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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입당 무렵의 고프 휘틀럼. 유난히 큰 키와 거침 없는 발언으로 특히 연방 노동당 의원들 사이에 그는 ‘젊은 두루미’(The young brolga)라는 별명을 얻었다.

 

호주 정치사상 비교할 수 없는 변화의 유산 남겨

 


1970년대 호주 노동당의 전성기를 만들며 호주 정치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정치인 중 하나로 꼽히는 고프 휘틀럼(Edward Gough Whitlam) 전 수상이 지난 10월21일 오전 9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휘틀럼 전 수상이 추진한 개혁은 호주 정치 사상 비교할 수 없는 변화를 이끌었고, 그런 만큼 전례 없는 유산을 남겼다.

 

단언컨대, 그의 독선적인 스타일과 다소 불량스런 행태가 비난을 받는 만큼, 그의 개혁주의적 리더십과 설득력은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런 반면 연방 총독(Governor General)으로부터 ‘수상직 해임’이라는 가장 극렬했던 정치적 폭풍의 중심에 있던 인물로도 기억되고 있다.

 

총 3회로 나누어 휘틀럼 수상의 정치적 업적과 사진으로 보는 그의 활동을 요약해 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기획 ① / 어린 시절과 정치 입문

기획 ② / 정치적 몰락과 노후

기획 ③ / 사진으로 보는 정치 활동

 

 



휘틀럼 전 수상은 1916년 7월11일, 멜번(Melbourne)의 큐(Kew)에서 고위 연방 공무원인 프레드릭 휘틀럼과 마타 여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0살 되던 해 그의 아버지가 연방 왕실 변호사 대리(Commonwealth deputy crown solicitor)로 임명되면서 가족과 함께 연방 수도인 캔버라(Canberra)로 이주했다.

 

20대의 휘틀럼은 시드니대학에서 법과 예술을 공부하면서 당시 판사로 재직 중이던 윌프레드 도비(Wilfred Dovey)의 딸 마가렛 도비(Margaret Dovey)를 만나 결혼한다. 그리고 1942년 왕립 호주공군(Royal Australian Air Force. RAAF)에 입대, 노던 테러토리 안넴랜드(Arnhem Land, Northern Territory)의 고브(Gove)에 있는 RAAF 기지에서 항공기 조종사 및 폭탄조준 전문가로 근무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공군으로 근무하면서 두 아들(Antony & Nicholas)을 얻은 그는 전쟁이 끝나면서 호주 노동당에 입당했다.

 

노동당이 그의 정치 입당을 환영한 것은 당시 존 커틴(John Curtin)의 의지로, 정부는 전후 연방의 능력을 확대하고 또한 노동당이 추진했던 국민투표 부결안이 실패하면서 당 내 새로운 인물이 필요했던 데 따른 것이었다.

 

휘틀럼은 후에 노동당 입당 당시를 회상하며 “호주 헌법을 현대화하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내 희망을 밝히는 순간부터 나는 결과를 위해 매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7년 학업을 마친 그는 법정 변호사가 됐다. 시드니 남부 크로눌라(Cronulla)에 정착한 그는 지역사회 활동에 전념하면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1948년과 49년 연속 ‘Australian National Quiz Championship’(1940-50년대 호주 국영 ABC 라디오에서 진행한 것으로, 연방 정부가 전후 개혁을 위한 차원에서 정부의 증권금융을 진흥시키기 위해 지원한 프로그램) 자리를 차지하면서 점차 유명세를 탔다.

 


1952년 ‘Werriwa’ 지역구서

66% 득표로 연방 의회 입성

 


변호사로서, 그리고 크로눌라 지역 사회단체 활동가로 봉사하면서 그는 꾸준히 정치에 대한 열정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크로눌라 지역 지방의회와 주 하원 선거에 연달아 실패했다.

 

그리고 1952년, 젊은 휘틀럼에게 세 번째 선거는 행운이었다. 서던 시드니(southern Sydney) 지역 ‘웨리와’(Werriwa) 지역구 연방 하원 보궐 선거에 출마한 그는 6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연방 의회에 입성했다.

 

캔버라에 있는 그의 노동당 정치 동료들은 눈길을 끌 만큼 큰 키와 지시하는 듯한 거침없는 그의 태도 때문에 그에게 ‘젊은 두루미’(the young brolga)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는 의회 진출 직후부터 그렇게, 다소 부정적 의미의 ‘유명인’(silvertail)이 되었고, 정치인으로서 이 같은 주변의 평판을 극복해야 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한 쟁점 사안에 대한 논쟁에서 위트와 함께 명확한 논리를 지닌 토론자로 인식되기도 했다.

 

1960년, 당시 야당인 노동당 대표로 아서 칼웰(Arthur Calwell. 32년간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정치인. 1945-49, 1960-67년 두 차례 호주노동당 대표직을 맡은 바 있다)이 다시 대표로 선출되면서 휘틀럼은 부대표로 발탁됐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당 개혁을 시작했다.

 

그리고 1967년 칼웰의 뒤를 이어 휘틀럼은 노동당 대표가 되었고 이는 당의 현대화라는 그의 계획을 더욱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휘틀럼은 “호주 및 노동당 역사의 결정적인 시기에 노동당 대표로 선출된 것은 아주 높은 특전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The Program’으로 알려진, 노동당 개혁을 위한 휘틀럼의 계획은 진행 과정에서 당내 중요한 논쟁의 시발이 되었다. 하지만 평당원들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서 휘틀럼은 일말의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호주 정치의 최대 이슈는 베트남 전쟁이었다. 반전 시위는 연일 자유-국민 연립 정부를 괴롭혔다. 1966년, 당시 노동당 부대표였던 휘틀럼은 베트남을 방문, 제1 호주 특수부대 작전 지역을 순방했다. 이어 대표로 선출된 이듬해인 1968년 또 다시 베트남을 방문한 휘틀럼은 당시 존슨(Lyndon B Johnson) 미 대통령의 명령으로 호주 병력 파병을 증원한 호주 존 고튼(John Gorton) 수상을 비난했다.

 

휘틀럼은 “중요한 것은 남베트남에서의 적대행위 종식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전쟁 종식은) 북베트남 공격을 계속함으로써는 일궈낼 수 없다”고 말했다.

노동당의 베트남 전쟁 반대와 보건 정책 개혁에 대한 새로운 초점은 유권자들을 열광시켰다. 1969년 선거에서 노동당은 총 17석을 획득했다.

 


1972년 총선 앞두고 선거 슬로건

‘It’s Time’으로 유권자 파고들어

 


유권자 지지도가 높아지면서 정치 변화의 탄력은 더욱 커졌고 휘틀럼은 3년 뒤인 1972년 선거에서 노동당 집권 분위기를 움켜쥘 수 있었다. 당시 휘틀럼이 내건 슬로건은 호주 국민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It’s Time’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제반 분야의 개혁을 통해 보다 나아진 호주 국가를 건설하자는 큰 의미를 담은 것이었고, 이제 노동당이 나서 그것을 실행할 때라는 메시지였다.

 

그는 연방 총선을 앞두고 “호주의 남성과 여성 여러분, 12월2일 우리 조국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 하는 결정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선택이자, 타성 및 과거의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기회 및 요구 사이의 선택이기도 합니다”라는 유명한 정책 연설을 남겼다.

 

마침내 1972년 12월2일 총선에서 그는 노동당의 23년 야당을 종식하는 승리를 끌어냈고 노동당 대표로서 호주 제 21대 수상(Prime Minister) 자리에 앉았다.

 

그의 실질적인 정치 개혁은 집권과 동시에 시작됐다. 랜스 버나드(Lance Barnard)를 부수상으로 지명한 휘틀럼은 수상 취임 이후 곧바로 호주의 베트남전 철군을 결정했고, 감옥에 수감된 병역기피자들을 석방시켰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을 인정했고 연방 정부에 최초로 호주 원주민 부서를 신설했다.

 

휘틀럼 정부 3년 동안 새로운 법안 제정 또는 변경 기록은 엄청났다.

교육 부문에서는 대학 등록금을 폐지했고 정부의 학교 필요자금 도입 법안을 마련했다. ‘메디뱅크’(Medibank)라는 이름의 보건 시스템도 획기적으로 변화됐다. 오늘날 메디케어(Medicare)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울러 노동당 정부는 ‘리걸 에이드’(Legal Aid. 가난한 이들에 대한 법적 지원)을 설립했고, 가정법원을 신설했다. 이는 당사자 쌍방의 책임을 묻지 않는(no-fault) 이혼 절차를 진행하는 법원으로 세계 최초였다.

 

투표 연령도 21세에서 18세로 낮추었으며, 육아 여성과 노숙자 지원을 위한 복지 수당도 도입했다.

 

1975년 UN에서 인준된 인종차별법을 재가하고 원주민 토지권리법을 통과시켰으며 수상이 직접 호주 북부 와티 크릭(Wattie Creek) 지역의 호주 원주민 ‘구룬지’(Gurundji) 부족에게 노던 테러토리(Northern Territory) 안의 전통적 토지에 대한 부동산 권리 증서를 전달했다. 휘틀럼은 이 자리에서 “오늘 우리가 이행하는 이 반환 법이 따로 분리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예술 분야에서는 호주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설립을 발표했으며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 미국 추상적 표현주의 미술 운동의 중심 인물이자 당시 미국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 중 하나)의 유명한 그림 ‘Blue Poles’를 130만 달러에 구입했다. 이 그림 가격은 현대 미술 금액으로는 최고가를 기록했다. 아울러 그는 호주 영화위원회(Australian Film Commission)와 호주 문화원(Australia Council)을 설립했다.

 

외교 부문에서 휘틀럼은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을 방문한 최초의 수상이 됐다. 중국과의 외교 관계는 그로부터 24년 후 다시 재개됐다. 또 그는 인도네시아, 인도, 일본, (당시) 소련 연방(USSR), 북아메리카와 유럽 등지를 방문하며 폭넓은 외교 활동을 벌였다.

 

아울러 UN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예전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에 대한 기존 호주 입장을 바꾸어 인종차별을 비난했고 남아공 스포츠팀과의 교류를 금지시켰다.

 

획기적인 정책을 펼쳐나간 휘틀럼 정부에 대한 비판과 스캔들도 많았다. 수많은 법안이 의회를 통과, 시행되었지만 적대적인 상원의원들의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부딪쳐 가결되지 못한 법안도 93건에 달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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