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조와 가시나무

 

지난 한국 대선과 지방선거를 잇달아 패배한 민주당이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총체적 난맥상에 빠졌다. 이재명 의원의 대표 출마 가능성에 대안 부재론과 자숙론이 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실 아무리 명장이라도 패장이 되면 곧바로 다음 전투에 투입하는 건 일종의 금기이다. 한데 대선 후보와 지선 총괄선대위원장 등 결과에 가장 책임을 져야할 인물을 계속 기용해야 한다는 논리가 만만치 않다. 온갖 사법 리스크가 언제 폭발할 지 알 수 없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이다.

 

‘약자의 삶을 보듬은 억강부약(抑强扶弱) 정치로, 모두 함께 잘 사는 대동세상(大同世上)을 향해 가야 한다”는 이재명의 호소는 많은 이들의 가슴에 커다란 울림을 던졌다. ‘소년공 신화’가 ‘개혁 대통령’으로 만개하기를 진심으로 염원했다.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한(恨)을 풀어주고 큰 세상을 열어가는 풀뿌리 정치인을 기대한 것이다.

 

한데 대선 과정에서 줄줄이 불거진 의혹들은 그가 실제로는 추구한 것이 ‘억강부약’이 아니라 자신만을 이롭게 하는 ‘억강부아’(抑强扶我)라는 의심이 들게 했다. 그의 치적을 통해 모두 잘 사는 ‘대동세상’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과 야합한 소수가 천문학적 폭리를 거둔 ‘대장동 세상’이 펼쳐진 것 같았다. 논란과 고비마다 명분과 예의를 버리고 대놓고 실익과 뻔뻔함을 택하는 모습에서 자기를 희생하는 지도자의 자질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불리한 경기도 분당을 버리고 억지로 인천 계양에 출마해 기어코 금배지를 단 것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럼에도 이재명이 여전히 민주당을 이끌 거의 유일한 유력 인사로 간주되는 건 특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그를 결사 옹위하는 국회의원, 유명 논객, 평론가들은 물론 ‘개딸’과 ‘양아’라는 팬덤 현상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지도자에게 전통적으로 요구되는 일관성, 신뢰, 희생, 포용력 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그가 처참한 패배에서도 계속 살아나는 ‘불사조 리더십’을 보이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가 일반 정치인과 확연히 구별되는 지점은 권력의지의 정도가 아닐까 한다. 아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을 넘어 ‘수퍼 울트라 플레티넘 갤럭시’ 급이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철에 간절, 절박, 결단, 행동력 등이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삼대가 부끄러울 인신공격이나 도덕적 비난에도 권력의 정상을 향한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권력의지가 유전자처럼 존재가 말살되지 않는 한 끝까지 작동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어느 날 숲의 나무들이 왕을 세우기로 하고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를 차례로 만나 왕이 될 것을 간청한다. 이들은 열매 맺는 본분을 버리고 다른 나무들 위에서 요동하지 않겠다며 왕좌를 거절한다. 끝으로 찾아간 가시나무는 흔쾌히 왕좌를 받으며 자기 그늘로 피하지 않으면 가시덤불에서 뿜어낸 불길에 타 죽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요담의 우화’인데,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다른 나무들에게 유일하게 결핍된 권력의지만을 갖고 있기에 오히려 강퍅한 가시나무가 왕이 된다.

 

이재명은 한국 정치에 벼락처럼 쏟아진 ‘가시나무’의 축복이자 저주이다. 그를 충심으로 따르는 많은 정치인들은 그의 순수한 권력의지에 반하기도 하고 압도된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미세한 가능성이라도 실현되기만 하면 가장 확실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권력의지이다. 다른 자질을 다 갖추어도 권력의지가 약한 인물에게는 사람이 모이지 않는 것은 보상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식을 뛰어넘는 권력의지는 이해가 불가능한 대상이기 때문에 아예 경멸하거나 완전히 추앙하거나 반응이 극단적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수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야 비로소 권력을 잡을 수 있다. 따라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의지’가 의외로 긍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재명 정도의 정치인이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발버둥치는 것’은 상당히 흐뭇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국민 입장에서도 강력한 권력의지를 가진 정치인이 아니라면 호불호를 떠나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어 지지를 보내기 어려운 것이다. ‘가시나무’ 같은 인물이 끈질기게 왕좌에 도전해 숲 전체를 위한 ‘억강부약 대동세상’을 만들어간다면 이 또한 흔치 않는 정치 서사의 한 꼭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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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철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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