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검수완박’이라야 하나?

 

19대 대통령 임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대한민국 정치권에는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뜻하는 ‘검수완박’이라는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조어(造語)가 난무하고 있다. 곧 초거대 야당이 될 현 여당은 이를 만장일치 당론으로 정하고 새 정부 출범 전에 국회 통과를 목표로 돌격하고 있다. ‘검수완박’은 말로는 검찰개혁 완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윤석열 당선자가 통제하는 검찰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게 본심이 아닐까 한다. 공교롭게도 윤 당선자가 검찰총장을 사임하고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1년 남짓한 기간 동안에는 ‘검수완박’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집권 세력에 고분고분한 ‘김오수 검찰’에게서 굳이 수사권을 뺐을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검수완박’을 추진하는 여권이 검찰을 무소불위의 권력체라고 우겨도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이 마음만 다잡으면 전혀 상대가 될 수 없다. 검찰이 아무리 사납다 한들 기껏해야 대통령에 의해 통제되는 사냥개에 불과하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지난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되면서 검찰의 주인이 곧 바뀐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주인이 들어서면 곧장 사냥감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포악한 사냥개는 공포스러운 존재이다. 죄가 있으면 말할 것도 없고 죄가 없더라도 속절없이 정치 보복을 당할 수 있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국회의 절대 다수를 확보하고 있는 정치세력이 ‘검수완박’ 같은 묘수를 추진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현 여권이 국회의 힘을 총동원해서 기존 수사 시스템을 와해시키는 '검수완박'을 통과시켜도 기대했던 결과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공수처, 경찰, 상설 특검, 중수청, 특수청 등 명칭만 다를 뿐 범죄에 대한 수사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에 개혁해야 할 구조적인 악의 요소가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굳이 정권말에 졸속으로 ‘검수완박’을 추진하는 진짜 목적이 정치보복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면 얼마든지 다른 방안이 있다. 예컨대, ‘정치보복금지특별법’(정금법) 같은 법을 만들어 직전 정권의 선출직 및 별정직 공직자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정치보복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한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검수완박’의 무리수가 오십보라면 ‘정금법’은 백보 정도 될 것이다. 하지만 이왕 욕을 얻어먹을 무리한 입법이라면 보다 확실한 효능이 있는 쪽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정금법’은 특별법 성격을 갖고 있어 ‘검수완박’과 달리 기존 형사 사법 시스템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 또한 검찰 뿐 아니라 다른 기관의 수사 자체를 원천 봉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어온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정치보복 위험이 전혀 없는 청정한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다.

 

나아가 ‘검수완박’이 행정권력과 국회권력 간에 파국적인 대치와 갈등을 초래한다면, ‘정금법’은 이를 지양하고 협치의 주춧돌 역할을 할 공산이 크다. 전 정권 인사를 둘러싼 의혹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중단된다면 양대 권력이 생사를 걸고 혈투를 벌일 이유가 별로 없다. ‘검수완박’이 전방위적 분쟁이라면 ‘정금법’은 총성 없는 비무장지대이다. 최소한 다음 총선까지는 현 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새 정부는 새 정부대로 적폐 청산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민생과 미래 혁신에 전념할 수 있다. 거대 야당 역시 비리와 의혹 수사에 대한 불안과 반발에서 벗어나 정책과 개혁 경쟁을 통해 보다 안정적으로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정금법’에는 전 정권의 거악이나 중대 범죄가 아예 면책을 받을 수 있다는 태생적 우려가 있다. 이러한 우려는 ‘정금법’이 가진 한시법으로서의 성격을 감안하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결국 2년 뒤 총선 결과에 의해 이 법의 존폐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현재와 같은 의석 분포가 나온다면 ‘정금법’은 계속 존속되고, 반대로 다수당이 바뀐다면 폐기된 후 기존 시스템에 의한 적폐 청산이 이루어질 것이다. 어떤 경우든 새 정부 출범 후 예상되는 국회와의 힘겨루기 치킨게임의 승패를 총선 결과에 맡기게 된다. 민주주의는 법치 위에서만 가능한데, 법을 만드는 국회와 이를 집행하는 행정부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다면 궁극적으로 민의의 판결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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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철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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