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여행도 만남이 중요하다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8)
Newsroh=안정훈 칼럼니스트
어떤 사람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자 마자 폭풍우를 만나고 어떤 사람은 순풍을 만난다.
나는 운 좋은 항해자 였던 것 같다.
러시아 여행 내내 행운을 만났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하바롭스키 까지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역을 찾아 갔다.
창구에 가서 기차 시간표를 물어보고 예매를 하려고 했지만 전혀 불통이었다.
매표 창구의 직원은 뚱뚱하게 생긴 전형적인 러시아 아줌마 였는데 그녀는 고객을 위해 뭔가 해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도리어 짜증을 내고 화를 내기까지 했다.
"그래! 러시아어 못하는 내 잘못이지. 당신 탓은 아니지" 라고 쿨하게 마음을 정리하고 돌아섰다.
정 안되면 영어가 통하는 여행사를 찾아가 약간의 수수료를 내고 사면 되니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직접 부딪쳐서 구매해 보고 싶었는데 첫 관문(關門)부터 만만치가 않았을 뿐이었다.
역에서 나와 기분 전환을 위해 바다 바람이나 쐬자고 부두 쪽으로 걷다보니 러시아- 한국 여객선 회사 간판이 보였다.
혹시 저 곳에 가면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구에 있는 직원에게 물으니 한국인 직원이나 한국어를 하는 러시아 직원은 없다고 했다.
사무실 안쪽에서 보고 있던 러시아 남자 직원이 나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내가 "기차표를 사러 갔다가 말이 안통해서 그냥 왔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도움을 받고 싶어서 왔다." 고 설명했다.
그는 영어로 자기를 따라 오라고 했다.
아무리 말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어도 당신은 기차표를 사지 못할 것 이라면서 자기가 도와 주겠다고 직접 나선 것이다.
다시 육교를 건너 함께 기차역으로 갔다.
대화하는 중에 그가 한국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여객선 회사의 과장이고 이름은 블라디미르 라는 걸 알게 됐다.
설악산, 춘천, 경주,서울 등을 가 봤었다면서 한국에 호감을 보였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가까운 쪽의 문으로 들어가려다 경비원에게 제지 당했다.
여기는 출구고 입구는 2층 도로쪽에 있으니 그리로 가라는 것 같았다.
친절하게 설명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덩치는 곰 같이 생기고 인상도 사납게 생긴 경비원은 마치 화난 사람처럼 큰 소리와 큰 몸짓으로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아마 나 혼자 였으면 상당히 위축 되었을 것이다.
블라디미르는 겁먹은 듯한 내 표정을 보더니 한국과 러시아는 많이 다르니 이해하라고 말했다.
매표 창구 직원이나 경비원이나 하나 같이 딱딱한건 공산주의 시절의 잔재(殘滓)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는 웃으며 앞으로 여행하면서 문화적 차이를 자주 경험하게 될텐데 크게 놀라지 말라고 조언해 주었다.
도움을 받아 기차표를 무사히 예매하고 나서 환전은 어디서 하느냐? 고 물었다.
그는 지금은 루불화의 환율이 내려가는 중이니 달러를 직접 환전하는 것 보다 ATM을 이용하면 더 좋다면서 나를 근처 은행으로 데려가 이용법 까지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기차표도 사고 은행에서 루불화도 출금 했으니 곡절은 있었지만 이 날의 미션도 성공이었다.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그냥 인사가 아니라 진심 이었다. 한국에서 만나면 몇 배로 보답하고 싶었다.
명함을 받았는데 아르헨티나 야간 버스에서 배낭을 도난 당하는 바람에 함께 잃어버리고 말았다.
진심으로 인연이 닿아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꼭 다시 만날 꺼라 믿는다.
하바롭스키에서는 경기도에서 미용 재료업을 하는 김선생을 만났다.
아들이 러시아로 유학 와서 현지 여성을 만나 결혼 했는데 새로 사업을 시작하려고 해서 도와주러 왔다고 했다.
나이가 비슷해서 둘은 금방 친해졌다.
함께 구경 다니고 맛집에 가서 식사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러시아인들의 별장 주택인 다챠에 묵으며 장작으로 덥힌 사우나에서 고깔 모자를 쓰고 나무가지로 등줄기를 가볍게 때리가며 즐겼던 저녁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운 좋게 프로모하는 고급 호텔을 찾아서 싼 가격에 럭셔리하게 묵기도 했었다.
우리는 보드카를 마시며 마치 수학 여행 온 학생들 처럼 밤 늦게까지 웃고 떠들어댔었다.
바디 랭귀지만 쓰다가 오랫만에 한국말로 대화하니 너무 편하고 마음이 들떠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었다.
이루크츠크에서는 바이칼 호수롤 가려는데 교통편을 몰라 헤맬 때 만난 한국인 기념품점 사장이 은인이었다.
그는 바쁜 중에도 가는 방법을 하나 하나 설명 해주었다.
그래도 걱정이 되었는지 다시 메모지에 지도와 함께 자세한 내용을 정리해서 주었다.
러시아 부인은 직접 택시를 잡아서 기사에게 버스 정류장까지 잘 모시라고 부탁하는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버스 정류장은 시장 옆의 혼잡한 거리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만약 혼자서 그냥 갔다면 찾느라 고생 깨나 했을 것이다.
편하게 찾아간 바이칼 호수의 투명한 듯 차가운 공기는 나의 폐는 물론 머리 속 까지 맑게 해주었다.
숨을 쉬면 짜릿한 냉기가 머리 끝까지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바이칼 호수에서는 원래는 하루만 묵으려 했는데 너무 맑고 깨끗한 하늘과 호수와 공기에 반해 이틀을 지냈다.
지구 상에서 가장 넓다는 바이칼 호수는 지친 초보 여행자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 준 최고의 힐링 레이크 였다.
누군가 러시아를 간다고 하면 꼭 바이칼 호수를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인생 1막을 살면서 일이 잘 풀릴때는 항상 도와주는 사람이 니타났었다.
일이 잘 안풀릴 때는 아무리 도와 줄 사람을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었다.
여행도 인생도 만남이 중요하다는걸 다시 느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2등석 내부 . 2층 구조로 4개의 의자형 침대가 있다. 중간에 간단한 식사와 음료수가 제공된다.
화장실은 걱정했던 것 보다는 괜찮았다.화장실 앞쪽에 온수통이 있어서 컵라면이나 커피등을 끓여 먹을수 있다.
<계속>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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