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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어느덧 칠순을 맞고 있다. 1943년 미국에서 영어판으로 처음 출판된 이래, 저자의 삽화가 가미된 불어판으로 정식 출간된 것은 1946년 4월 6일이다.

이후 288개 외국어로 번역된 세기의 베스트셀러는 7세부터 77세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지구촌 사람들의 가슴을 차지하는 어린왕자이다. 2015년 칸 영화제에는 어린왕자 이야기가 새로 각색된, 마크 오스본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출품되기도 했다. 어린왕자의 친구연령층이 3살로 낮아진 셈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마리옹 코티야르, 뱅상 카셀, 뱅상 랭동 등 유명스타들이 성우로 활약하고, 개봉당시 화제작으로서 프랑스에서 2백만 관객이 들었다. 원작과 거리가 멀다는 혹평도 뒤따랐지만, 2016년 세자르 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작품상을 수상했다.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저자가 어린왕자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만큼은 영화감독들도 존중하고 있다는 평이다.  

<어린왕자>에는 시적인 주옥같은 메시지들이 많이 담겨있다. ‘가장 중요한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보는 것이야’라는 구절은 설령 동화를 읽지 않았다 해도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명언이다. 

너무도 유명한 베스트셀러이지만 프랑스에서 어린왕자의 칠순을 맞이하여, 우리의 자화상도 되돌아볼 겸, 잠시 브레이크타임도 가져볼 겸, 동화나라로 다시 떠나보기로 한다. 

어린왕자가 변덕스런 장미와 결별하고 별나라 B612를 떠나 차례로 방문하는 작은 행성들에는 사실상 21세기 지구촌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보는 인간형들이 살고 있다. 우리사회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간유형이라 할까. 

 

▶ 권력형 인간

 

어린왕자가 방문한 첫 별나라는 임금님 혼자 사는 왕국이다. 백성은 없고 생쥐 한 마리만 있다. 어린왕자가 왕국을 떠나려하자 임금님은 법무장관에 임명하겠노라며 붙잡는다. 생쥐가 복종하지 않으면 재판하여 사형선고를 내리는 막강한 권력을 부여하겠다고 한다. 단 집행 직전에 생쥐는 다시 풀어주라고 지시를 내리는데, 권력욕을 끊임없이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복종대상물인 생쥐의 존재가 필요한 까닭이다.

이 특이한 별나라의 임금님이 아니더라도, 맹목적인 권력남용은 우리사회 도처에 스며있다. 인간차별이 은근히 심하고 위선적이며 정서가 메마른 권력형 교수님, 교장선생님, 목사님, 의원님, 회장님들은 수두룩한 편이다. 

 

▶ 속이 텅 빈 자기과시형 인간 

 

어린왕자가 방문한 두 번째 별나라에는 허풍과 허세를 부리는 이가 살고 있다. 혼자 잘난 척하며 칭찬과 아부에만 귀를 기울이고 싶어 한다. 듣는 이는 없어도 어린왕자에게 무조건 박수갈채를 보내달라고 요구하는데, 화려한 겉모습만 추구하는 속이 텅 빈 전형적인 자기과시형이다.

남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진가를 확인하려는 끊임없는 욕망은 결국 피곤한 삶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 자포자기 인간형 

 

어린왕자가 방문한 세 번째 별나라에는 술꾼이 살고 있다. 술을 마시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술을 마신다는, 철저하게 자기모순에 빠진 비관주의자이다. 목적의식 없이 살아가며 자기위안과 핑계만 일삼는 자포자기 인간형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에서 얻는 교훈이 있다면, 삶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지나치게 염세주의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차라리 웃음의 미학이 절실히 요구되는 경우이다. 

 

▶ 물질주의 속물근성

 

어린왕자가 방문한 네 번째 별나라에는 비즈니스맨이 살고 있다. ‘나는 꼼꼼한 사람’이라고 어린왕자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비즈니스맨은 우주의 별들이 몽땅 자기 것이라고 여긴다.  너무나 꼼꼼한 나머지, 금고에 넣을 별들의 숫자에 한 치의 오차가 없도록 세고, 또 세면서 세월을 보낸다. 우주에 떠있는 숫자를 세느라 정작 별들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그의 삶은 단조롭고 고독하다.  

멋진 인생을 살기위해 재물욕심이 많아도 안 되지만, 금고 안에 넣을 재물들을 지나치게 꼼꼼하게 셀 필요도 없다는 교훈이다.

 

▶ 기계적으로 일하는 성실한 인간형

 

어린왕자가 다섯 번째로 방문한 별나라에는 가로등 점등원이 살고 있다. 하루 종일 1분마다 가로등을 켜고 꺼야하기 때문에 휴식을 제대로 취할 틈이 없다. 직업적 성취감도, 자부심도 없이, 습관적으로 의무적인 일을 반복할 뿐이다. 그의 소원은 잠자는 일. 

바로 현대직업병인 번-아웃 신드롬에 제대로 노출된 인간형이다. 게다가 수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잔소리. 여기에서 우리가 취해야할 교훈은 때로는 무거운 업무나 임무에서 벗어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찾아야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이 순간이 선사하는 즐거움과 내적 행복감을 만끽하기 위해서이다. 

어린왕자는 그나마 성실한 일꾼이라 호감을 느끼지만, 그의 별나라는 너무 작아 두 사람이 함께 살 수가 없다. 어린왕자는 할 수 없이 다른 소행성을 찾아 떠난다. 

 

▶ 상아탑에 갇힌 지식인

 

어린왕자가 여섯 번째로 도착한 별에는 대형 책을 앞에 놓고 도시, 강, 산, 바다, 사막을 그려 넣는 일에 몰두하는 지리학자가 살고 있다. 하지만 지형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발굴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 적은 없다. 지도를 그리는 일 자체가 너무도 숭고한 학문이라 책상을 떠나지 못한다. 상아탑 속의 전형적인 학자유형이다. 그래도 이 박식한 지리학자를 통해 어린왕자는 지구의 존재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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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눈’을 지닌 인간형

 

지구에 도착한 어린왕자는 사하라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이자 서술자 ‘나’를 만나 아름답고 특별한 우정관계를 맺는다. 나이가 다르고, 살고 있는 세상이 다르지만 깊이 교감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서로가 본질을 꿰뚫어보는 마음의 눈을 지녔기 때문이다. 

서술자 ‘나’는 6살 때 그린 보아구렁이 데생이야기를 시작으로 동화의 줄거리를 끌어나간다. 바로 이 데생이 어린왕자와 정신적 교감을 불러일으키는 핵심적인 매개체가 된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가 그린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는 어른들의 눈에는 평범한 모자의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이해받지 못한 아이는 배속에 코끼리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렁이를 재차 그리지만, 어른들은 셈, 문법, 지리공부에 열중하라고 당부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그림그리기를 완전히 포기했다는 서술자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지닌 어린왕자를 만나면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어린왕자만이 겉모습이 아닌 속을 들여다보는 통찰력으로, 서술자가 그린 데생이 평범한 모자가 아닌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했던 것이다. 

어린왕자와 조종사 사이에 흐르는 깊은 정신적 교감 못지않게, 어린왕자와 장미의 애정관계도 동화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어린왕자는 지구에 도착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관계맺음이란 무엇인가를 배우는데, 바로 동화의 중심축을 이루는 부분이다. 

어린왕자는 5천 송이 장미가 핀 정원을 발견하고 충격에 빠지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 수많은 꽃들이 별나라에 두고 온 꽃과 너무도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자기정체성에 위기감이 찾아든 심각한 순간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만이 우주에서 유일하게 장미를 소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상심과 혼란을 겪는 어린왕자 앞에 여우가 나타나며 인연맺음의 중요성을 전달해준다. 하지만 여우도 처음에는 어린왕자가 말을 걸자, “친한(apprivoisé) 사이가 아니라 같이 놀 수 없어” 라고 거부하는데, 어린왕자가 apprivoiser란 무슨 뜻이냐고 세 번을 거듭 집요하게 묻자 “인연을 맺는 것(Créer des liens)”이라 대답하며 비로소 참된 친구가 되어준다. 

수많은 장미들 중에서도 별나라에 두고 온 장미가 어린왕자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은 바로 아침마다 물을 주고, 바람이 불면 바람막이를 쳐주며 정성들여 보살핀 꽃이기 때문이다. 여우와의 대화를 통해 어린왕자는 장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별나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는데, 여기에서 관계맺음의 소중함은 바로 사랑과 미움, 눈물과 기쁨, 고통과 행복, 즐거움과 고난을 함께 공유하는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우리는 겉모습을 중요시하는 사회풍조에 휩쓸려 가시적인 잣대로 인간관계를 맺고자 하는 성향을 지닌다. 인간됨됨이, 진실한 우정과 사랑, 소중한 인연은 바로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본질에 속한다. 이 본질을 직시하는 마음의 눈은 순수하고 맑은 영혼일수록 더욱 밝아지는 법이다. 바로 어린왕자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이다.

 

【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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