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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물다 헤어지는 일이 무한히 반복되는 파리 지하철에서 언뜻 스친 한 만남이 최근 SNS상에서 화제를 모았다. 애틋한 감동이 급속도로 전파되면서 유력일간지에도 기사화된, 한 만남에 관한 이야기이다. 

 

메트로에서 우연히 스친 떠돌이 아티스트의 데생을 SNS에 올려 화제가 된 장본인은 파리에서 활동하는 디나르 지방출신 에르완 드베즈. 그는 지난 9월 20일 13시 30분경 메트로 2번 선을 타고 샹젤리제 방향으로 향하던 도중 클리쉬 광장 역에서 캔 맥주를 손에 들고 전철에 올라타는 한 청년을 지켜보게 된다. 메트로 안에서 흔히 마주치는 주거지 없는 떠돌이(SDF)였다. 

떠돌이 청년은 큰소리로 자살할 것이라고 혼자 떠들었는데, 누가 봐도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는 승객들 사이를 돌며 구걸의 손을 내밀면서 한 여성승객을 상대로 시비를 걸기까지 했다. 디나르 지방 청년은 그와 가까이 대면하자 상대방의 흥분을 진정시키기 위해 동전을 건넸다. 

 

그냥 스쳐버릴 수도 있었던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떠돌이 청년은 동전을 받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횡설수설하더니 옆구리에 끼고 있던 파일에서 종이를 꺼내들었다. 그러더니 지하철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 서서 종이에 무엇인가를 미친 듯이 긁적거렸다. 디나르 청년은 처음에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약 30초 정도 지나, 떠돌이 청년은 동전의 댓가라도 되는 듯 긁적거린 종이를 청년 승객에게 내밀었다. 바로 SNS에 공개된 데생이다. 

청년 승객은 데생을 선사받자, 이왕이면 서명도 해줄 것을 요청했다. 떠돌이 청년은 처음에는 서명을 거절했다. 모든 아티스트들은 작품에 서명을 한다고 재차 요구했을 때, 그는 심리적 안정을 되찾으며 흡족해하는 기색을 띄웠다고 한다. 이어서 날짜도 기입해달라는 요청에, 날짜를 모르고 지낸지가 퍽이나 오래됐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청년 승객이 그날은 9월 20일이라고 일러줬다. 이어서 그는 그 데생을 꼭 선사하고 싶은 이가 있는데, 지인역시 데생을 무척 좋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찬사에, 떠돌이 아티스트는 감동하여 두 눈에 눈물마저 고였다고 디나르 청년이 회상했다. 그는 작은 정성이나마 그림 값을 지불하려했는데, 떠돌이 아티스트는 돈을 받지 않은 채 재빨리 사라졌다고 전했다. 

 

그야말로 초현실적이며 시적인 만남이었다고 에르완 드베즈는 피력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 역시 떠돌이 청년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전했다. 떠돌이가 전철에 올라타서 여자승객과 실랑이를 벌이는 광경을 지켜보며 자신도 공연히 시비에 휘말려들지 않을까, 다른 모든 승객들처럼 속으로 잔뜩 움츠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의 찰나적인 스침으로 그치지 않고, 두 이방인 사이에 따뜻한 인간적 교감이 교차되었던지라, SNS을 통해 네티즌들과도 공유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데생을 본 네티즌들은 화법에서 피카소 못지않은 솜씨라고 호평했다고 한다. 피카소로 말하자면, 파리 지하철의 떠돌이 아티스트처럼, 재빠르게 자유자재로 후다닥 데생을 그려 마음 내키는 대로 주변에 선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관련된 일화도 있다. 

어느 날 피카소가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 옆자리 손님이 그를 알아보고 데생 하나를 그려달라고 청했다. 칠순 노장화가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1분도 채 못 되어 서명도 멋지게 휘날린 뒤 데생을 넘겨줬다. 손님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그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색하기로도 유명했던 피카소가 당시 5천 프랑이라는 거액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1분짜리 데생치고 너무 비싸다고 손님이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자 피카소는 “이 데생을 그리기 위해 나는 이미 50년이라는 세월을 받쳤소!”라고 대꾸했다는 일화이다.  

 

떠돌이 청년이 흔들거리는 지하철에서 30초 정도의 초스피드로 데생을 그려낸 솜씨에 자신도 무척 감탄했노라고 에르완 드베즈는 피력했다. 화가인 자신의 눈에 그가 재능을 지닌 아티스트였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떠돌이 아티스트는 재빨리 사라지기 전 자신의 작품에 관해 설명했다. 음악에 맞춰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커플의 모습을 담은 데생이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사랑에 취해 정열적으로 춤을 추다가, 음악이 끝나면 춤도, 사랑도 멈추고, 각각 자신들이 왔던 길로 헤어져 되돌아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디나르 지방청년은 파리 지하철에서 만난 무명 아티스트를 다시 찾고 싶다고 밝혔다. 그의 메시지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모두 인기를 모았던 것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처럼,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스친 한 만남이 왠지 모르게 풍요로운 정감이 되어 우리의 각박한 가슴을 적셔주기 때문이리라.

 

【프랑스(파리)=한위클리】이병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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