은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지스카르데스탱 전 대통령(1974-1981년)은 디저트에 남달리 까다로웠던 편으로, 하산 2세 모로코 왕에게 베푼 만찬에서 애플파이 디저트를 ‘수치’로 받아들였을 정도로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럼에도 지중해 연안 대통령전용 별장 브레강송 성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에 ‘쁘티 뤼’ 비스킷을 군것질하러 수영복차림으로 부엌에 들어왔다고 전 요리장이 기억했다.

퐁피두 대통령은 엘리제궁의 조리사들에게 친근한 어조로 말을 잘 건넸으나, 미테랑 대통령(1981-1995년)은 쌀쌀했던 편이며 취임기간 동안 단 한번도 주방에 내려온 적은 없었다고 한다. 

미테랑 대통령 때문에 ‘캐비아 좌파(Gauche caviar)’라는 표현이 생겨났다고 여겨질 정도로, 그는 캐비아를 무척 좋아했으며 훈제연어나 차가운 생선요리에 늘 커다란 캐비아 단지가 곁들여졌다고 보씨옹이 밝혔다. 게다가 미테랑 대통령은 초대 손님들에게 캐비아를 마음껏 시식하도록 권했는데, 당시 재무부장관 미셀 샤라쓰는 접시에 캐비아를 한 숟가락 듬뿍 퍼 담으며 ‘국민들이 허리띠를 질끈 졸라매야 하겠다” 라고 농담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라크 대통령(1995-2007년)은 유난히 애견의 식단에 까다로워, 일반 깡통 개밥보다는 둥글고 얇게 썬 신선한 고기를 특별히 주문하곤 했다. 시라크 대통령이 주말을 포함하여 늘 엘리제궁에만 머무는 것을 선호했던 편이라 다른 대통령들에 비하여 주방종사자들에게 가장 많은 일거리를 안겨주었다고 한다.  

사르코지 대통령(2007-2012년)은 커피향 아이스크림을 유난히 좋아했는데, 대통령 전용비행기의 냉동실 안에까지 아이스크림을 잊지 않고 늘 축척해두는 일이 요리장으로서 어려웠던 점이라고 보씨옹이 전했다. 미테랑이나 시라크가 대단한 식도락가였다면 사르코지는 음식이 담긴 접시 앞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지루하게 여겼던 편이다. 그는 식사를 빨리 끝마치는 스타일로서 간혹 연회장 식사가 55분 만에 마친 적도 있다. 대통령궁 요리장이 기억하는 최고기록은 오바마 미국대통령과의 오찬을 12분 만에 끝낸 경우이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일정이 없는 저녁에는 때로는 텔레비전 앞에서 피자로 때우는 것을 선호했다고 한다. 



▶ 빵은 ‘파리 바게트’ 경연대회 우승자가 제공



엘리제궁 주방이 모든 식단을 직접 준비하고 조리하지만, 빵만큼은 외부에서 조달받고 있다. ‘파리의 가장 맛있는 바게트(La Meilleure baguette de Paris)’ 경연대회 우승자가 1년 동안 엘리제궁에 빵을 제공하는 것이 관례이다. 

해마다 파리시청은 제빵 분야 종사들이 참여하는 ‘가장 맛있는 바게트 만들기’ 경연대회를 주관하고 있다. 바게트 길이 55cm-65cm 사이, 무게 250g-300g 사이, 소금분량 18g정도로 엄격한 규정을 세우고 냄새까지 꼼꼼하게 심사하여 최고의 맛을 가린다. 이 경연대회 우승자가 상금과 더불어 엘리제궁에 1년간 빵을 제공하는 영광을 안는다. 

올해 20회를 맞이한 ‘파리 바게트’ 경연대회에서 그랑프리는 파리 14구에서 빵집(Aux Délices du Palais)를 운영하는 안토니오 텍세라가 차지했다. 그는 부친으로부터 직접 제빵 제조를 전수받아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의 아버지도 1998년에 ‘황금 바게트 상’을 수상한 경력을 지닌다. 빵집 주소는 60, boulevard Brune. 바로 이곳에서 내년 봄까지 올랑드 대통령의 식탁 위에 오르는 바게트와 빵들이 매일 구어지고 있다. 이 빵집의 하루 평균 바케트 매상이 200개였는데, 우승을 차지한 이후부터 800개로 증가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국영TV채널 France5는 엘리제궁 주방에 관한 55분짜리 다큐프로를 마련하여 6월 22일 일요일저녁 8시 35분에 방영할 예정이다.



【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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