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初心)

 

코로나 3년째인 2022년 새해도 벌써 2월이다. 음력 설날도 지났다. 그래도 아직 초반이다. 올 한 해 이런저런 다짐과 계획을 세워도 늦지 않다. 하루, 1주일, 한 달, 그리고 1년의 계획도 처음이 좋아야 한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듯이.

대개 시작은 좋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포부도 크고 계획도 거창하다. 장사도 첫날엔 최상의 서비스가 제공된다. 세상에 처음 나오는 제품들은 하나 같이 최고다. 첫날 첫인상은 상대의 신뢰를 얻는 시험대다. 여길 통과하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 그래서 모두 처음에 공을 들인다.

시간이 지나서 첫날과 다른 모습들이 보일 때 “초심(初心)을 잃지 말라”느니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조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말을 할 때면 이미 초심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초심을 까맣게 잊었거나 아니면 스스로 외면한다. 초심 없이도 잘 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지난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중 가장 감동을 준 말이다. 국민들은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새 정부에서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새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믿었다. 그 이전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런 세상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2년 뒤 ‘조국 사건’을 계기로 이런 믿음과 기대는 사라졌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열렬 지지층의 ‘조국 수호’를 지켜본 국민은 문 대통령의 취임사 내용이 빈말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50% 안팎인 것이 이를 입증한다.

정부 여당과 열렬 지지층은 어느 순간부터 초심을 잊고 있었다. 그들은 촛불의 힘으로 뭐든 할 수 있다고 자만했다.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은 어느새 무시되고 있었다. 당연히 결과도 정의롭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니라고 우겼다. 그러면서 초심과 점점 더 멀어졌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여당 후보는 거침없는 언변과 저돌적 성격, 다양한 행정 경험이 장점이다. 그의 ‘사이다 발언’에 열광하는 지지자도 상당수다. 그런 그가 최근 대중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가 하면 뭔가 쫓기는 듯한 발언을 되풀이하고 있다.

선거가 불과 한 달 정도 남았는데 자신에 대한 지지가 여전히 40%를 넘어서지 못하고 박스권에 갇혀 있어 초조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은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모두 흡수하는 것이 과제이지만 복잡한 내부 사정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초지일관’(初志一貫, 처음에 세운 뜻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선거 막바지에는 달라질 수도 있으나 지금은 시장과 도지사를 지낸 경륜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네거티브’ 안 하겠다고 선언하고도 실제로는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초심에서 점점 멀어지게 하고 있다.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이후 선거 때마다 얼굴을 내미는 후보는 스스로 초심을 버린 듯 보인다. 이 분 처음에는 진보 진영에 가까운 중도였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경쟁을 벌였고, 고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경쟁도 했었다. 지난 2017년 대선 때 ‘제3지대’를 앞세워 20%가 넘는 표를 얻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엔 보수 야당 후보와 단일화 이야기를 한다. 이쯤 되면 이 분의 초심이 뭐였는지 헷갈린다.

 

현 정부 검찰총장 출신의 제1야당 후보는 공정과 정의를 강조하면서 ‘사람(정권)에게 충성하지 않고 오직 국민에게 충성하겠다’고 했으나, 지난 반년간 그의 행보가 이 말에 부합하는지 분명치 않다. 최근엔 당 대표의 도움으로 선거 전략과 메시지가 한 방향으로 가는 듯 보이지만, 한동안 두루뭉술한 태도로 진영 내 갈등을 일어나게 했다. 아직 초심이 뭔지 보여주지 못하는 신인이다.

 

대중의 인기로 살아가는 스타, 소비자에게 물건을 파는 기업, 유권자의 표에 매달리는 정치인은 초심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잘 나가도 한결같이 초심을 유지하는 스타, 기업, 정치인이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이번 대선은 후보에 대한 호감보다 비호감이 높아 여전히 안개 속이지만 ‘초심불망’(初心不忘 처음 마음을 잃지 않는다) 하고, 어렵고 힘들수록 ‘귀어초심’(歸於初心 처음 그 마음으로 돌아간다) 하는 후보가 3월 9일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김인구 / gginko78@naver.com

세계한인언론인협회 편집위원장, 전 호주 <한국신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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