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통영사관 플로리다 재외투표소 우성식품. 본 투표소가 있는 애틀랜타로부터 왕복 18시간 거리의 플로리다 동포들을 위해 19대선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애틀랜타통영사관 플로리다 재외투표소 우성식품. 본 투표소가 있는 애틀랜타로부터 왕복 18시간 거리의 플로리다 동포들을 위해 19대선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 김명곤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487명. 애틀랜타 총영사관 플로리다 재외투표소에서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숫자다. 미국 동남부 6개 주를 관할하는 애틀랜타 총영사관 김충진 영사는 플로리다에서 몇 명의 한인 동포들이 재외선거인으로 등록을 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영사관 측은 6개주(조지아, 플로리다, 앨러배마,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전체 등록 유권자가 6061명이라는 것만 발표했을 뿐이다. 18대 대선 등록자가 3673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2388명이 늘었고, 당연히 투표자 수도 늘었다.

최소한의 참관인수(2명)도 채워지지 않아 영사관 직원을 빌려와야 했고,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한참 들여다보아야 할 정도로 엉성한 '대선공문'이 급히 배포된 선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회관이 없어서 식품점 한 모퉁이를 빌려서 치른 '선샤인 스테이트' 플로리다의 19대 대선 재외투표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사흘 간의 대선 투표현장을 수시로 방문한 기자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열기를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플로리다 뿐만이 아니었다. 사흘간 투표소를 연 앨라배마 몽고메리 투표소는 664명으로 '만선'을 이루었고, 엿새간 문을 연 애틀랜타 본 투표소에는 3125명이 몰렸다. 3개 투표소 합계 4276명이 새 대통령을 뽑는데 표를 던졌다. 투표율로만 따지면 지난 18대 대선 투표율 69%를 약간 상회하는 70.5%에 그쳤으나, 지난 18대 대선 2551여명에비해 1725명이 늘어 68%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미주 지역 전체 투표율은 71.7%였고, 전 세계 재외투표율은 75.3%에 이르렀다.

"투표해야 세상 바뀐다" 젊은 층 유학생들 열기 '후끈'
 
몰려드는 투표자들. 4월 29일(토)에는 오전부터 투표자들이 몰려들어 하루에만 261명이 투표했다. 플로리다에서 처음 치러진 대선투표에서 사흘간 총 487명이 투표를 마쳤다.
▲ 몰려드는 투표자들. 4월 29일(토)에는 오전부터 투표자들이 몰려들어 하루에만 261명이 투표했다. 플로리다에서 처음 치러진 대선투표에서 사흘간 총 487명이 투표를 마쳤다.
ⓒ 김명곤

 


플로리다 재외선거투표자가 '겨우' 487명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열기'라고 표현한 것은, 투표참여자들이 밝힌 '투표 이유' 때문이다. 우선 이들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딱 남북한 합한 크기의 플로리다 지역에 얼마나 많은 재외 유권자들이 살고 있는지를 추정해 보기로 한다.

 

본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번 19대 대선 재외 투표에 재외 유권자 29만4633명 가운데 22만1981명이 참여해 75.3%를 기록했다. 이는 18대 대선 투표자인 15만8225명보다 6만3756(40.3%) 증가한 것으로, 추정 재외선거권자 197만 명의 11.2%에 해당한다.

이 같은 통계치를 기준으로 플로리다 재외선거인 수를 역 추정해 보면, 19대 대선 플로리다 재외선거권자는 5500여 명, 재외선거인 등록자 수는 700여 명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국외 부재자와 재외선거인을 모두 포함한 추정치이다. 지난해 4월 치러진 20대 총선 선거인등록자가 344명(투표자 118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두 배 이상의 유권자가 이번 대선에 등록했고, 4배의 투표 증가율을 보인 셈이다.


이들 700여 명의 플로리다 재외투표자들 가운데 첫날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우성식품에 설치된 플로리다 투표소에서 열기를 뿜어낸 투표자는 104명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아침 일찍 날아온 주 애틀랜타 김성진 총영사가 자리를 지키며 투표 현장을 지켜본 것부터가 심상찮은 일이었다. 김 총영사는 "처음으로 대선 투표소가 설치된 플로리다 동포들의 열기가 대단해 보인다"며 두어 시간을 지켜본 소감을 말했다.

첫날 투표자 10명 가운데 9명은 게인스빌이나 탤러하시 등에서 공부 중인 유학생들이었다. 막 봄학기를 끝내서인지 부스스한 얼굴에 피곤함이 잔뜩 묻어있는 표정들이다. 세 투표자 가운데 하나씩 무작위로 인터뷰를 시도했다. 

- 왜 투표하러 왔나요?
"투표를 해야 세상이 바뀔 거 아닙니까?" (익명의 데이토나 비치 유학생, 25)

이번에는 질문을 바꾸어 막 도착해 투표를 마친 부부에게 물었다.

- 후보 선택의 기준이 뭐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 사람입니다." (플로리다 대학 방문 교수 가족 강상미, 38)

아들 한철희(30)씨와 함께 투표장에 온 50대 후반의 여성 투표자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불안해 죽겠어요. 안보를 튼튼히 할 사람에게 투표했습니다."

연이어 같은 질문을 받은 플로리다 대학 교환학생 김남준(24)씨와 경희대 호텔경영학과를 다니다 올랜도에서 디즈니 월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심영훈(25)씨의 대선투표의 변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좋은 공약들 많았죠. 그런데 무얼 지켰는지 모르겠어요. 공약을 잘 이행할 사람 뽑았습니다."

"탄핵정국을 보며 우리 사회에 부조리들이 너무 많다는 걸 알았어요. 적폐를 가장 시원하게 청산할 후보를 선택했습니다."

"아이가 바르게 자랄 수 있는 나라 만들기 위해"

 

4월 29일 오전 올랜도 우성투표소에서 대선투표를 마친 플로리다 대학 양민준-전나경 교수 부부가 아이를 안고 인증샷을 찍었다.
 4월 29일 오전 올랜도 우성투표소에서 대선투표를 마친 플로리다 대학 양민준-전나경 교수 부부가 아이를 안고 인증샷을 찍었다.
ⓒ 김명곤

 


둘째 날인 토요일에는 무려 261명이 몰려들었다. 점심시간 이후에는 줄을 세워야 할 만큼 몰려들었다. 지난 총선에서 가뭄에 콩 나듯 투표자가 나타나던 것에 비하면 줄서기를 할 만큼 열기기 무르익어 비로소 '대선 분위기'를 이루었다. 갓난아이를 카트에 싣고 나타난 부부, '현장교육'이라며 초등생 자녀를 대동한 부부, 데이트하듯 팔짱을 끼고 나타난 '예비 부부', 강남 거리에서 본 듯한 노랑머리 대학생 등 젊은층이 대다수였다. 간혹 줄 한 가운데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희끗희끗한 머리의 노년층이 어색해 보일 정도였다.

점심이 다 된 시간에 낯익은 얼굴들이 투표장에 나타났다. 왕복 9시간 거리의 마이애미에서 플로리다한인회연합회 노성일 회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투표장에 들어섰다. 다짜고짜 웃으며 물었다.

- 뭐하러 이 먼 데까지 왕림하셨습니까?
"시민권자라서 투표권은 없지만 간절한 바람을 안고 격려차 왔습니다."

- 무슨 바람요?
"경제는 진창이고, 특히 남북관계 완전 망가지고…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투표로 국민의 뜻을 밝혀야지 않겠어요?"

한참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초원 사진관' 주인공 같은 차림의 이승렬 전 MBC 드라마 감독이 투표소 대기실에 불쑥 나타났다. 가족이 있는 올랜도와 한국을 오가며 외주 제작사에서 활동 중인 그에게도 '후보 선택의 기준'을 물었다. 다소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정권이 바뀌긴 바뀌어야 하는데... 도대체 선거에 흥이 나지는 않습니다. 맘에 드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최근 토론을 경청하며 '참 괜찮은 후보'가 눈에 띄기는 했지만, 막상 표를 던지자니 사표가 될까봐 망설여집니다."

오후 4시쯤이 되자 유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층이 떼로 몰려들어 투표대기장이 북적였다. 다시 왜 먼 걸을 달려왔는지를 플로리다주립대 지리학과 정지훈(35)씨와 플로리다 대학교수 부부 양민준·전나경씨에게 물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친일파 등 청산할 것을 청산하지 못하고 특수이익집단만을 위한 정치를 해 온 거 아닙니까? 악폐와 인습을 타파할 후보를 골랐습니다."
"간단해요. 여기 우리 아이가 바르게 자랄 수 있는 나라를 만들 분에게 투표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않나요?"
 
28일(미국시간)  첫 투표자 김종규 전 한인회장이  투표절차를 밟고 있다. (사진 좌측). 게인스빌 플로리다 대학 환경공학 박사과정 정재석씨가 30일 마지막 투표를 한 후 V자를 그리며 인증샷을 찍고 있다.
 28일(미국시간) 첫 투표자 김종규 전 한인회장이 투표절차를 밟고 있다. (사진 좌측). 게인스빌 플로리다 대학 환경공학 박사과정 정재석씨가 30일 마지막 투표를 한 후 V자를 그리며 인증샷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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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셋째 날은 교회 예배가 끝난 오후 1시께부터 투표자들이 몰려들었다. 둘째 날보다 줄기는 했으나 역시 젊은 층이 다수를 차지했다. 투표소에서 왕복 10시간 떨어진 플로리다 주립대 교환교수로 와 있는 경인대(40대) 교수에게 "왜 이렇게 먼 곳을 달려왔느냐"고 물었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계속되는 탄핵 촛불 집회를 보면서 우리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힘이 있는 나라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촛불집회에 참여하지 못한 데 대한 부채의식이 컸습니다. 5시간이 아니라, 10시간이라도 달려왔을 겁니다."

마감 시간 10분여를 남겨두고 두 명의 청년이 3분 간격으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유학생 조정연(27)씨와 정재석(36)씨였다. 조씨는 데이토나 비치에서 한 시간을, 정씨는 게인스빌에서 두 시간을 달려온 터였다. 굳이 마감시간까지 기억하며 달려온 이유를 물었다.

"가만있으면 안 되지 않나요?"
"가진 자만 계속 갖고 못 사는 사람은 계속 못 살고… 재벌개혁과 경제개혁을 잘할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투표는 정확하게 5시 정각에 마감됐고, 여든 살을 훨씬 넘긴 나이의 유일한 민간인 참관인 김종규 전 한인회장이 "아이고, 이제 끝났네!"라며 양팔로 원을 그리며 연신 기지개를 켰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도 열기가 뜨겁고 의미가 큰 선거여서인지 피곤한 기색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기자는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무려 9시간을 달리고 수백 달러를 들여 먹고 자고 하며 애틀랜타에서 투표했다(관련 기사 : 투표권 줬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동네'에서 치러진 이번 대선은 기자에게 한결 손쉽고 즐겁기까지한 '보통선거'였다. 투표자들은 한결같이 표정이 밝았고, 결의에 차 있었다.

20세기 중반 선대 부모 세대가 "못살겠다갈아치자!"고 외치던 구호가 21세기 초입의 재외 투표자들의심저에 되살아난 선거가 이번 19대 대선이었다. 5월 9일 새로 태어날 '대한민국호'가투표장으로 달려온 재외국민들의 '변화' 소망에 얼마나 부응할지 지켜볼 일이다. 

 

 

<꼬리기사>

마감 5분 넘겨 하루 숙박한 투표자

등록 안 되어 발길 돌린 투표자 상당수

 

이번 19대 대선 재외투표는 '재외투표 무용론'에 쐐기를 박을 만큼 열기가 뜨거웠고 결과도 좋았다. 홍콩이나 프랑스 등 일부 재외투표소는 90%를 넘기는 투표 열기를 보였다.

플로리다 투표소의 첫날, 마이애미에서 달려온 청년은 마감 시간 5분 뒤에 도착하는 바람에 올랜도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 날 아침 투표를 했다. 왕복 4시간 거리게인스빌의 한 유학생은 그레이하운드 버스와 우버 택시로 달려와 투표에 참여했다. 올랜도 남부 키씨미에사는 이완규(79)씨는 이민 40년 만에 감격의 대선투표를했고, 조지아주 발도스타에 사는 박철인(25)씨는 애틀랜타투표소보다 가까운 올랜도 투표소를 찾아 한 표를 행사했다.

중앙선관위는 "투표자수 증가는 선거에 대한 재외국민들의 높은 관심과 인터넷을 통한 신고·신청, 영구명부제, 추가투표소 도입 등 투표 편의 확대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지만, 급히 치러진 선거인 만큼 사전 준비와 홍보부족 등 미비점도 상당 부분 눈에 띄었다.

우선 유권자로 등록된 줄 알고 투표소를 찾았다가 등록이 안 돼 있어 발길을 돌린 유권자들도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투표 첫날 중앙 플로리다 한인회 임원 남아무개씨는 투표장에 와서야 투표자 명부에 등록이 안 되어 있는 것을 알고 망연자실했다. 이후로도 여러 명이 같은 이유로 투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유권자들은 선관위로부터 투표에 참여하라는 이메일을 여러 차례 받았고, 영구명부에 등재된 줄로 알고 투표장에 나갔으나 정작 명부에 이름이 없었다며 크게 화를 냈다. 전 평통위원 이아무개씨는 영주권 없이 운전면허증만 갖고 나타나 투표가 무산되었고,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다.

수시로 투표장을 방문한 박석임 올랜도 노인복지센터 원장은 "투표자명부에 등록이 안 되어 투표가 무산된 사람이 30명은 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애틀랜타 통영사관 파견 황순기 재외선거관에 따르면, 한국에 주민등록이 살아 있는 재외선거인은 매번 선거 때마다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하지만, 오히려 주민등록이 말소된 재외선거인은 한 번 등록하면 자동으로 영구 등록이 되어 더 이상 등록을 할 필요가 없다.

투표소와 거리가 여전히 먼 것도 앞으로 개선해야 할 숙제다. 남북한 크기와 거의 같은 플로리다주의 경우,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서부 탬파와 동북부 잭슨빌은 왕복 4시간에서 5시간, 마이애미에서는 왕복 8시간에서 10시간을 차로 달려와야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투표소와 가장 먼 곳에 있는 북서부 펜핸들 지역 동포들의 경우 투표릉 위해 왕복 18시간이 소요된다.

 

(*<코리아위클리> 제휴 <오마이뉴스>에 먼저 올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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