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최저임금, 영세업체 '헉헉'… 대기업 도산마저”
"호주의 최저임금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법에 정해진 대로 최저임금 다 주면 사업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범법자가 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법정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지급하는 영세업체가 수두룩한 거죠."
시드니 이스트우드에서 7년째 요식업을 하고 있는 한인 교포 김 모(56) 씨는 10일 현지법을 지키면서 사업하기 쉽지 않은 호주의 현실을 이렇게 토로했다.'
김 씨는 "호주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18.29호주달러(약 1만5천원)인데, 식당 아르바이트 같은 이른바 '캐주얼 잡'은 20호주달러가 넘는다"며 "법에 정해진대로 임금을 다 주면 채산성이 맞지 않아 사업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 씨는 한국에서 온 워홀러(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 2명에게 시간당 15호주달러(약 1만2천원)의 임금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엄연한 현행법 위반이지만 현지에서 영세한 규모의 요식업체를 운영하는 한인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관행처럼 통용되는 임금이다.
그나마 김 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호주법을 잘 몰라 자신의 권익보호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외국인 워홀러들을 주로 고용하는 현지업체 중에는 시간당 10∼12호주달러 안팎의 저임금을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1·3차 산업 위주인 산업구조의 특성상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큰 호주에서는 매년 최저임금 관련 법규 위반으로 적발되는 건수만 수십∼수백건에 이른다.
지난달에도 한국인 워홀러와 유학생 11명을 상대로 시간당 최저 10호주달러 안팎의 저임금을 지불하며 15만5천 호주달러(약 1억3천만원)의 임금을 체불한 브리즈번의 한인 햄버거 업체 2곳이 당국에 고발됐고, 시드니의 한 스시 체인점도 저임금 의혹에 내몰렸다.
호주 노사문제 중재·감독기관인 공정근로옴부즈맨(FWO)에 따르면 이들 업소는 관련법상 근로자들에게 평일 주간에는 시간당 20.61호주달러의 시급을 줘야 했지만 시간당 10∼16호주달러의 저임금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FWO 책임자인 나탈리 제임스 옴부즈맨은 "호주에서 사업하려면 호주 법을 알고 지켜야 한다"며 "최저임금은 호주 내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며, 이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호주의 최저임금은 미국달러로 환산할 경우 지난해 기준 11.1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프랑스(11.2달러)에 이은 2위다.
그나마 최근 호주달러가 약세를 보이면서 미국달러로 환산한 최저임금이 프랑스보다 낮아졌지만 4∼5년 전까지만 해도 OECD국 중 부동의 1위였다.
최저임금과 관련한 호주법을 잘 모르거나 영어 구사력이 떨어지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임금착취 행위는 호주 정부의 골칫거리다.
매년 수십 건씩 적발되는 이런 사례들이 반복적으로 알려지면서 호주의 국가 평판이 추락할 경우 호주를 찾는 워홀러나 유학생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16회계연도(2015년 7월∼2016년 6월)에 호주를 찾은 한국인 워홀러 수는 1만6천808명으로, 3년 전의 2만4천673명보다 32%나 감소했다.
호주의 과도한 고임금 구조는 이 나라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에도 부담으로 작용해 결과적으로 사업장 철수와 실업자 양산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1963년부터 50년 넘게 빅토리아주 알토나와 남호주(SA)주 애들레이드에서 자동차 생산공장을 운영해온 일본 도요타는 호주의 고임금으로 인한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견디다 못해 지난 10월 현지 공장을 폐쇄했다.
포드와 GM도 도요타와 마찬가지 이유로 최근 호주 생산공장의 문을 닫았고, 결과적으로 4만∼5만명의 호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현대차 호주법인 관계자는 "호주는 전통적으로 노동조합의 힘이 강하고 근로자들의 임금이 높아 해외 업체들이 공장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며 "도요타나 GM과 달리 현대차는 호주 현지에 생산공장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험을 피해갈 수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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