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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느끼는 외로움은 정신건강 및 월빙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호주인들이 갖고 있는 이 감정에 대한 최근 조사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복잡하다”고 말한다. 사진 : Unsplash / Sasha Freemind

 

‘Healthy Male’ 설문 조사... 35-49세 남성, 노년층 비해 외로움 느낄 가능성 3배 높아

 

텅 빈 도시의 한 심야 식당, 카운터 앞에 앉아 강한 형광등 불빛을 받고 있는 네 명의 남녀가 있다. 미국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1942년 작 ‘Nighthawks’는 얼핏, 지극히 단순한 풍경으로 보일 수 있다. 마치 카메라가 롱테이크(long take)로 잡아낸 것 같은 이 장면은 당시 미국에서 현대인의 외로움과 소외를 상징하는 그림이 되었고 수많은 영화, TV 쇼, 기타 매체에서 패러디됐다. 그리고 호퍼는 이전에 발표된 ‘Early Sunday Morning’(1930년), ‘The Automat’(1927년), ‘Gas’(1940년), ‘Office at Night’(1940년) 등과 함께 ‘현대인의 외로움과 고립감을 빛과 그림자라는 사물을 통해 암울하고 분위기 있게 표현해 낸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추구해 온 중요한 주제였다. 한국의 작가들 가운데 29세에 요절한 천재 시인 기형도씨 또한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 한 장 열풍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 2시착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 신작로 위에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기형도의 시 ‘봄날은 간다’ 일부). 이 작품 외에도 그는 ‘고독의 깊이’, ‘허수아비- 누가 빈 들을 지키는가’, ‘빈 집’ 등을 통해 현대인의 내면에 자리한 고독과 우울을 포착해낸 시인으로, 특히 이를 표현하고자 그가 도구로 활용한 계절 이미지는 더없는 쓸쓸함을 던진다.

그렇다면 호주인들이 갖고 있는 이 같은 감정의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최근 조사 결과 호주 남성들이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복잡하다”고 표현한다.

남성 건강단체 ‘Healthy Male’이 실시해 최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호주 남성의 43%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으며 이들 중 16%는 이런 감정의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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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인의 외로움 관련 설문 조사를 실시한 남성 건강단체 ‘Healthy Male’의 임상 심리학자 잭 세이들러(Zac Seidler. 사진) 박사는 건강과 웰빙을 이야기할 때 ‘외로움의 감정’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사진 : University of Sydney

   

이 단체의 사이먼 솔던(Simon von Saldern) 최고경영자는 가장 외로운 연령대는 많은 이들이 상상하는 그룹이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18세 이상 남성 1,282명을 표본으로 활용한 이번 조사는 ‘외로움’이라는 주제의, 제한된 지역 연구의 일부이지만 사회적으로 크게 제기되지 않았던 주제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조사 결과, 호주의 중년 남성은 65세 이상 노년층 남성에 비해 외로움을 느낄 가능성이 약 3배 더 높았다. 그렇다면 이 같은 조사 결과의 배후에는 어떤 요인들이 있는 것일까.

 

단절, 고립, 소속감 부족...

 

먼저, 외로움이 무엇인지를 정의해 보자. 임상 심리학자이자 ‘Movember’의 정신교육 책임자 잭 세이들러(Zac Seidler) 박사는 “외로움은 누군가 반드시 친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이는 그들이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것으로 “관계의 질(quality of relationships)에 관한 문제”라는 설명이다.

세이들러 박사는 “따라서 이(외로움)는 단절감과 고립감, 소속감 부족으로, 이 같은 성격의 외로움은 남성 건강과 웰빙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Healthy Male의 온라인 사이트는 ‘심장병, 뇌졸중과 같은 신체 건강은 물론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 등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많은 이들이) 건강에 영향을 주는 외로움에 직면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남성들에게서 나타나는 외로움의 감정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 영향에 관련된, ‘심각하게 우려되는 통계의 하나’에 기여한다고 설명하면서 “호주는 자살에 의해 하루 평균 7명의 남성을 잃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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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y Male’이 실시한 설문 결과 호주 중년 남성은 65세 이상 노인 남성에 비해 외로움을 느낄 가능성이 약 3배 높았다. 사진은 이 조사를 진행한 Healthy Male의 사이먼 본 솔던(Simon von Saldern. 사진) 최고경영자. 사진 : Healthdirect Australia

   

중년의 나이에

맞닥뜨리는 압박감

 

Healthy Male 사이먼 본 솔던(Simon von Saldern) 최고경영자는 중년 남성그룹이 가장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관련 있는 몇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추정한다.

“우리는 35세에서 49세 사이에 별거와 이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그는 “(이 나이에는) 직장에서도 압박이 발생하는 시점”이라며 “이 연령대에는 정말로 큰 타격을 받는 다양한 삶의 사건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세이들러 박사는 또 다른 주요 이유로 “남성의 경우 성인이 되어 가면서 ‘사회적 연결과 우정의 우선순위’를 상실하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성은 시간이 지나도 우정을 유지하지만 남성의 경우 하이스쿨에 이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거나 아버지가 되면 (지인들과의 좋은 우정이) 빛바래 가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어 “어떤 이유에서인지 남자들은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우정을 잃어버리거나 그것을 박탈한다”고 설명한 그는 “이는 꽤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중년 이후의 보다 나은

사회적 연결 ‘중요’

 

성별에 관계없이 중년의 나이에 친구를 사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세이들러 박사는 특히 남성의 경우 더욱 그러하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지만 임상적으로든 연구를 통해서이든 항상 조언하는 것은 ‘많은 상황에서 당신의 생명을 구하는 우정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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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y Male’의 본 솔던(Simon von Saldern. 사진) 최고경영자에 따르면 35세에서 49세 사이의 남성들은 별거나 이혼이 더 많고 직장에서도 압박이 발생하는 시기여서 외로운 감정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사진 : Unsplash / Kristina Tripkovic

   

오늘날 ‘Dads Group’, ‘Tough Guy Book Club’ 등 젊은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활동 그룹이 호주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세이들러 박사에 따르면 남성 활동그룹의 대부분은 여전히 나이가 많은 연령대를 위한 것들이다.

대신 젊은 남성들은 온라인에서 모이고 있다. 세이들러 박사는 “우리는 온라인 공간과 같은 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실제로 그들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부가적 대면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시한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으로, “말 그대로 우리가 이 지구에서 해야 할 일, 즉 서로를 연결하는 일인데, 우리는 이것이 일상적 기능의 전면이자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세이들러 박사와 본 솔던 CEO는 중년 남성이 사회적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원봉사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본 솔던 CEO는 지역 축구클럽에서 했던 자원봉사 사례를 언급했다. 남성이 스포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바비인형 앞에 서서 옆 사람과 이야기할 수는 있는’ 것처럼 참여하는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어 “잡담은 좋은 것”이라며 “이것이 더 큰 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남성들이 갖고 있는 친구와의 더 나은 연결에 대해 세이들러 박사는 ‘어깨를 맞대고 하는’ 활동을 제안한다. 그 가장 좋은 예로, 친구들 중 한 명과 드라이브를 갈 때 차 안에서 격렬하게(?) 수다를 떠는 것이다. 둘 다 앞을 보고 있기에 어색함이나 불편함은 상당히 적다.

 

“외로움은 미래의 ‘글로벌

공공보건 비상사태’...”

 

세이들러 박사는 “우리는 오랫동안 외로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외로움을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몇 가지 징후가 있다. 우선,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인해 도시 봉쇄가 단행되었을 당시, 사회적 연결의 필요성을 의식하기 시작했고 ‘외로움의 문제에 대해 눈을 돌렸다’(scratch under the surface of loneliness)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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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중년의 나이에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자원봉사 활동을 강력히 추천한다. 사진은 자원봉사자 운영 조직인 Vegan Australia의 봉사자들. 사진 : Vegan Australia

   

또한 호주는 영국이나 일본처럼 ‘외로움에 의한 정신건강’을 위해 담당 장관을 임명하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긍정적 움직임이 있다.

연방의회 내 ‘Parliamentary Friends of Ending Loneliness’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앤드류 가일스(Andrew Giles) 하원의원(현 알바니스 정부의 이민부 장관)은 최근 외로움에 대해 “우리가 해결해야 할 차후의 글로벌 공공보건 비상사태”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세이들러 박사는 개별적으로 각자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가 잘 하고 있다고 섣불리 단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이 메시지는 모든 남성들에게 전하는 것”이라며 “외로움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자가 느끼는 그 감정을 나중에 의식하려 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 도움의 전화

Suicide Call Back Service / 1300 659 467

Lifeline / 13 11 14

Aboriginal & Torres Strait Islander crisis support line 13YARN / 13 92 76

Kids Helpline / 1800 551 800

Beyond Blue / 1300 224 636

Headspace / 1800 650 890

ReachOut at au.reachout.com

MensLine Australia / 1300 789 978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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