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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왕 루이 14세는 ‘프롱드의 난’이 일어났던 6년 동안 어린 나이에 파리를 떠나 각지의 피신처에서 도망하며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의 잊을 수 없는 경험은 ‘짐이 곧 국가다’라며 절대왕정을 구축하게 한 동기가 되었다. 

                                      

‘프롱드의 난’과 루이 14세



‘프롱드의 난(La Fronde)’은 1648년부터 1653년에 일어난 난으로, 귀족의 입장에서는 귀족 최후의 저항으로, 시민의 입장에서는 최초의 시민혁명의 시도라고 기록되는 프랑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난이다. 

난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왕위에 오른 루이 14세(당시 9세)가 미성년이라  모후 안 도트리슈아가 섭정을 하며 마자랭을 재상으로 기용하면서이다. 두 사람은 30년 전쟁으로 탕진된 국고를 채우기 위해 면세 대상이던 법관들에게도 직접세를 부과하고 세금 창출을 위해 5만여개의 새로운 관직을 만들어 판매하였고, 이에 분노한 법관과 관리들이 항의를 하자, 1648년 8월에 파리 고등법원의 강경파 평정관이 체포되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파리 고등법원과 관리들에 이어,  파리 시민들까지 봉기하여 파리 곳곳의 저택 유리창에 돌팔매를 하며 절대왕권에 저항하였다. 이때 왕실과 마자랭은 파리를 떠나 도피해야 했고, 안 도트리슈는 해결책으로 과세 동의권 부여, 관신신설 억제 등을 골자로 한 파리 고등법원의 왕정개조안을 승인하며 난은 끝나는 듯했지만 1650년 초 다시 난이 일어나, 다시금 왕실과 마자랭은 파리를 떠나야 했다. 

그러나 고등법원과 콩데 등 구 귀족파와, 랭스 대주교 보좌의 소시민파로 분열되어 서로 당파싸움을 일삼아 시민들의 반감을 사며 외면당하고, 이틈을 이용한 궁정군의 진압으로 난은 실패하게 되고, 왕실은 다시 파리로 돌아오게 된다.

프롱드(Fronde)란 당시 아이들 사이에 유행한 돌팔매 용구에서 따온 말이다. 

루이 14세는  왕실을 떠나 피난하며 목숨마저 위태로웠던 시간 때문에 신하에 대한 불신으로 국정을 도맡아 하며, 귀족의 권한을 줄이고, 마자랭이 죽자 재상제 마저도 폐지하며 절대왕권을 구축했고, 왕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지었다.  



쉴리 수르 루아르성의 역사



루이 14세가 ‘프롱드의 난’이 일어난 6년 동안 이곳저곳 피난하던 시절, 잠시 머물던 성 중의 한 곳이 루아르 계곡의 고성 중 하나인 쉴리 쉬르 루아르성(château de Sully-sur-Loire)이다.

쉴리 쉬르 루아르성은  12세기 초에 쉴리 영주의 요새의 기능을 하던 작은 성이었다. 1218년 때 프랑스 왕 필리프 2세의 명에 의해 성벽 모퉁이에 감시용 탑이 세워지며 요새의 기능을 더하게 된다. 14세기에 부르고뉴 공작의 시종장이었던 기 드 라 트레무유(Guy de la Trémouille)가 새 성주가 되어 유명 왕실 건축가인 레이몽 뒤 탕플(Raymond du Temple)에게 성을 증축하게 했다. 성은 요새의 기능은 더 강화되면서 저택은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 세워지게 된다.  

1602년 성의 소유권은 다시 앙리 4세 때 쉴리의 공작인 막시밀리옹 드 베튄(Maximilien de Béthune)에게로 넘어갔다. 막시밀리옹 공작은 16세기 말에 프랑스의 신구교간의 갈등이 커지자 위협을 느끼고는 성의 요새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포대를 설치할 수 있는 거대한 원형 탑을 세우고, 성의 내부에서 외부에 노출되는 것 없이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도록 탑과 건물들을 잇는 회랑을 만들었다. 

이후에도 성은 보수를 위한 작은 공사들이 이어지며 관리되어 오다 1918년 대형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데 이어, 제 2차 세계대전에 폭격을 입어 파손이 큰 상태로 방치되다가 1962년 루아르 지역위원회가 성을 사들여 지금의 성으로 복구하였다. 

성문을 마주보고 오른편에 있는 직사각형의 규모가 큰 건물은 14세기에 망루 역할을 하던 주루이고, 왼편에는 르네상스 풍의 저택과 회랑이 길게 늘어서 있다. 뒤쪽으로 17세기에 세워진 포격용 탑이 자리하고 있다. 성문과 정원을 잇는 다리는 도개교였지만 지금은 고정되어 있고, 성과 정원을 둘러싼 호수에는 성이 아름답게 반영되어 떠오른다. 

성의 내부는 붉은 색, 분홍색, 파란색 등으로 통일을 이룬 아름다운 방들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방은 에로스와 프시케의 신화를 다룬 17세기 태피스트리가 걸려있는 ‘프시케의 방’이다.  섬세하고 화려한 태피스트리와 조화를 이룬 방의 장식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또 다른 방으로는 앙리 4세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왕의 침실’이다. 이곳에서 루이 14세가 머물렀다. 루아르 계곡의 수많은 아름다운 고성 중에서도 왕실이 작고 아담한 이 성을 선택한 이유는 요새의 기능을 최대한 살린 성의 이점 때문이다. 

이 성에 머무른 사람으로는 루이 14세 뿐만 아니라, 볼테르, 잔 다르크도 잠시 체류했다고 한다.

예배당에는 쉴리 공작이었던 막시밀리옹과 그의 두 번째 아내의 대리석상과 무덤이 있다. 

지금 성은 중세 요새건축과 르네상스 양식의 조화를 이룬 건축미와 오랜 역사적 가치가 인정받아 프랑스 역사 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다. 



Château de Sully-sur-Loire

주소 : Chemin de la Salle verte 45600 Sully-sur-Loire

전화번호:02 38 36 36 86

1월은 개방하지 않음

mélchateau.sully@loiret.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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