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원 '박스 법안' 압도적 통과... '신생아 안전, 산모 복지' 우려 목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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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리다 주 의회에서 소방서, 병원 및 응급실 등지에 '베이비 박스'를 설치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사진은 현재 플로리다주 데이토나비치 인근 주간 고속도로 I-4 주변에 있는 광고판. 세이프 헤븐 주제의 차량 번호판을 소개하고 있다. ⓒ 코리아위클리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최정희 기자 =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 건물 벽에 회전문같이 생긴 형태로 밖에서 아기를 안으로 넣을 수 있는 '고아 회전판'이 있었다. 산모가 원치 않는 신생아를 야밤을 틈타 회전판에 넣고 사라지면, 수녀는 안쪽에서 판을 돌려 아이를 받았다.

이제 플로리다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설물을 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있다. 최근 주하원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고 주상원에서도 통과 전망이 밝은 새 법안은 소방서, 병원 및 응급실에 '베이비 박스'로 알려진 첨단 '신생아 안전 장치(Newborn Infant Safty Devices)'를 벽에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현재 몇몇 주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 시설물은 부모, 특히 엄마들이 아기를 박스 안에 넣어두고 그냥 떠날 수 있게 한다. 즉 다른 사람과 마주치는 일이 없게 설계된 것이다.

법안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플로리다는 현재 출생 3일 안에 지역 병원이나 소방서 등 특정 지정장소에 데려오면 어떠한 추궁이나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세이프 헤븐법 (안전한 안식처 법 Safe Heaven Law)'을 시행해왔다. 이 법은 1999년 텍사스주에서 제정된 이후 플로리다를 포함한 대부분의 주가 신생아 살해 및 유기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다.

새 법은 무엇보다 산모가 신생아를 지정 박스에 넣어두고 떠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법과 차이가 있다.

법안은 2020년과 2021년에 주의회에 올랐으나 상원에서 통과가 좌절됐다. 그러나 올해는 6주 후 낙태를 금지하는 엄격한 법안과 동시에 의회에 올라 무사 통과했다. 지난달 13일 론 디샌티스 주지사는 주의회를 통과한 6주 후 낙태 금지 법안에 서명했다.

현대판 베이비 박스는 작은 오븐처럼 생겼고,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는 한 문을 열지 마십시오(Please do not open the door unless you are in need of services)"라는 지침을 부착한다. 산모는 박스의 문을 열고 신생아를 박스 중앙의 요람에 넣은 뒤 문을 닫고 잠근다. 이로써 신생아는 더 이상 산모의 아기가 아니다. 다만 법원이 친권을 종료하기 전에 산모가 양육권을 주장하게 되면 아기는 산모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산모는 박스에 있는 번호(1-866-99BABY1)로 전화해 상담원과 통화할 수 있다.

영아가 박스에 담기면 소방서나 병원 내부에서 경보가 울린다. 이 박스는 온도 조절이 가능하며 이중 경보 시스템과 직원이 박스 내부를 살필 수 있는 감시 시스템이 함께 제공된다. 아기가 박스에 담긴 것이 확인되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응급구조사가 즉시 출동해 신생아를 꺼내 병원으로 이송한다.

이번 신규법에 앞서 2년 전 오칼라시의 한 소방서가 베이비 박스를 시범 운영했다. 설치 한 후 2년 뒤인 올해 1월에 한 아기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낙태권 옹호자들, 신생아 안전 및 산모 복지 우려

세이프 헤븐 법은 지난해 6월 미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한 이후 낙태권 폐지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를 뒤집을때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 역시 베이비 박스가 여성의 낙태 권리를 옹호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지적했다. 임신으로 인한 육아 부담과 엄마의 의무를 강제적으로 지운다는 주장을 세이프 헤븐 법이 해결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베이비 박스는 낙태 금지에 비하면 논란거리가 아니다. 모성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를 연구하는 산타 클라라 대학 로스쿨의 미셸 오버만 교수는 "만약 주정부가 피임 자금을 지원하지 않고 6주 후에 낙태를 금지한다면 베이비 박스가 대안이며 '윈-윈'을 이끌어내는 시스탬"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신규법 비판가들은 6주 후 낙태 금지안과 동시에 주의회에 제출된 베이비 박스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로렌 북 상원 원내대표(민주당)는 "우리는 지금 생명 보호 정책, 기독교 성향의 정책들이 주의회에서 터져 나오는 움직임을 보고 있으며 새 법도 결국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최근 <마이애미 선센티널>에 전했다.

그러나 주의회에서 법안 지지자에는 낙태권을 옹호하는 민주당 의원들도 포함돼 있다. 하원에서 법안을 공동 발의한 크리스틴 헌쇼프스키 의원(민주)은 자신은 낙태권을 제한하는 정책에는 여전히 반대하지만 베이비박스가 산모를 돕고 아기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또 다른 선택권을 제공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전했다.

한편 베이비 박스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존재한다. 플로리다 전역에서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 '신생아 세이프 헤븐(A Safe Haven for Newborns)’의 책임자인 닉 실베리오는 신생아를 위한 안전한 피난처는 '박스'가 아니라 아기를 직접 손으로 건네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실베리오는 베이비 박스의 문제점으로 보안, 책임, 그리고 응급구조사와 산모 사이의 의사소통 부족을 들었다. 특히 실베리오는 "누구든지 박스에 무엇이든 넣을 수 있으며 폭탄이 될 수도 있다"고 보안 문제를 지적했고, 박스가 식약청에 의해 규제되지 않기 때문에 아기에서 무슨 일이 생길 경우 책임 문제가 발생할수 있다고 덧붙였다.

베이비 박스는 산모의 복지에도 해가 될 수 있다. 산모가 강간이나 심지어 인신매매의 피해자일 수도 있지만 이를 확인하거나 도와줄 기회를 앗아간다는 것이다.

오버만 교수는 영아 유기를 고려하는 많은 여성들이 사회 안전망에서 벗어나 있는 취약 계층이며, 이들 중 약 3분의 1은 사회 복지 지원을 받아 아기를 양육하는 것을 선택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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