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독일 국경에 자리한 베르덩(Verdun)은 파리 동쪽으로 280km 거리에 있어 베르덩만을 보기 위해 가기에는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룩셈부르크나 독일 혹은 프랑스의 메츠로 가는 길이라면 한번쯤 들려보면 좋은 곳이다.
뫼즈강 연안에 자리하고 있어 강에는 배들이 몰려있고, 강 양쪽에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운치를 더하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베르덩 조약과 베르덩 전투로 익숙한 지명으로, 프랑스의 역사적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베르덩은 고대 로마시대 때부터 메스와 랭스를 연결하는 교통 요지로, 북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수로로 중요한 위치에 있어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을 시작했고 4세기부터는 주교좌의 소재지가 되면서 도시로 성장했다.
843년에 카를 대제의 아들인 루트비히 경건왕의 세 아들이 베르덩에서 카롤링거 왕조의 프랑크 왕국이 3개국으로 분할되는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으로 분할된 세 나라는 이탈리아, 독일, 그리고 프랑스로 발전하게 되었고 베르덩에서 열려 베르덩 조약이라고 불린다.
오토 대제 이후 독일계의 지배를 받다가 1552년 프랑스 왕인 앙리 2세의 지배를 받았고, 1648년에 베스트팔렌 조약의 체결로 정식적으로 프랑스령이 되었다.
제 1차 세계 대전 때에는 베르덩 전투가 벌어졌다. 1916년에 독일군은 프랑스에 큰 타격을 주기위해 베르덩 요새를 공격하기 위해 7개 사단의 병력을 집결했다. 독일과 접해있는 프랑스 도시로서 핵심 방어 기지가 되어야 했던 것이 베르덩의 운명이었고, 이에 맞서 영국군, 프랑스군과 러시아군의 공세가 이어지면서 독일군은 패배했다. 이 전투로 독일은 33만6천명, 프랑스 30만2천명으로 많은 사상자가 났다. 도시도 대부분 파괴되는 큰 피해를 입었고, 독일 패망의 원인이 되었다.
베르덩의 볼거리들
좁은 골목을 지나 언덕 위로 올라가면 마을을 굽어보는 곳에 베르덩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Verdun)이 있다. 대성당은 11~12세기에 건축된 성당으로 로렌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가장 웅장한 건축물이다.
독일과 프랑스 국경지대에 위치한 지리적 영향으로 라인 로마네스크(Roman-Rhénan)양식의, 위에서 내려 볼 때 십자가 두 개가 끝을 마주대고 있는 독특한 성당이다. 예배당 내부는 금색 천사 조각상과 흰색의 거대한 아치 천장으로 꾸며져 다른 성당에서는 볼 수 없는 화려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성당은 제1차 세계 대전시에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복원되었다.
쇼제 성문(Porte Chaussée)은 1380년에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도시 방어 역할을 한 오랜 역사를 지닌 유적물이다. 성문 근처에는 베르덩 지역의 다양한 역사를 알 수 있는 미술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프랭세리 박물관(Musée de la Princerie)이 있다.
생 모르 지하 납골당(Crypte Saint Maur)은 중세시대 지하 납골당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11세기에 베르덩 주교의 명령으로 베데딕트 수도회의 지하예배당이자 납골당으로 지어졌다. 하얀색을 주조로 사용하여 경건함을 더해준다.
베르덩 전쟁 박물관(Musée de Guerre)에는 베르덩 전투와 관련된 문서, 사진, 유물, 훈장 등이 전시되어 전쟁의 참상을 볼 수 있다. 박물관은 17세기 시청 건물의 일부를 전시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그 외에도 베르덩 전투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전쟁 기념관과 두오몽 납골당(Ossuaire de Douaumont)이 있다. 두오몽 납골당에는 베르덩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프랑스와 독일 군인들의 유해 13만여 구가 안치되어 있다. 이들은 신분을 확인할 수 없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무명의 병사들이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 조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