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구 피임약 개발 선구자 한도원 박사 이야기... 내주부터 연재 시작
 
 
 





(올랜도=코리아위클리) = 김명곤 기자 = 여기 한 소년이 있다. 광복절 기념일을 하루 앞둔 1947년 8월 14일 밤, 그는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미리 꾸려 둔 간단한 괴나리봇짐을 등에 걸머졌다. 봇짐 속에는 며칠 먹을 쌀과 갈아입을 옷가지가 전부였다.

어머니는 가슴을 쥐어 짜는 듯한 아픔을 참으면서 “담배 피지 마라” “술도 마셔선 안 된다”며 마지막 당부를 했다. 소년의 마지막 말은 “내년 여름방학이면 돌아올 겁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였다. 그의 나의 16세때였고, 그는 부유한 집안 3남 3녀의 맏아들에다 장손이었다.

그렇게 평안북도 후창을 떠난 소년은 이후로 영영 부모 형제들을 만나지 못했다. 1990년 10월 어느날 북한을 방문했을 때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평생 “틀림없이 우리 아들은 살아 있어!”라고 되뇌었다던 어머니는 6개월 전에 세상을 뜨고 없었다.

 

죽을 고비를 몇차례 넘기며 서울에 도착한 소년은 아버지의 친구 집과 길거리에서 만난 친구 집을 전전했고, 그야말로 ‘굶기를 밥먹듯’ 하며 그날 그날을 견디고 있었다. 두 학기 등록금을 포함한 비상금은 남하하다 안내원과 북한 경비원의 계략에 속아서 털린 상태였다.

하지만 머리가 좋았던 소년은 겨우 보름을 공부하여 현지 학생들도 어렵다는 일류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 같아 뛸 듯이 기뻤다. 그러나 그마저도 얼마 가지 못했다. 한국전쟁이 터진 것이다.

처음 마산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그는 어느날 싸움을 말리다 사귀게 된 미군의 호의로 미군부대에서 한국인 노무자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잡상인들과 부대 외곽을 전전하는 피난민들의 접근을 막는 경비 감독관으로 임명되었고, 미군은 그에게 소위 계급장을 달아 주었다. 영어가 통한 덕분이었다.

얼마후 부산으로 이동한 틈을 타서 일을 그만 둔 그는 마치지 못한 고등학교 수업을 듣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은사의 친척 소개로 유엔한국재건단(UNKRA)에서 일하게 된 그는 어느날 그곳에서 일하던 한 미군 엔지니어의 권유로 ‘미국 유학’을 꿈꾸게 되었다. 수십개의 미국 대학교에 편지와 입학 지원서를 보낸 어느날, 그는 한 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서와 함께 장학금을 주겠다는 편지를 받았다. 미주리 주의 사우스 웨스트 미주리 주립대학(현 미주리 주립대학)으로부터 였다.

 

▲ 미주리 주립대학 동문 잡지 2013년 가을호 표지 기사로 실린 한도원 박사 이야기


 
'보이지 않는 손'이 연출한 기적들

이후로 유학자격시험에 합격하고 천신만고 끝에 2년 만에 비자를 손에 쥐고 여의도 비행장에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55년 4월 초순 사흘간의 여행 끝에 처음으로 미국땅에 발을 디뎠다. 전란을 뒤로 하고 그가 밟은 미국땅은 별천지였다. 하지만 대학 해외학생처 디렉터이자 평생 은인인 애나 블레어 박사의 집에서 샌드위치와 포도 주스로 점심을 때운 당일부터 잔디 깎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그의 손에 쥔 돈은 8달러가 전부였다. 비행기표와 이런 저런 부대 비용을 구걸하다시피 하여 마련한 터였다. 당시 그가 잔디일을 하기 위해 급히 마련한 신발이 4달러였던 시절이었다.

한도원 소년의 ‘사고무친’에 ‘적수공권’의 미국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일생에 단 한번 울었다”는 한도원은 이후로 기적과 기적을 맛보며 미국생활을 이어 갔다. 한국에서부터 이미 그는 기적을 체험해온 터였다.

최근 올랜도의 한 식당에서 만난 그는 “꼽아보니 84년 생애에 크게는 7번, 작게는 26번의 기적을 체험하며 살았다”면서 “우리 시대를 살아온 누구인들 극한 고비가 없이 살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없겠지만서도, 내 경우는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통과해온 것 같다. 행운이다.”고 술회했다.

그랬다. 그가 영문으로 요약한 일대기와 미주리 주립대학이 지난 2013년 ‘자랑스런 동문’으로 소개한 자료에는 ‘기적’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삶의 고비들이 온스란히 담겨 있다. 고비 고비 마다 드라마에서나 연출될 만한 일대 ‘반전’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의 일대기는 기적이나 행운으로 말하는 것은 ‘모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흔히 말하는 ‘한 이민자의 성공’으로 표현하는 것조차 경박하고 상투적인 표현이라면 조금 지나친 말이 될 지도 모르겠다.


'소명의식'으로 살아온 이민자의 삶

 
▲ 지난 3월 8일 인터뷰를 마친 후 출석하고 있는 올랜도새길교회 예배실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한도원 박사와 그의 부인 김명연씨.


 
앞으로 본보에 연재될 한도원 박사의 스토리 ‘8달러의 기적’은 악착같이 노력하여 성공한 한 이민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이야기에는 성실함을 넘어서 삶에 대한 진지함이 깊게 배어있다. 더하여, 제국시대에 태어나 ‘본토 아비 집을 떠나’ 분단의 땅에서, 그리고 먼 이국땅에서 통과해온 삶의 무게가 그대로 담겨 있다.

‘막 가는 시대’에 허투루 살거나, 시대적 고통과는 상관없이 유유자적 ‘자기만의 평화’를 누리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시류에 편승하여 영화를 꾀하는 자들의 삶을 벗어나 끊임없이 이웃을 의식하고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공헌을 가슴에 품으며 살아온 것이 그의 삶의 족적이다, 그래서 이런 삶은 ‘소명’이라는 단어를 붙여 설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현재 올랜도 윈더미어에서 은퇴생활을 하고 있는 한도원 박사는 일제의 단발마적 제국주의 야욕이 기승을 부리던 1931년 11월 20일 평북 후창군 후창면 후창동에서 한성범 조완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국전이 막 끝난 1955년 3월 도미, 미주리 주립대학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여 1960년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농기계학 학사, 63년 같은 대학 교배학 석사, 1967년 미주리 대학에서 내분비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 한도원 박사가 1990년에 경구 피임약 노개스티메이트의 개발 공로로 받은 '존슨 메달'. 존슨 메달은 존슨앤존슨 제약회사 100년 역사상 100여명의 과학자들만이 받은 회사 최고의 메달이다.

 
이후 1968년 미국의 세계적 제약회사인 존슨앤존슨의 계열사인 오르소(Ortho)에서 준 과학자로 발을 디딘 후, 1970년 시니어 과학자, 1975년 연구팀 부장, 1987년 연구 디렉터에 이어 1993년 학자로서 최고 지위인 석좌 연구가 지위에 올랐다.

특히 한도원 박사는 1989년 12월 29일 동료 존 맥과이어 박사와 미국 최초로 노개스티메이트(norgestimate)라는 경구 피임약을 개발하여 미국 식약청(FDA)으로부터 승인 받았다. 한 박사 팀이 만들어낸 노개스티메이트는 미국이 20년 이상 동안 공들여 개발하려고 힘써왔던 분야로, 경구 피임약 개발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며 내분비학계 후학들에 의해 많은 연구결과를 도출해 냈다.

한 박사는 1990년 이 공적으로 존슨앤존슨이 수여하는 최고의 메달인 ‘존슨 메달’을 받았다.

오르소 트리사이클린(Ortho TriCyclin)이라는 브랜드로 시판되기 시작한 한 박사의 경구 피임약은 이후로 가장 잘 팔리는 피임약이 되어 회사에 막대한 재정적 이익을 안겨 주었다. 오르소 트리사이클린은 현재도 오르소 제약사의 최대 판매 제품이다.

본보는 내주부터 한도원 박사의 스토리를 그의 영문 요약본과 기사자료, 그리고 구술을 토대로 일인칭 서술로 재구성하여 연재할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애독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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