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 이야기] '백세 인생 예산안’을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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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석춘.
 
(올랜도=코 리아위클리) 송석춘 = 새해 들어 어느덧 20여일이 지났다. 우리 마을에 사는 한 노인을 만나 아침 인사를 하며 "새해 소망이 무엇인가요?" 하고 물었다. 노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내년에도 이 자리에서 너의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것" 이라고 한다. 그는 88세의 건장한 백인이다.

인생 80이면 가진자나 못 가진자나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백세 인생'이란 노래에는 80세에 찾아온 저승사자에게 ‘나는 아직도 쓸만한 게 있으니 못간다고 전하여라'는 가사가 있다.

나는 오늘 산보길에 이 노래가사를 생각했다. 얼마 있으면 나도 만 80세가 된다. 과연 나는 쓸만한 게 있는 인생인가. 부끄럽지만 지금 저승사자가 찾아온다면 나는 쓸만한 게 남아 있는 인생이라 전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다만 남에게 조금이라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으로 새해에 가정 예산을 만들어 보았다. 앞으로 10년을 더 산다면, 혹은 20년을 더 산다면 하는 예상아래 두 늙은이가 최저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돈이 얼마가 되는 지 월별 연별로 따져 보았다.

나는 젊었을 때 야근까지 해 가며 ‘차기 예산안’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예산안을 들고 국방부에 부지런히 며칠동안 출근했다. 그때 내가 소속되어 있던 과에서는 출장비 한 푼 주지 않았다. 당시 국방부 군무원은 '공군에는 위관장교 밖에 없느냐'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출장비도 없이 연일 출입하고 있는 내가 안쓰러워서였을까. 어쨋든 당시 예산안 작성 경험은 이후 살아가면서 삶의 예산을 꾸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올해 만든 우리 부부만의 예산안을 할멈에게 보여주며 “시간이 있으면 한번 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할멈은 내 예산안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잔소리만 해댔다. 나는 화가 치밀었으나 정초부터 언성을 높힐 수 없어 꾹 참았다.

"내가 먼저 죽어도 이 예산안대로 살면 백세까지 산다해도 조금은 재산이 남을 거요" 하고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돌아 앉았다.

지금 남미 여러나라가 경제 위기에 처해 있다. 정치인들은 10년 20년 앞을 내다 보지 않고 인기몰이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나라는 경제가 붕괴상태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한국도 제2의 IMF를 맞을 지도 모른다고 한다. 나같은 이민자라 해도 경제 불안을 해소할 만한 내 나름대로의 의견은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감히 그 해법을 말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

지난 IMF때 한국에서 친척들이 도움을 청했는데, 당시 그들이 참 안쓰러웠다. 많은 도움을 줄 수 없는 내 처지 탓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앞을 내다보면서 땀흘려 열심히 살기를 게을리 한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어떤 젊은이는 내가 기름때 묻혀 가며 땀 흘리며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던지 나에게 "송형, 이것 처분해서 아이들에게 주고요. 편히 사세요" 라고 말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며 살면 될텐데 왜 이런 고생을 하며 사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후로도 계속 고생했고 중노동에 몸도 조금 골병이 들었다. 그래도 은퇴 계획이 맺은 열매로 현재 나의 삶은 만족스럽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참 편하다.

내가 만약 '백세 인생'이란 노래를 부른다면 이렇게 부르고 싶다.

"00세에 찾아온 저승사자에게 나는 이미 극락세상에 살고 있으니 갈 필요 없다고 전하여라"

독자 여러분들 모두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고 장수하기를 기원한다. (<기름때 묻은 원숭이의 이민생활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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