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달러의 기적 20] 미국 최초의 경구 피임약 이렇게 만들어 졌다

 

'8달러의 기적'은 미국 최초로 제3세대 경구 피임약 노개스티메이트를 발견·개발한 재미과학자 한도원(84) 박사의 일대기입니다. 북녘에서 보낸 소년기, 혈혈단신 탈출하여 남녘에서 보낸 청년기, 그리고 1955년 '8달러'로 시작한 미국 유학 생활 등에서 삶의 고비들을 극적으로 통과해온 그의 일생은 한 편의 잘 꾸며진 드라마와 유사합니다.

 

한 박사는 2002년 은퇴해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살고 있습니다. 그가 제공한 자료들과 구술을 토대로 기자가 스토리를 재구성했습니다. 이 기사는 1인칭으로 서술됩니다. (기자 주)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1968년 9월 존슨앤존슨 계열사인 오르소(Ortho) 제약사에 준 과학자로 입사하기는 했지만 처음 수 개월 동안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번식 연구 그룹에 배속되었지만 출근 첫날부터 내게는 특정 일거리가 주어지지 않았고, 매일 다른 연구원들의 실험과정을 관찰하는 일이 전부였다. 연구소에 들어오자 마자 고참 연구원들은 앞으로 1년 안에 눈에 띄는 연구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곧바로 해고될 것이라고 귀띔해 주었던 터여서 초조감이 더해 갔다.

3개월여간 별다른 하는 일이 없이 지내던 어느날, 더는 참을 수가 없어 나를 지휘 감독하는 디렉터를 찾아가 “이제 어떤 일을 할 때가 되지 않았냐”며 일거리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슬며시 미소를 짓더니 내게 두툼한 책 한권을 던져주고는 요점을 정리하고 무슨 문제점이 있는지, 코멘트 할 내용이 있는지 찾아 보고하라고 했다. 그가 건네준 책은 그의 지휘 아래 임상실험 초기 단계에 접어든 피임 합성제 개발과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오랜만에, 그리고 처음 주어진 과제인지라 나름 실력을 총동원하여 일주일에 걸쳐 연구팀이 해온 실험결과를 꼼꼼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 신참에 불과한 내가 보기에는 이제까지의 실험결과라는 것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연구결과를 다 검토한 어느날 디렉터를 찾아가서는 “현재까지의 임상실험 결과에 문제점이 너무 많아 보인다”며 다른 실험을 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팀장은 미덥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그렇다면 한 번 해보라”며 허락했다.

이후로 나는 3개월 동안 밤이나 낮이나 쥐와 토끼 등을 이용한 새로운 임상실험에 매달렸다. 그런데 실험의 결과는 연구팀 디렉터가 지휘한 임상실험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 되고 말았다. 전혀 예상치 않은 실험결과였으나 디렉터는 붉으락 푸르락하며 어쩔줄 몰라 했다. 더구나 다른 고위급 연구원과 다른 고참 연구원들의 임상실험들도 팀장의 결론을 뒷받침 하는 것이었으니 그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을 터였다. 나는 의도치 않게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자칫 몇 개월 후면 해고를 당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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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슨앤존슨의 계열사 오르소(Ortho) 제약 연구소의 현재 실험실 건물. 쥐와 토끼를 이용한 피임약 임상실험을 계속했다. ⓒ위키피디아
 
“지금 하고 있는 연구는 엉터리!" 회사를 뒤집어 놓다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날, 내분비과 연구팀을 포함한 오르소 제약사 전체 이사회가 열린다는 사내 발표가 나왔고, 나에게도 반드시 참석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이사회 당일 회의장 안에 들어서니 각 연구 분야 과장들과 디렉터들이 심각한 표정을 한 채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회의가 시작되고 나서 나의 실험결과가 문제를 불러일으킨 것을 바로 알게 되었다. 연구팀 디렉터는 내게 실험결과는 물론 절차를 상세히 설명하라고 요청했다. 설명을 다 들은 후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닥터 한, 현재 개발하고 있는 합성제가 임상실험에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무엇보다도, 합성제가 새로운 약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나는 머뭇거림 없이 답했다.

“아뇨,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놀랜 표정의 그가 이유를 설명하라고 했다. 나는 명료하고도 확신에 찬 어조로 요약했다.

“현재 임상실험 중인 합성제는 물론 효력을 발휘할 겁니다. 하지만 기존의 다른 합성제들과 차이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독특한 새로운 약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그가 “다음 이유는?” 이라고 물었다.

“현재의 합성제는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미 밝혀졌듯이 원숭이에게 종양을 일으켰습니다. 독특한 새로운 합성제를 내놓지 않는 한 현재의 합성제가 신약으로 탄생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나는 좀더 자신감 있는 어조로 결론을 맺듯 말을 이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시중에 성공적인 새로운 약으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세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 첫째는, 새로 개발된 약이 얼마나 효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고, 둘째는, 안전성이 입증되어야 하며, 셋째는 독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나는 현재 임상실험 중인 합성제는 이 같은 세 범주 모두에 부합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말이 끝나자 마자 놀라운 만큼의 즉각적인 반응이 상기된 얼굴의 디렉터에게서 튀쳐 나왔다. 그는 그 자리에서 최고 선임인 수석 연구원을 바라보며 작심한 듯 말했다.

“저의 결심을 밝힙니다. 비록 현재의 합성제를 개발하기 위해 수 백만불의 돈을 들였지만, 현재의 프로젝트를 중단할까 합니다. 모든 연구팀들은 현재 진행 중인 실험을 3개월 내에 마치도록 요청합니다.”

연구 디렉터의 단호하고도 신속한 결정은 나에게는 놀라움을 넘어서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학자적 양심과 고결한 인품을 보여준 그 디렉터에게 머리가 숙여졌다. 하지만 그 사건은 나 스스로에게도 큰 교훈을 주었다. 내가 뱉어내는 말 한마디를 매우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연구팀 디렉터는 나의 실험결과와 설명만을 듣고 회사의 명운이 걸릴 수도 있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나는 한 회사에 속한 과학자로써 책임감이 막중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몸에 익히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 후에 생각해 보니 당시 나의 당돌한 행동은 회사에 안긴 중대한 공헌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했다. 나의 반발로 중단된 프로젝트 덕분에 회사는 막대한 제정적 피해를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로 인해서 우리 연구팀의 운영체계가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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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소 제약회사 연구원 시절. ⓒ 한도원
 
끈질긴 임상실험에 질려버인 화학자들

여기서 잠깐 당시의 피임약 연구에 대한 사회 문화적 환경을 언급해야 겠다. 1960대 당시 미국은 인종간 평등은 물론 성의 평등에 대한 대 변혁기에 있었다. ‘여성의 몸은 여성이 주인이다’는 기치 아래 여성해방운동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고, 모든 학문 분야에서 이에 동조한 연구가 붐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제약업계는 여성해방운동그룹들의 적극 지원아래 피임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고, 역사이래 최초로 경구 피임약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시중에 막 개발되어 나온 경구 피임약들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한꺼번에 많은 양의 알약을 취해야 했고, 강도가 너무 센 나머지 부작이 많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약사들의 최대 관심은 적은 양으로 부작용이 없는 피임약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우연찮게도 동양의 지지리도 가난한 나라, 그나마 남녀 평등이란 꿈도 꾸지 못할 나라에서 온 나는 머나먼 미국 땅의 격변하는 문화적 환경이 놀랍고 흥미롭기까지 했다. 나의 연구는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입사 초반에 한바탕 ‘말썽’을 일으킨 나는 매사에 신중하고도 끈기 있는 자세로 연구에 임했다. 몇 개월을 연구팀에서 일하다 보니 새로운 합성제를 만드는 일에 화학자들의 도움이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르소 연구단지에 내의 화학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나의 합성제 만들기 연구는 서서히 틀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합성제의 생물학적 활동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의 스크린(가려내기)을 해야 했고, 이는 지루한 시간 싸움을 필요로 했다. 이제까지 화학자들이 구성원자들을 조작하여 순전히 화학적 호르몬 합성제를 만들어 놓으면, 제약회사 연구원들은 대체로 1회성 스크린으로 그 합성제가 호르몬으로서 가치가 있는지를 평가하고는 끝을 맺었다.

하지만 나는 단 하나의 화학적 호르몬 합성제를 놓고도 여러 각도에서 스크린 작업을 했다.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 화학자들은 내가 지루한 스크린 작업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 지 염려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 같은 일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 합성제를 접할 때마다 “이 합성제가 새로운 약이 될 수도 있어!, 내가 새로운 약을 발견할 수도 있어!”라며 스스로에게 다짐하곤 했다. 동료 화학자가 화학적 방법으로 유사 호르몬 합성제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여러날을 보낸다면, 나 또한 그 합성제가 실제로 호르몬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데 여러날을 보냈다. 화학자들은 나의 이러한 끈기와 열정에 감탄하고 고마워 했다. 자연 그들과 돈독한 관계가 이뤄지게 되었다.

화학자들과의 좋은 관계맺기는 이후로도 30여년 동안 지속됐고, 나의 연구에서 고비마다 중대한 역할을 해 냈다. 결국 은퇴한 지 10여년이 흐른 후에 화학자들 가운데 몇 명이 내 이름을 따서 지역 연구단지의 한 건물을 ‘한도원 컨퍼런스 룸’(Do Won Hahan Conference Room)으로 명명하도록 공식 요청했다. 지난 2013년에 최종 승인을 얻은 ‘한도원 컨퍼런스 룸’은 펜실베이니아 스프링 하우스의 잰센제약연구소(Jansen Pharmaceutical Research)의 한켠에 헌정되어 컨퍼런스를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전세계 과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다.

어쨋거나 나는 1968년 입사 첫해에 신참으로서는 센세이셔널한 ‘말썽’을 일으킨 끝에 회사에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1년 후에는 과학자로 승진하였다. 앞서 소개한 합성제 실험 프로젝트 외에 다른 여러 건의 프로젝트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 놓아 회사 측으로부터 주요 연구원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나의 진로를 존손앤 존슨 연구원으로 정한 것은 참 잘한 일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하는 일이 신나고 재미가 있었다. 나는 주중이고 주말이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소에서 살며 연구에 몰두했다.

일 자체가 보람있고 재미있다보니 급료에도 불만이 없었고 승진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4~5년 정도 근무하면 급료와 승진에 불만을 표출하고 회사를 그만 두는 일이 흔했으나, 나는 내 연구 자체에 만족하며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미국인 친구들은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했다. 이런 와중에 나는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 나는 1970에 시니어 과학자로, 1973년 연구 그룹 리더, 1975에는 섹션 헤드가 되었고, 1982년 부 디렉터에 이어 1987년에는 디렉터 자리에 올랐다. 1992년에는 연구소 최고의 지위인 석좌 연구원 자리에 올라 2002년 은퇴할 때까지 후학들을 지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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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1969년 9월 15일 입사 1년만에 준 과학자에서 과학자로 승진했다. 사진은 회사 측이 승진을 알려온 편지. ⓒ 한도원
 
‘외톨이’ 박사와 짝 이뤄… 미국 최초 노개스티메이트 발견 ‘쾌거’

이쯤에서 나의 오르소 연구소 생활에서, 아니 일생을 두고 최고의 보람을 느낄만한 일을 벌이게 된 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전까지도 나의 삶의 고비 고비에서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 나의 앞길을 인도했는데, 이번 역시 적시에 최고의 인물이 나타나 나의 진로에 빛을 비쳐 주었다. 그의 이름은 죤 맥과이어 박사. 프린스톤에서 내분비학 박사학위를 한 그는 호르몬 수용체(hormone receptor) 연구에 탁월한 지식을 가진 연구원으로, 나보다 1년 늦게 오로스에 입사했다. 하지만 사내에서 그는 인간관계가 좋지 않아 외톨이로 지내고 있었다. 아이비리그 출신으로서의 자만심에서인지 타인을 대하는 태도나 연구원으로서의 성실도 등에서 그다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그와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고, 팀 연구에서도 자연 배제되는 듯했다.

나는 입사 ‘선배’로서 그에게 “너 계속 이 상태로 머물다가는 해고당하고 말 것”이라고 충고했는데, 이를 귀담아 들었던 그는 어느날부터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맥과이어는 사귀고 보니 나름 괜찮은 구석이 있었고, 차츰 서로를 깊게 알게 되면서는 연구분야에 대한 토론을 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그는 튜브를 이용한 화학적 호르몬 합성제 만들기에 일가견이 있는 반면, 동물을 이용한 임상실험에 대해서는 캄캄한 상태였다. 반면에 나는 생화학에 문외한이었고, 동물실험에 전문가였다. 나와 맥과이어의 조합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맥과이어와 나는 수시로 의견을 나누었고, 언젠가는 둘 사이의 기술과 지식을 서로 보완하여 획기적인 호르몬 합성제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이후로 그와 팀을 이룬 나는 수백 가지의 호르몬 합성제들을 실험하고 평가하는 일을 계속했다. 실험을 거듭하던 1970년대 초, 우리는 드디어 새로운 자연 황체호르몬(progestron, 프로개스트론) 일반적으로 여자의 임신은 발정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배란 후에 분비되는 황체호르몬의 합성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우리가 하려던 것은 황체호르몬을 억제하는 연구였다. 새로 발견된 황체호르몬에는 노개스티메이트(Norgestimate)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우리는 노개스티메이트가 어떤 과정을 통해 어디에서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새로운 자연 황체호르몬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었다. 그러나 결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임상실험을 거쳐 하나의 상업용 완제품으로 시중에 나오기 까지는 보다 멀고도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에도 미국은 세계 어느나라 보다도 식약청(FDA)의 규정이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런 와중에 1986년 허가 규정이 다소 느슨한 독일의 존슨앤존슨 지사 연구소에서 먼저 노개스티메이트를 시중에 내놓게 되었다. 노개스티메이트는 실레스트(Cilest)라는 이름으로 재빠르게 유럽 여러 나라에 팔리게 되었다.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연구와 실험을 계속하던 1989년 초, 드디어 낭보가 날아들었다. 일생일대의 낭보였다. 나는 1989년 12월 29일 그날의 기쁨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존슨 제약연구소(R.W. Pharmaceutical Research Institute)의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한 박사, 축하합니다. 방금 식약청(FDA)부터 당신들이 발견.개발한 노개스티메이트를 최종 승인했습니다.”

미국 식약청(FDA)가 새로운 경구 피임약을 기다려 온지 26년 만의 개가였다. 나 개인의 승리였을 뿐 아니라, 오르소 제약연구소의 승리였다. 아니, 원하지 않는 임신의 공포로부터의 해방이요, 인류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는 또다른 방책을 내놓은 쾌거였다. 나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학자로서의 성취감에서 나온 눈물이었고, 탈북 이후 기나긴 인간적 고독을 이겨낸 기쁨에서 나온 눈물이었다. (구술 정리 및 스토리 재구성 : 김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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