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情 간직할께요‘
요즘 한창 관광붐이 부는 아름다운 아드리아해의 크로아티아. 수많은 관광상품이 있는데 현지 카우치서핑 친구가 추천해준 이 ‘보이지않는 자그레브 Invisible Zagreb Tour’ 투어가 유독 관심을 끌었다. 노숙자(露宿者)들의 관점에서 본 크로아티아는 어떤 모습일까?
최근 크로아티아의 대통령 콜린다 키타로비치(Kolinda Grabar-Kitarović)는 노숙자들이 없는 수도 자그레브가 자랑스럽다는 발언을 해서 논란을 빚었다. 총 인구 4백만명 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서 경제난으로 유럽연합 가입후 지난 십년간 무려 (반)백만명, 젊은층 1/3이 자국을 떠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크로아티아가 낮은 실업률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謳歌)하고 있다고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다.
이 투어는 아트 갤러리의 경영난으로 3년이 넘는 시간을 거리에서 살다가,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다시 제 2의 삶을 꾸리게 된 밀레 미르발야(58 Mile Mivalj)씨가 가이드를 맡았다. 영어 통역을 위해 젊은 여성이 함께 했다. 밀레씨는 4년전, 화이터(fighter)라고 불리는 단체를 창립해 이제는 자원봉사자만 2백명에 달하는 규모로 자리를 잡아 관련 이슈에 대한 잡지책 (영어/크로아티아버전)도 정기적으로 발간하고 있다.
어느 나라나 노숙인으로 사는 삶은 버겁다. 하지만 크로아티아의 현 상황은 더욱 열악한 듯 하다. 노숙자들이 공공장소의 벤치나 잔디에서 자다가 적발되면 벌금이 무려 3백유로라고 한다. 평균 임금이 한 달 5백유로인 나라에서 노숙자에게 벌금이 3백유로라니. 그래서 버려진 건물에서만 잠을 자니, 관광객들은 그들이 쓰레기를 뒤지지 않는 한, 보기 힘든 것이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노숙자들처럼 특정 거주주소가 없으면 정부가 신분증 발급을 해주지않고, 신분증이 없으면 보호시설이나 무료급식의 혜택도 받지 못한다는 모순적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사회의 취약계층을 가리켜 투명인간이라고 하는데 이 나라의 노숙자는 말그대로 서류에선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인 셈이다. 크로아티아는 정부에 등록된 노숙자만 5십만명이니 실제로는 더 많은 것이 명백한 안타까운 현실. 노숙자들에게 신분증 발급하는 것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닐텐데, 이들은 신분증없는 생활을 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토로한다. 밀레씨는 이미 언론과 인터뷰도 하고, 오랜 싸움끝에 관계부처의 장관도 만났으나, 모두 당선이 되고나면 공약을 완전히 쓰레기취급한다고 하니, 한국의 정치판이 연상되어 참 씁슬하다.
좌/우파 정치인들에게 크게 실망한 밀레씨는 본인을 비정치적인 인간이라고 소개한다. 사실 노숙자를 위한 그의 왕성한 연대활동은 투어, 강연, 책 발간, 워크샵 기획등 다 정치적인 것이지만, 지난 세월, 정치인에 대한 혐오와 실망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크로아티아는 발칸반도의 다른 나라들처럼, 90년대 유고슬라비아에서에 독립하고 전쟁을 겪으며, 정치체제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뀌었으나, 결국 동일한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했다. 또한, 자본주의체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하여, 가난하더라도 안정적인 일자리와 삶을 살았던 이들이 졸지에 블랙마켓과 거리로 나앉게 되었다고 한다. 권력의 핵심에 있던 이들은 자신들의 가족과 동료들에게 부(富)를 나눠주느라 현재 백명의 크로아티아인들이 전체 자국 부의 95%를 독점하는 불공정한 사회로 전락했다. 왜 일부 시민들이 티토시절을 그리워하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어쨌든, 전혀 아는 것이 없는 한국의 관광객이 보여주는 관심을 고마워하는 그에게 초코파이를 선물했다. 정(情)이라는 한자를 나름 설명했더니, 맘에 든다며 먹지 않고 잘 보관하겠다고 해서 더 찡했다. 강의일정이 있어서 급하게 일어나는 그는 다음에 만날때는 좀 더 시간여유를 가지고 싶다며 전화번호를 건넸다. 나는 다음에 자그레브를 찾을떄는 한국식당에서 한 턱 내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햇볕이 아름답게 빛나는 오후에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척 버거웠다. 과거 노숙인으로 힘들었던 삶을 차분히 또박또박 전하는 그는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한 사람의 강한 의지가 어떻게 작은 변화의 물결을 이뤄내는지 잘 보여준다. 노숙인들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절망감에 술중독에 빠지는 것, 정신도 또한 악영향을 받아 결국 짧은 생을 마친다는 것인데, 확실히, 그는 나이에 비해 20년은 더 들어보였다. 평소에 노숙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질 못해서 미안했는데 오늘 든든한 동지 한 명을 만나서 기뻤다. 다른 노숙인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기 위해 열심히 사는 그가 존경스럽다. 언젠가 크로아티아를 가게되면 이 분을 꼭 만나보시길.
https://www.invisiblezagreb.com/
석양빛에 아름다운 자그레브 도심.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왼쪽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노숙자가 보인다...
글 사진 =클레어 함 | 인권활동가
progressive Korea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열린 기자’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re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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