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수 없는 시대의 정치

 

21일 치러진 호주 총선에서 노동당이 자유국민연합의 4연속 집권을 저지하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스콧 모리슨 총리가 물러나고 미혼모 자녀로 성장한 앤서니 앨버니지 노동당 대표가 신임 호주 총리가 됐다. 9년에 가까운 자유국민연합의 장기집권이 끝나고 바야흐로 노동당의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국민들은 변화를 선택했고 앨버니지도 선거 승리 연설에서 ‘변화’를 외쳤다. 그럼에도 그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가 어떤 변화를 추구할 것인지는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이번 총선만큼 양대 정당 사이에서 쟁점이나 정책대결이 부실한 선거도 드물 것이다. 오랜 집권의 피로감 때문에 모리슨 총리 혼자서 뛰다시피 한 자유국민연합이나 여당에 대한 실망감의 반대급부 챙기기에 급급했던 노동당이나 ‘덤앤더머’(Dumb & Dumber) 게임의 한 당사자에 불과했다.

 

어쩌면 유권자들은 ‘노동당으로의 변화’가 아니라 ‘자유국민연합으로부터의 변화’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노동당이 더 낫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국민연합이 더 형편없어서 주어진 변화요 승리라는 것이다. 이는 참패한 자유국민연합뿐 아니라 승리한 노동당에 대한 1차 지지표가 지난 총선에 비해 현저하게 감소한 사실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유권자의 표심은 양대 정당 모두에 대해 실망하고 지지를 철회하는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다만 그 폭이 노동당이 더 작았기에 정권교체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집권당이나 야당에 속하지 않는 무소속과 녹색당 등 군소정당(Crossbench) 하원 당선자가 15명이 넘는 초유의 결과에서도 잘 나타난다. 특히 맬컴 턴불과 토니 애벗 전 총리들의 지역구였던 웬트워스와 와링가는 물론 조시 프라이든버그 전 재무장관의 큐용에서 여성 무소속 후보들이 완승을 거둔 건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큐용에서 당선된 모니크 라이언 무소속 후보는 “정부는 우리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를 바꾸었다.”라는 말로 환호를 받았다. 38년간 노동당의 텃밭이었던 시드니 님서부의 파울러에서는 베트남 난민 출신 다이 리 후보가 ‘낙하산 공천’을 받은 정치 거물 크리스티나 키넬리를 꺾는 이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호주의 양당제 의원내각제에서 자유국민연합과 노동당은 오직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만 견제가 가능한 최상위 포식자들이다. 무소속이나 군소 정당이 국정에 의미 있는 영향력을 끼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원 단독 과반 정당이 없는 ‘헝 의회’(Hung Parliament) 결과가 나와도 어차피 양당 중에 하나가 내각과 정부를 구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무소속과 군소정당 후보들에게 쏠린 이번 총선의 민심은 이러한 일반론을 뛰어넘는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 설사 노동당이 단독 과반의석을 확보하더라도 이미 양대 정당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민심을 확인한 만큼, 이들의 목소리를 아예 무시하긴 어려울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인한 천문학적 재정적자, 주거용 부동산 폭등,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인플레이션 등으로 호주 경제는 이미 총체적 난국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재정지출이나 기준금리 등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사실상 손발이 묶인 상태이다. 오히려 정부 지출을 줄이고 기준 금리를 인상해야 할 처지라 단기적으로 서민 경제에 고통과 부담이 가중될 것이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묘수가 없는 한 정부와 주류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민심은 불가피하게 정부를 구성해야만 하는 양대 정당으로부터 멀어지고 그 벌어진 틈은 무소속과 군소정당이 채우게 될 것이다. 그저 반짝 당선이 아니라 이들이 연이어 재선, 3선하는 지역구가 전국적으로 속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은 각자 나름의 가치와 명분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집권 세력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당제 하에서 독자 과반을 확보하는 주요 정당이 약화되면 중간 지대에 다양한 세력이 난립해 극심한 정치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신념이나 카리스마가 아니라 대화와 유연한 협상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바야흐로 토니 애벗 같은 강골 정치인이 아니라 앤서니 앨버니지 같은 협상가가 더욱 각광받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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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철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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