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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에서 25Km 정도 떨어진 거리에는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인 오노레 드 발자크가 ‘골짜기 백합’을 완성하며 머물렀던 사셰성이 있다. 이 성은 지금 발자크를 기리기 위해 발자크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셰성은 규모가 작은 아담한 성이지만 발자크를 사랑하는 문학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사셰성과 가까운 곳에는 발자크가  ‘앵드르 강에 박힌 다이아몬드’라고 불렀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아르 드 리도성이 있다. 이 두 성은 프랑스에서 역사문화재로 선정해 보존 중이고,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루아르 계곡의 고성에도 포함되어 있다.




                                      


역사적인 사셰성과 발자크




오노레 드 발자크는 기백이 넘치고, 정열적이었고, 허영심이 강했고, 내일의 밝은 미래를 꿈꾸던 작가이자 부자가 될 꿈을 꾸던 사업가로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사람이었다.  발자크는 1799년 투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소송 대리인의 서기로 발자크가 공증인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발자크는 문학으로 성공하기 원했고, 글을 쓰며 경제적인 독립을 위해 여러 가지 사업에 도전을 했다. 사업은 실패를 하며 빚더미에 안게 되었고, 사치의 버릇이 있던 발자크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발자크가 이 빚더미에서 나올 실마리는 펜이었다. 생활비와 빚을 갚기 위해 그는 ‘인간희극 (Comédie humaine)’을 쓰기 시작했고, 그는 하루에 40잔의 커피를 마시며, 오후 네 시에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자정부터 다음날 낮까지 하루에 보통 14시간의 집필을 했고 체력이 딸릴 때도 최소 9시간의 중노동적인 글쓰기 생활을 했다. 




발자크의 여인과 문학




발자크에게 여성은 문학에서 중요한 모티브이다. 그 중에서도 한스카 백작부인과의 사랑은 발자크의 생애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의 나이 33세 때 발자크는 익명의 여성 독자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를 보냈던 여성은 유부녀였던 폴란드의 귀부인 한스카 백작부인(comtesse Hanska)으로 둘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18년 동안 지고지순한 사랑을 한다. 사랑의 결실로, 그녀의 남편이 사망한 8년 후에 결혼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발자크는 결혼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빚도 갚고, 그녀와의 결혼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과로를 하며 피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신 커피로 인해 심장에 무리가 와 51세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100여 편의 장편소설과 여러 편의 단편소설, 여섯 편의 희곡과 수많은 콩트, 그의 문학의 족적과 더불어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녀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는 발자크 문학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만큼 한스카 부인은 발자크의 삶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 여성이었다. 그러나 한스카 부인이 그의 삶과 문학에 큰 의미를 부여한 만큼 또 다른 여인들도 발자크 곁에 많았다.  


발자크의 작품에는 냉정한 모성이 소설의 주요 모티브가 되기도 하는데,  유년 시절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데서 기인한다. 발자크의 어머니는 32살이 많은 남자와 사랑 없는 결혼을 하여 발자크가 태어나자마자 유모에게 양육을 맡겼다. 발자크 나이 8살 때 기숙학교로 보냈고, 발자크가 기숙사에서 지내다 몸이 허약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6년 동안 한 번도 자식을 찾지 않았던 냉정한 여인이자, 불행한 여인이었다. 


모성이 부재했던 어머니를 둔 발자크는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된 발자크는 결핍을 채우려는 듯 연상의 여인들과 만남을 반복한다. 20대 초반에는 스물 두 살의 연상인 베르니 부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녀는 발자크에게 모성으로, 문학의 조언자로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20대 중반에는 인쇄업을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나며 평생 빚더미에 앉게 되자 다르란테스 공작부인, 카스트리 후작부인 등 많은 여인들로부터 물질적, 정신적 후원을 받으며 어린 시절의 결핍을 채워나갔고 여인들은 그의 작품 속에서 그려졌다. 


이런 그의 작품 중에서도 ‘인간희극’은 등장인물이 2천명이 넘는다. 1789년 대혁명 직후부터 1848년 2월 혁명 직전까지의 프랑스 사회의 격변기를 따라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인간 사회의 자신이 속한 영역에 따라 여러 가지 전형적인 인간을 모습을 담고 있어 발자크의 역작으로 꼽히며 발자크를 프랑스 낭만주의의 전성기 시대에 사실주의 문을 연 작가로 문학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한다. 인간희극에 들어있는 책으로는 ‘외제니 그랑데’, ‘고리오 영감’. ‘골짜기의 백합’ 등이 수록되어 있다. 


 


발자크 박물관, 사셰성(Musée Balzac - Château de Saché)




사셰성은 12세기에는 중세 봉건 영주의 성채가 있던 곳에, 15~16세기 사이에 주거용 주택으로 개축되었고, 17~18세기에 증축 공사가 있었다. 성 주변에는 옛 성채의 기능을 보여주듯 탑과 성벽, 해자 등이 남아있다.  


발자크가 사셰성에 머무르게 된 것은 발자크의 어머니 안느 샤를로트 로르(Anne Charlotte Laure, 1779~1854) 때문이다. 그녀는 18세에 32살의 연상인 베르나르프랑수아 발사(Bernard-François Balssa, 1746~1829)와 집안끼리의 정략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를 사랑하지 못했다. 그녀는 나이 많은 남편 대신 사셰성의 주인인 젊은 장 드 마르와 가까이 지내며 그의 아들 앙리  프랑스아 드 발자크(Henry-François de Balzac)를 낳았다. 1825년부터 발자크는 어머니, 동생 앙리와 사셰성을 자주 찾기 시작했고, 성주인은 발자크가 이곳에 머물기를 원하면 언제든지 환영해주었다. 


발자크는 조용한 이곳에서 글을 썼고, 세상을 떠나기 전인 그의 생애 말년 2년 동안은 이곳에서 장기간 머물며 지친 몸을 쉬었다. 이처럼 사셰성은 발자크에게 안식처와 같은 곳이었고, 이곳에서 발자크는 ‘골짜기의 백합’, ‘고리오 영감’등을 썼다. 


장 드 마르곤이 죽은 뒤에는 성의 주인이 자주 바뀌었다가 1926년에 성의 새 주인이 된 폴 메타디에(Paul Métadier)가 성을 보수한 뒤 발자크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1958년 성은 국가에 기증되어 발자크 박물관으로 다시 거듭나며 파리 발자크의 집과 함께 발자크의 자취를 찾아서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성은 규모가 크지 않고 외관도 특별한 장식이 없는 소박하며, 길이가 다른 장방형으로 된 세 개의 건물이 서로 직각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성 주변에는 2만㎡ 넓이의 공원이 자리고 있어 성을 찾는 이들에게 자연을 선사한다.


성의 내부는 발자크가 머물던 19세기 모습 그대로 꾸며져 있고, 발자크의 자필원고와 희귀 인쇄본, 초상화, 등을 볼 수 있고, 특히 발자크의 방에는 커피 애호가였던 발자크를 그려볼 수 있는 핸드밀과 커피 주전자가 책상 위에 있다.


지하에는 로댕의 조각상들이 있는 로댕 전시관과 발자크를 빚더미에 올려놓았던 인쇄사업에 관련된 기기들이 있다. 상점에는 발자크의 이름을 딴 커피 브랜드, 발자크를 기념하는 커피잔 등 다양한 제품들이 구비되어 있다. 




‘루아르의 보석’, 아제 르 리도 성(Château d'Azay-le-Rideau)




사셰성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제 르 리도성은 ‘루아르의 보석’이라 불릴 만큼 루아르의 고성 중 가장 품위 있고 우아한 성으로 꼽히는 유명한 성이다. 밤에 강변의 불빛과 별빛에 깨어나는 아제 르 리도성은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며 동화속의 공주가 마법에서 깨어나 걸어 나올 듯 환상적이며 신비로운 성이기 때문이다. 


성은 앵드르 강 한가운데 섬처럼 세워진 건축물로 강물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중세시대의 영주의 성이었던 아제 르 리도성은 백년전쟁 때 폐허가 된다. 황태자였던 샤를 7세가 장 드 부르고뉴 (Jean de Bourgogne)가 파리를 점령하자 부르주로 도망가던 길에  부르고뉴파 군대가 장악하던 아제 르 리도성을 공격하며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그 후 성은 전소되어 건물만 남아있다 프랑수아 1세의 재정관이던 질 베르텔로에 의해 16세기 초에 재건되었다. 


그러나 질 베르텔로는 이 아름다운 성에서 얼마 살지도 못하고, 친척인 자크 드 본이 왕실에서 횡령혐의로 처형당하자 신변의 위험을 느껴 국외로 도망을 갔다. 그 후 성은 프랑스 왕실에서 압수해 왕실의 친위대장인 앙투안 라팽에게 하사되어 후손들에게 상속되었고, 라팽 가문과 친분이 있던 루이 13세와 14세는 이곳에 손님으로 머물기도 했다. 18세기 말에는 비애쿠르 집안으로 넘어가며 성은 증축을 하였고 지금의 성으로 남게 된다. 


성은 중세 말과 초기 르네상스 양식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건물로 급경사진 지붕과 지붕창, 수평선의 강조, 180도로 급격하게 꺾인 안마당의 직진계단 등이 인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 내부의 방들은 르네상스부터 신고전주의 양식까지의 다양한 양식이 방마다 고유의 특징으로 장식되어 있고, 16~17세기 제작된 대형 태피스트리들이 유명하다.




【한위클리 / 조미진 chomi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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