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고 까만 피아노 건반들이 때로는 나를 삼킬 듯이 두렵게 했고, 거대한 검은 악기가 거인과 같이 무대 한 복판에서 연주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숨막힌 긴장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연주복이 아닌, 모든 것을 내려놓은 영적 순례자의 옷을 입은 그가 두드리는 피아노 건반의 강력한 파워는 음악을 모르는 그 누구도 느낄 수 있다. 여느 피아니스트에게서 느낄 수 없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연주로 관객들을 놀라게 했던, 그가 마들렌느 성당에서 열리는 ‘제7회 한불친선공연 ‘Sérénité’ 무대에 선다. 그레이스풀한 외모에 열정적인 연주는 60세의 나이를 도저히 읽을 수 없다. 11월7일, 마들렌느 공연을 앞두고 있는 그를 지면으로 먼저 만나본다.






피아노 연주는 언제부터 하셨는지요? 특별히 즐기시는 곡이라면?




아버지는 청년시절에 불란서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Alfred Cortot의 제자였던 일본인 교수 ‘타쿠고지’에게 피아노를 사사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쇼팽이 즐겨 연주했던 Pleyel 피아노가 우리집에 있었고, 저는 그 피아노로 연습을 하면서 자랐습니다. 그러면서 쇼팽은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가 되었죠. 5세부터 피아노를 시작해서 철이 들면서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소원을 갖게 되었고, 피아노와 같이 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과연 몇 시간을 피아노 앞에서 보냈을까요? 글쎄요…(ㅎㅎ) 반복, 반복, 그리고 반복되는 연습의 시간들… 지루하고 힘들 때 나 자신과 씨름하던 시간들… 하얗고 까만 피아노 건반들이 때로는 나를 삼킬 듯이 두렵게 했고, 거대한 검은 악기가 거인과 같이 무대 한 가운데서 연주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숨막힌 긴장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60 평생을 살고나니, 내 삶을 되돌아보는 여유가 생겼어요.




선생님께 피아노에 대한 의미는 특별할 것 같습니다.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루 이틀만 안 보아도 너무 보고 싶어지고,. 피아노 앞에서 꿈꾸고 말로 다 하지 못하는 감정을 호소하고, 짜증도 내보고, 그러나 음악이 주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에서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시간들이었어요.


그러면서, 제 자신이 내면적으로도 성숙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동반자인 셈이지요.




선생님께서는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공연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연이라면?




1995년 차이코프스키 ‘비창’이 초연되었던 러시아 세인트피터스버그의 필하모니아 홀에서의 연주와 2014년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에서의 어두움과 공포의 영과 싸우면서 연주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나 화려한 웅장한 무대가 아닌, 정말 슬픔과 아픔으로 점철된 과거의 어두운 기억의 중심, 온 인류가 잊을 수 없는 역사의 그 현장에서 열 손가락과 온 몸이 떨리는 연주를 했습니다. 




미국과 일본 등을 순회하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길을 가다가 돌연 연주자로 방향을 바꾸신것을 보게됩니다. 특별한 동기라도 있으신지요? 




1993년 공산체제가 무너진 직후 극심한 가난과 혼란 속에 있는 러시아 쎄인트 피터스버그(St. Petersburg)에서 1만여명의 러시아인들이 모인 대형경기장에서 연주할 때 사람들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면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어떤 이는 마음에 평안함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찬양곡들을 연주했는데, 그 능력을 체험하면서 왜 제 자신이 일생 피아노로 훈련을 받았는지, 그때 제 인생의 목표를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영국웨일즈에서 연주 순례를 하시고 계시는걸로 아는데, 왜 하필 웨일즈를 선택하셨는지...?




1866년 한국에 온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 Robert Jermain Thomas(토마스)의 고향이 바로 이곳 웨일즈입니다. 1904년 웨일즈의 대 부흥의 불길은 온 세계에 그리고 1907년 평양의 부흥까지 이끌었습니다. 


저는 크리스챤입니다. 크리스챤의 발차취를 느끼며 하나님이 주신 재능인 피아노로 어렵고, 힘든 이들 가까이에 다가가길 원합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떠난 황폐한 교회들을 보면서 “노래의 땅”이라고 불리는 웨일즈에 노래가 다시 살아나고, 사람들이 그 부흥의 중심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비젼을 갖고 2013년에 웨일즈로 오게 되었습니다.




60여년을 연주의 길을 걸어오신 선배로서 피아노 전공 후배들에게 해주실 말씀이라면.




완벽과 탁월함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탁월함을 추구해야 하지만, 완벽 하려고 할 때는 삶이 피곤해지거든요. 모든 일은 다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절대적인 창조주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완벽을 과시하려는 것은 오히려 교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정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뿐인 거지요. 크든 작든 이것이 나의 마지막 연주라 생각하고, 온 맘과 온 몸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거죠. 나의 생명을 드릴 때 거기에는 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거죠.  




공연을 앞두고, 재불 한인들에게 인사말씀을 하신다면... 




먼저, 프랑스 파리에서 황혼의 나이에 이렇게 뜻깊은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무척 기쁘고, 설렙니다. 저는 불란서의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한국에서 순교했음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헌신을 기억하면서 이제 우리도 프랑스 땅을 축복하는 통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한국이 전쟁으로 황폐했을 때, 많은 나라들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고, 그걸 바탕으로 우리는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대한민국이 약소국가들을 돕는 입장에 있습니다. 신앙의 빚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랜 타국생활에 지치고 피곤한 심신의 재불한인분들께서 이번 연주를 통해 평안과 안식을 드릴 수 있길 바라고, 조금이나마 힐링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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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위클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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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느 성당에서 펼쳐지는 콘서트 Serenite, 피아니스트: 김애자, 중창단: 브와에브아




(INVITATION을 다운로드 하신 후, 이메일 echosdelacoree@gmail.com 로 좌석배정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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