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구상과 로드맵을 위하여’
주권자전국회의, 겨레하나, 다른백년 주최
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l.com
하노이이후, 한국의 선택은?
북미 하노이회담이후 한반도정세를 진단하는 시국강연회가 4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렸다. 주권자전국회의, 겨레하나, 다른백년이 공동 주최한 이번 강연은 ‘하노이 이후 한국의 선택은 – 새로운 구상과 로드맵을 위하여’라는 타이틀로 열렸다.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의 사회로 강태호 한겨레평화연구소장과 정영철 서강대교수, 스티븐 코스텔로(Stephen Costello) 이스트아시아프로덕트 대표의 강연과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이래경 이사장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역사적 전망에서 볼 때,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촉발된 2018년 간에 전개된 상황을 物極必反(물극필반)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전개되는 국면은 진검승부의 과정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70여 년간 지속된 북미간 대결구도를 뛰어넘어 공식적인 협상과정과 두 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으로 이끈 주요한 두 가지 요인은 북한핵 완성과 트럼프라는 인물에 있지만, 트럼프의 경우에는 그가 한반도 역사를 이해하고 동북아의 안정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것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위상과 재선을 위해 북한 상황을 도박판의 카드처럼 활용하는 측면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래경 이사장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으로 한반도 평화에 기회와 계기로 작동하였던 트럼프의 존재가 미국 내 진행되고 있는 정치구도와 연동되어 이제는 오히려 불안정하고 위험한 요소로 변질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겨레 신문사에서 20년이 넘도록 통일외교의 전문기자로 활약하면서 평화연구소를 책임졌던 강태호 전前소장은 미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잡한 정치적 양상을 매우 섬세하게 분석하면서, 한미동맹에만 의존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북한 정책과 대미외교에 대하여 냉철한 비판을 가했다.
북한에 대한 압박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던 중국과 무역협상이 대치상태로 꼬이면서 정치적 상황이 복잡해지고 재선도 불확실하며 북한과 합의된 약속의 이행도 의심스러운 트럼프와 미행정부는 미국 내 입지가 매우 좁아져 있다. 이에 더하여 하원을 주도하는 민주당을 포함하여 북한에 대한 주류 여론의 흐름을 오히려 부정적으로 유도하는 역작용까지 낳고 있다는 것이다.
강태호 소장은 “미국 우선주의에 갇혀있는 트럼프의 도박판과 한미동맹의 군사적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서 북핵 문제의 성격을 북한의 생존과 결부하여 탈냉전의 해체와 미국의 일방적 주도에서 새로운 다자적 패권구도라는 변화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전개되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지정학적 관점으로 다시 조망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트럼프라는 한 인물에 기댈 것이 아니라 한국정부가 주도하여 미국 정치권 일반이 동의할 수 있는 북한에 대한 장기적인 안전보장 전략을 추구하고 지난 6자 회담처럼 동북아의 다자적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한국정부의 정책적 力量(역량)이 펼쳐지고 외교적 포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두 번째 연사로 나선 서강대 정영철 교수 역시 미국 내 전개되는 정치적 상황에 대해 강태호 소장과 인식을 공유하면서 “70여 년간 지속된 치열한 북미간의 대결구도가 한국정부가 한미동맹이라는 구도 속에 갇힌 심부름꾼 수준의 중재자로 역할을 하며 트럼프라는 한 인물과 몇 번의 협상을 통해서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미국이라는 패권국의 일방적 강압과 갑질에 대해 북한이 일방적인 양보를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으로 단언했다.
대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 정교수는 유럽의 아날 역사학파의 거두였던 브로델의 시각을 빌어 현재 한반도에서 전개되고 있는 양상을 구조와 국면 및 행위자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했다. 구소련의 해체 이후에도 여전히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는 ‘분단체제’ 또는 ‘판문점체제’ 라는 냉전체제의 잔여, 즉 북미간 지독한 대결구조를 깰 가능성은 결국 남북이 서로 대화하고 협력하고 관계적 힘으로 민족 스스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고 주도적 역할을 강화하는 것에 있으며, 이것이 유일한 원천이자 출로라고 주장하며 이를 ‘局面(국면)의 힘’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국면의 힘’으로 한국의 주도적 역할과 함께 ‘동맹’과 ‘민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북한핵을 포함하여 우리의 문제를 민족내부, 남북관계, 그리고 한반도와 그 주변 국가들과 어우러져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면의 힘’은 우리가 만들 수 있고, 만들어내야만 하는 힘이고 민족적이면서 동시에 주변국가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국제적 역학이라고 주장한다. 과거에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민과 참여의 정부에서 일정 부분 남북관계에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배경 역시 국면의 힘으로서 남북이 서로 함께 호응하였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라도 과감하게 특사 파견 등을 통해 북한의 입장을 헤아리고 이에 기반하여 북한과 미국을 협상으로 잡아당길 수 있는 설계자와 인도자로서 위치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하며, “이를 관철하기 위해 주변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강력한 지지를 표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공동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강연자로 나선 코스텔로 대표는 미국 내 ‘햇볕정책 전도사’라는 호칭에 어울리게 김대중 전대통령의 시각적 연장 속에서 한반도 상황을 해석했다. 그 역시 문재인 정부가 해온 그간의 중재적 역할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제부터는 포용정책을 기본축으로 삼아 한국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 오히려 미국과 트럼프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에서 거주하면서 미국의 정치를 일상적으로 지켜보고 정책관계자들과 개인적인 접촉을 유지해온 그는 한반도 정책에 관한 미행정부의 상황은 한마디로 대혼란(meltdown)이라고 요약했다. 아들 부시 정권 이후 백악관에는 아시아와 한반도 문제의 전문가들이 대부분 사라졌고, 수시로 변해가는 미국정치의 이해에 매달려 朝夕之變(조석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혼선의 와중에 존 볼턴같은 강경파가 입지를 구축하고 목소리를 높여 나가는 위험한 조건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미국 행정부를 바라보면서 북한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조언했다.
특히 그는 촛불시민혁명으로 세계의 관심을 이끌어낸 한국정부가 앞으로 해야 할 역할을 5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미국과 동맹으로 같이하되, 보다 많은 책임을 스스로 지고 워싱턴의 역할을 줄여가라.
둘째. 미래의 행보를 동북아와 국제사회의 공동현안으로 발전시켜 북한과 주변국들이 서로 합의한 내용을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면서, 미국이 이를 일방적으로 방해하는 일을 최소화해야 한다.
셋째, 북한의 요구사항을 남북정상회담을 통하여 담아내고 합의된 사항을 실행하는 로드맵을 그려내야 한다.
넷째, 서울당국이 누구보다도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임을 인식하고 준비된 전략을 실천하고 촉진하는 자가自家운전자가 되어야 한다.
다섯째, 새로운 지원과 자금이 북한에 투자되도록 장기적인 제도와 기구를 북한과 함께 준비해 가야 한다.
일정상 시국강연회에 참석하지 못한 국민대 란코프 교수는 특별기고문을 보내 왔다. 그는 러시아 레닌그라드 대학의 동양학 박사출신으로 대학시절 교환학생으로 수년 간 북한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유학하였으며, 시드니(ANU)대학 교수직을 거쳐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에게는 경제개혁과 발전도 매우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이지만 그에 앞서 체제에 대한 안정보장이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북핵 문제해결의 열쇠는 김정은 정권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북미의 대결과정이 진행되면서, 미국 내 형성된 북한에 대한 부정적이고 적대적 신화가 공화당과 네오콘의 수준을 넘어 근거도 없이 민주당과 주류언론에게까지 확산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단순히 정상회담의 합의 수준을 믿고 북한이 생존의 안전판인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희망사항 내지는 순진한 전망일 뿐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중동과 동유럽의 여러 국가들의 사례에서 보여준 국제 패권주의적 개입이 지속되는 한 북한은 핵폐기를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주류사회와 정치권과 결이 다르게 돌출한 트럼프라는 별종이 일정한 완충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표명했다.
그는 2000년 초에 보여주었던 포용적 햇볕정책을 더욱 확산하여 제2, 제3의 개성공단을 설립하고 추가적인 관광특별지역을 개발하면서 점진적인 설득의 과정을 통해 북한핵을 동결과 감축이 가능한 수준으로 유도해 가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북한과 화해와 경제협력에 대해 미국이 당연히 반대하더라도 이러한 조치가 북핵의 동결 및 감축이 ‘핵동결(내지 감축)의 완성’이 아니라 ‘비핵화 프로세스의 시작’이라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당분간 북한은 폐쇄를 유지한 채 자립적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해 갈 것으로 전망한 그는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는 추후 국제적 정치질서와 패권주의의 재편과정 속에서 점차적으로 검토할 사항이라는 입장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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