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W주 총리의 낙마를 보며

 

지난 1일 글래디스 베레지클리언 뉴사우스웨일스(NSW)주 총리가 전격적으로 사임했다. 한때 연인 관계였던 데릴 맥과이어 전 의원의 부패 혐의 연루 가능성에 대한 반부패독립조사위원회(ICAC)의 조사 착수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둘 다 정부의 고위직을 지냈기 때문에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고급 정보를 일상 대화 속에서 무시로 나눴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아직은 조사 단계일 뿐이며 의혹이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주 총리직에서 물러난 것이다. 
베레지클리언 전 주 총리는 NSW주를 덮친 대형 산불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등 연이은 위기에 잘 대처함으로써 호주에서 가장 인기 있고 유능한 정치인 중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사임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 온라인 청원 사이트에는 그를 주 총리직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청원이 게시돼 며칠 만에 7만건 이 넘는 찬성 의견이 달리기도 했다. 설사 귀책 사유가 있어도 법원 최종 판결까지 주 총리직에서 버틸 수 있을 만큼 높은 대중적 인기였다. 더구나 반부패위가 막연한 의혹만으로 정치인에 대해 과잉 수사를 벌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아 나름대로 명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베레지클리언 전 주 총리는 자신을 겨냥한 수사가 진행되는 중에 NSW주의 최고 공직을 유지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NSW주가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반부패위가 조사를 시작해 나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악의 시점에 사임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수사에 대한 결정은 그들의 전적인 권한”이라고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불만이 있지만 사정 기관의 권위를 받아들이고 용퇴를 결단한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극한 충돌을 벌이는 풍조 때문에 호주의 반부패위에 해당하는 한국의 검찰이나 공수처 등 사정 기관의 수사활동을 두고 분란이 끊이지 않는다. 법원의 유죄 판결이 없어도 수사와 기소만으로도 심각한 정치적, 도덕적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정 기관은 편파적인 수사와 여론 몰이를 통해 무죄한 사람도 대역 죄인으로 만들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검찰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나름대로 타당한 맥락과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그럼에도 최근 ‘조국 사태’를 포함, 여러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어느 진영에 속하느냐에 따라 수사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정반대가 되는 현상은 심히 우려된다. 
아군에 유리하면 정의이고 불리하면 불의가 되는 진영 논리가 사실을 규명하는 수사와 범죄 혐의를 제기하는 기소에 여과 없이 적용되고 있다. 정치적 유불리가 중요하지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불편한 진실을 덮고 차라리 편안한 거짓에 의도적으로 속고 싶어하는 것 같다. 심지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검찰의 기소를 두고 이것은 단지 검사의 ‘의견’일 뿐이라는 황당한 논리마저 동원하는 실정이다. 수사와 기소가 단지 국가 기관의 의견이라면 과연 어떤 국민이 법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것인가? 만약 반부패위의 조사가 단지 그들의  ‘의견’이고 베레지클리언 전 주 총리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면 전격적인 사임을 통해 책임을 질 이유도 없다. 법에 따른 지배라는 법치주의의 근간은 무너지고 결론 없는 무한 논쟁만 계속될 것이다.  
각자 속한 진영에 따라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편안한 거짓을 탐닉하는 와중에 대한민국은 거악(巨惡) 권력자들의 행복한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이들에게는 두려울 일도 없고 부끄러울 일도 없다. 언론이 의혹을 보도하면 ‘기레기’라고 받아치고, 검찰이 수사를 하면 ‘편파’라고 몰아치고, 기소라도 하면 그냥 ‘의견’으로 무시하고, ‘유죄’가 나오면 ‘사법 적폐’로 몰아가고, 감옥에 수감되면 곧장 ‘양심수 코스프레’로 돌입한다. 어떤 사실이 튀어나와도 조금도 외롭지 않다. 순간 순간 눈물과 박수와 격려와 공감으로 함께 하는 열렬한 자발적 지지자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양심인이 나올래야 나올 수 없는 구조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인데 베레지클리언 전 NSW주 총리의 자진 낙마는 쇠가죽처럼 뻔뻔한 세태에 신선한 감흥을 던져 주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자부해도 권력자의 자리에서 국가기관의 조사를 받는 것은 공정한 일이 아니다.  권력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어진 것이지 자신의 이익을 옹호하는 방패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앞으로 반부패위 수사 결과 별다른 비위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베레지클리언 전 주 총리에게는 보다 원대한 정치적 미래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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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철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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