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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n) 광산 근로자였던 켄트 월시(Kent Walsh)씨. 마약밀매로 체포돼 재판이 진행 중인 ‘홍콩 나인’의 호주인 4명 중 하나인 그는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친 이후 상환판단력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국제 마약조직에 속아 마약을 운반하려다 체포됐다.


아프리카 조직의 사기에 속아 마약 밀매 시도하다 체포

호주인 최소 26명 이상... 사형 또는 종신형 처해질 수도

 


인도네시아 발리(Bali)에서 마약밀매로 체포됐던 아홉 명의 호주인, 일명 ‘발리 나인‘(Bali Nine) 중 2명이 지난 4월 총살형에 처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중국에서 마약밀매 혐의로 체포돼 사형 또는 종신형 위기에 놓인 호주인이 최소 26명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마약밀매와 관련, 해외에서 체포된 호주인들의 경우 대개는 국제 마약조직의 유혹에 빠져 범행을 저지르다 체포된 것으로 드러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금주 수요일(5일) ABC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인 ‘7.30’ 보도에 따르면, 호주 연방 정부와 외교통상부는 수백만 달러 상당의 마약밀매를 강요당하거나 또는 유혹에 속아 이 같은 범행에 가담했다가 중국 당국에 적발된 호주인들과 관련, 중국 정부에 높은 수준의 우려를 표해 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ABC 방송의 ‘7.30’에서 서아프리카를 기반으로 하는 마약밀매 조직이 호주의 고령자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 사리분별이 어려운 청소년 등 취약 계층의 사람들을 유혹하거나 강제적인 수단을 통해 호주로의 마약운반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에 따르면 현재 마약밀매 혐의로 중국에서 체포, 구금되어 있는 호주인은 26명에 이른다.

 

호주 범죄위원회(Australian Crime Commission. ACC)는 지난 2년간 국제 밀매조직에 속아 마약운반에 관여했다가 호주에서 체포된 이들도 수십 명에 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ACC의 리차드 그란트(Richard Grant) 국내 수사국장은 “지난 2013년 이래 이들 국제 밀매조직의 지시를 받고 호주로 마약을 들여오려 시도하다 체포된 이들은 39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들 중 3분의 2는 호주 법정에서 유죄가 인정됐다.

 

올해에만도 호주 정부는 현재 중국에서 체포돼 마약 사범으로 사형 위기에 처한 9명의 호주인을 대신해 중국 당국에 11차례나 이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외에도 9명이 마약과 관련, 유죄를 선고받아 중국 본토에 수감되어 있으며 홍콩에서 체포돼 종신형이 선고된 이들도 8명에 달한다.

 


국제조직 꾐에 빠져

마약 가방 운반하다 체포

 


최근 홍콩 법정에서는 일명 ‘홍콩 나인’으로 불리는 마약 관련 사범 9명에 대한 재판이 진행된 가운데 이들 모두 국제 마약밀매 조직에 속아 마약이 들어 있는 가방을 운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홍콩 나인’ 중 4명이 호주 국적자였다.

 

이들은 모두 지난 2014년 4월에서 올해 3월 사이, 마약 가방을 호주로 운반하려다 홍콩 국제공항에서 체포된 케이스이다. 이들이 운반하려 했던 헤로인은 총 29.5킬로그램, 전체 3천600만 달러 규모이다.

 

‘홍콩 나인’ 중 4명의 호주인은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n)의 광산 근로자 켄트 월시(Kent Walsh, 49), 다윈(Darwin)의 창고관리 직원으로 일하는 제임스 클리포드(James Clifford, 62), 멜번 거주 여성 수옹 투 루(Suong Thu Luu, 44)와 멜번에 거주하는 펜셔너로 호주 및 독일 국적을 가진 조에르그 울리츠카(Joerg Ulitzka)씨다.

 

이들 중 켄트 월시씨는 마지막 체포된 인물로, 그는 지난 3월 구두창에 숨긴 2킬로그램의 마약을 여행용 가방에 담아 호주로 들여오려다 공항에서 체포됐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의 가족들은 그가 6년 전 당한 사고로 머리를 다쳐 사기 등에 취약한 상황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월시씨의 여동생인 리사 바커(Lisa Barker)씨는 “사고 후 12개월 이상 병원에 입원해 있었으며, 사고 이후 후유증으로 이전에 하던 광산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바커씨는 이어 “머리를 크게 다쳐 여러 개의 금속판과 스크류가 머리에 심어져 있는 상태”라며 “사고 이후 자기에게 닥친 상황에 대해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마약운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8명의 케이스에 대한 홍콩 고등법원 재판에 앞서 케빈 제르보스(Kevin Zervos) 판사는 이들의 미약밀매에 대한 결정적 증거 조사가 늦어지는 점과 관련, 홍콩 세관을 비난했다.

 

제르보스 판사는 “내가 우려하는 한 가지는 세관이 마약운반자를 체포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이들이 국제 밀매조직에 연관되어 있다는 데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약밀매 기소자들을 변호하고 있는 제라드 맥코이(Gerard McCoy) 변호사는 “공항의 CCTV에 한 중국 여성이 이들 8명에게 마약이 들어 있는 가방을 전달하는 장면이 있다”고 말했다.

법정 변호사 맥코이 박사는 판사에게 이들 국제 조직에 대한 보다 자세한 상황 파악 차원에서 호주 연방정부 및 미국 당국과의 인터뷰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호주 교도소 재소자를 위해 활동하는 존 워더스푼(John Wotherspoon) 신부는 정기적으로 홍콩에 있는 4명의 호주인을 방문하고 있다. 워더스푼 신부는 이들의 이야기에 대해 처음에는 공상과학 또는 동화같았다고 말했다.

 

워더스푼 신부는 “이들 중 일부는 1년 이상 인터넷을 통해 밀매조직과 접촉하다가 속임수에 낚여 홍콩까지 오게 되고, 다시 이들에 속아 마약이 들어 있는 가방을 호주로 운반하려다 체포된 케이스”라고 말했다.

 

홍콩에서 마약밀매와 관련해 체포된 모든 이들의 이야기는 이와 유사한 내용이다. 또한 공통점은 ‘공항에서 출국장으로 나가기 직전 밀매조직원으로부터 가방을 받았다’는 것이다.

 


쿰머펠드 여사 사건 이후

국제조직 사기 행각 드러나

 


맥코이 변호사는 83세의 뉴욕 명사 엘리자베스 쿰머펠드(Elizabeth Kummerfeld) 여사가 지난 4월 홍콩에서 마약밀매로 체포된 이후, 홍콩에서 마약 사범으로 적발된 호주인들이 쿰머펠드씨처럼 사기 행각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 아메리카’(News America) 도날드 쿰머펠드(Donald Kummerfeld) 회장의 미망인이자 전 뉴욕 부시장을 지낸 쿰머펠드 여사는 1년 전, 내부 안감 속에 2킬로그램의 헤로인이 숨겨져 있는 가방을 들고 호주로 들어가려다 홍콩에서 체포됐다.

 

쿰머펠드 여사는 ABC 방송에서 “2킬로그램의 헤로인이 든 가방을 갖고 호주로 입국하려 했던 것은 완전히 속아서 한 행동이었다”면서 “헤로인이 들어 있는 줄 모르고 가방을 전달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유명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함께 ‘미국 에이즈 연구재단’(American Foundation for AIDS Research)을 설립, 수백만 달러를 모금한 바 있는 쿰머펠드 여사는 이후 거액의 투자사기인 ‘Ponzi scheme’에 연루돼 그간의 명예를 한순간에 날려버린 일이 있다.

 

그리고 수년 후, 쿰버펠드 여사는 인도주의 프로젝트를 위한 기금 모금이라는 나이지리아 이메일 사기단에 속아 홍콩에서 또 한 번 곤욕을 치러야 했다. 나이지리아 은행원을 가장한 남성의 정교한 이메일에 속아 그녀는 뉴욕에서 홍콩으로 여행을 했고, 수백만 달러를 보상한다는 조건으로 홍콩에서 마약이 들어 있는 가방을 멜번으로 운반하려다 홍콩 공항에서 체포된 것이다.

 

ACC의 라치드 그란트 국장은 “엘리자베스 쿰머펠드를 꾀어낸 것과 같은 마약운반 사기는 매우 정교하다”고 말한다.

 

그란트 국장은 “곤란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물색해 아주 좋은 미끼로 이들을 유혹하고 있다”며 “이들 중에는 연애를 빙자하거나 사업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도로, 또는 여행자를 유혹하지만 이들(마약밀매 조직)의 속셈은 순진한 사람을 착취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란트 국장의 설명처럼 마약밀매 사기단에 속아 중국에서 마약밀매 혐의로 체포, 수감 중인 일단의 호주인들 가운데는 전 애들레이드 기수(騎手, jockey) 앤서니 바니스터(Anthony Bannister), 지적 장애자인 브리즈번(Brisbane) 남자 이브라힘 얄로(Ibrahim Jalloh), 벵갈리 셰리프(Bengali Sherriff)씨 등이 있다.

 

지난 6월, ABC 방송의 ‘7.30’는 국제 조직의 온라인 사기에 속아 마약을 운반하다 중국 광저우(Guangzhou)에서 체포, 수감 중이던 호주 국적의 지적 장애인 존 워윅(John Warwick)씨가 지난 해 교도소 병원에서 사망한 사례가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말레이시아에서 호주 국적의 52세 여성 마리아 엘비라 핀토 에스포스토(Maria Elvira Pinto Esposto)씨가 콸라룸푸르(Kuala Lumpur) 공항에서 체포된 바 있다(본지 1142호 보도). 당시 그녀는 1.5킬로그램의 불법 암페타민이 들어 있는 가방을 운반하려 했다는 혐의였다.

 

지난 5월 시작된 재판에서 이 여성 역시 미군이라는 한 남성과 온라인 채팅을 계속하다 연애를 전제로 그를 만나고자 중국 상하이를 여행했고, 거기서 그 남성으로부터 작은 가방 하나를 멜번(Melbourne)으로 옮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에스포스토씨는 상하이에서 말레이시아를 거쳐 멜번으로 입국하려다 콸라룸푸르 공항에서 체포된 것이다.

 

이 같은 국제 사기단에 속아 마약을 운반하다 체포된 이들을 위해 활동하는 인권변호사 크레이그 턱(Craig Tuck)씨는 “이들 국제조직은 개개인의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턱 변호사는 “호주와 뉴질랜드 여권의 경우 각 국가 입국이 수월하기 때문에 호주나 뉴질랜드 인일 경우 이들 국제 사기조직들의 우선 포섭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 국제조직은 아주 정교한 수법으로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다”면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속이고 기만하며 잘못된 일에 악용하고 끝내는 사형에 처해지도록 하는 행위는 숨막히는 일”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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