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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 상태와 자살 사이의 연관성이 있을까? 시드니대학교 ‘Brain and Mind Centre’ 연구원 등 일단의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2004년부터 2016년까지 호주에서 발생한 자살 사건을 기반으로 새로운 예측 모델링 분석을 통해 실직 상태 및 불완전 고용과 자실의 인과 관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진 : Pixabay / GoranH

 

CCM 분석 기법 활용, 실업-불완전 고용이 자살 행동에 미치는 인과적 영향 연구

 

정신건강 분야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실직 상태와 자살 사이의 연관성을 추정해 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인과관계를 밝히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 ‘실직이 자살행동을 유발할까?’ 아니면 ‘두 가지 모두가 정신질환과 같은 보다 혼란스런 요인에 의존하는 걸까?’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단의 연구원들이 그 인과관계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확인했다고 발표, 학계의 관심을 받았다.

연구원들은 지난 2004년부터 2016년까지 13년 사이 실직 상태와 불완전 고용으로 인해 3,000명 이상의 호주인이 자살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연간 평균 230명에 이르는 것이다.

이들은 이번 확인이 ‘심오한’ 정치-경제-사회-법적 함의(implication)를 갖고 있다면서 ‘경제 정책의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연구원들은 “생태학에서 차용한 고급 분석기술을 활용해 (실직과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13년간의 데이터 연구

 

이들의 연구 결과는 실직 상태와 불완전 고용이 자실의 원인이라는 논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논문은 과학 분야 학술단체인 미국 과학진흥학회(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운영의 오픈 액세스 종합 저널 ‘Science Advances’에 게재되어 있다.

이들이 활용한 예측 모델링에 따르면 2004년에서 2016년 사이, 호주에서 보고된 3만2,000건의 자살사건 중 9.5%는 노동력 저활용(labour under-utilisation), 즉 9.5%의 절반은 실직 상태, 절반은 불완전 고용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되었다.

실직 상태와 불완전 고용이 자살 행동에 미치는 인과적 영향을 테스트하기 위해 연구원들은 ‘convergent cross mapping’(CCM) 기술을 이용했다. 연구원들은 최근 호주 비영리 학술 온라인 매체 ‘The Conversation’에 연구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 방법에 대해 “복잡한 생태계에서 인과관계를 탐지하기 위해 지난 10년에 걸쳐 개발된 것”이라며 “무엇보다 우주의 선(cosmic ray), 지구 온도와 습도 및 인플루엔자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관련 전문가들은 시드니대학교 ‘Brain and Mind Centre’의 조-앤 오치핀티(Jo-An Occhipinti) 부교수, 아담 스키너(Adam Skinner) 연구원, 이안 히키(Ian Hickie) 보건정책 책임자, 동 대학교 청소년 정신건강 부문 윤주 크리스틴 송(Yun Ju Christine Song) 연구 책임자, 캐나다 사스캐처원대학교(University of Saskatchewan, Canada) 컴퓨터 공학자 나다니엘 오스굿(Nathaniel D Osgood) University of Saskatchewan) 박사 등이다.

 

실직 상태로 인한

심리적 고통

 

연구 논문에서 연구원들은 인과관계 문제에 대해 토론한다. 이들은 실업 상태와 자살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실질적 증거가 있다고 말하지만 지금까지는 이 연관성이 인과관계인지(즉 실업이 자살 행동을 유발하는 경우) 아니면 하나 이상의 교란 요인에 대한 두 변수의 의존성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불분명했다.

연구원들은 특히 정신장애가 자살 사망률과 노동시장 결과의 중요한 예측 변수라고 말한다. 때문에 단순히 정신질환이 자살 행동과 실업을 동시에 높이기에 실직 상태와 자살이 연관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연구원들은 “낮은 비율의 노동력 활용도(실업률, 불완전 고용률)가 자살 사망을 높이는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효과적인 자살예방 전략을 개발하는 것뿐 아니라 대안적 경제정책 결정의 사회-경제적 결과를 적절하게 평가하는 데에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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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에 걸친 호주 실업과 불완전 고용 비율. 가운데의 그림자 부분은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실업과 자살의 인과관계를 연구한 기간이다. Source: 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Labour Force Australia, May 2023, Table 22. Underutilised persons, seasonally adjusted

   

연구원들의 CCM 분석,

무엇을 보여주었나

 

연구원들은 연구기간(2004년에서 2016년) 동안 호주에서 예측된 3만2,329건의 자살 중 약 10분의 1(3,071건 또는 9.5%)이 노동력 활용 부족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실직 상태와 불안전 고용으로 인한 자살은 대략 균등하게 공유됐다.

연구원들은 연구 결과에 대해 “고용에서 실직으로의 전환이 자살 사망률과 의도적 자해의 주요 위험요소인 ‘심리적 고통의 상당한 증가’를 일으키는 경향이 있는 반면, 그 반대의 경우는 ‘정신건강의 개선과 관련 있다’는 전향적 역학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전향적 연구에서와 유사하게 비자발적 시간제 고용과 불완전 고용이 심리적 고통이라는 증상 증가의 중요한 예측 인자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불완전 고용에 대한 CCM 결과와 일치한다고 말한다. “실직 상태와 불완전 고용은 재정적 어려움과 빈곤, 낮은 사회적 지위, 소셜 네트워크 규모 및 사회적 지원 감소를 포함하여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여러 잠재적 위험 요소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고용 상태와 소득에 크게 의존하는 사회경제적 박탈이 정신건강 치료 결과의 악화와 관련 있다는 증가가 있다”는 연구원들은 “따라서 실업과 불완전 고용은 심리적 고통 발생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치료를 받는 이들 사이에서 증상의 심각성, 지속성을 높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의 해결책은 무엇?

 

연구원들은 이번 연구 결과가 공공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하면서 “실직 상태와 자실 사이의 명확한 관계는 정부와 기관이 정책과 행동의 영향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지도록 촉구하게 한다”고 전했다. 즉 “경제적 효율성을 위해 일정 수준의 실업을 요구하는 정책적 윤리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이어 실직 상태로 인한 인적 비용 관련 연구 결과는 완전 고용을 달성하고 실직의 부정적 결과를 줄이기 위한 정책적 근거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실직 상태가 고의적 정책 결정의 결과인데 왜 실업자들이 박탈, 낙인, 절망에 직면해야 하는가”라는 게 그들의 말이다.

또한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더 큰 고용 안정을 달성하기 위한 실업수당 확대와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추가 논의에 박차를 가했으면 한다”면서 “단순히 돈을 버는 것 이상의 경제 설계와 그것이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서도 더 큰 대화의 기회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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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구를 함께 한 시드니대학교 ‘Brain and Mind Centre’의 조-앤 오치핀티(Jo-An Occhipinti. 사진) 부교수. 연구원들의 이번 연구 결과는 과학 분야 학술단체인 미국 과학진흥학회(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운영의 오픈 액세스 종합 저널 ‘Science Advances’에 게재되어 있다. 사진 : Linkedin / A/Professor Jo-An Occhipinti

   

법적으로 보살핌의 의무와 국민 복지를 지켜내기 위한 정부 및 기관의 의무도 강조됐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고용, 직장 건강과 안전, 차별 및 인권과 관련된 법적 프레임워크에 대한 논의에 기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연구원들은 “실직 상태와 자살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는 정책 재평가, 완전고용 우선순위 지정, 빈곤 예방을 위한 적절한 사회안전망, 정신건강 시스템 개혁, 웰빙 경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일자리-적절한 임금 제공이

자살을 막을 수 있을까

 

이번 연구를 통해 연구원들은 퀸즐랜드대학교(University of Queensland) 경제학자 존 퀴긴(John Quiggin) 교수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사회참여 임금’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는 시드니대학교 ‘Mental Wealth’의 이니셔티브로, “삶을 지속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liveable wage) 비율을 설정하면 무급 자원봉사, 시민참여, 환경 복원, 예술 및 창조활동, 국가의 사회적 구조를 강화하는 활동의 가치를 인식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번 연구에서 이들은 CCM 및 예측 모델링 결과, ‘고용 보장’과 같은 고용의 결과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적 정책 접근방법이 증거 기반 임상 및 보건 서비스 계획 개입과 유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 큰 방식으로 자살 사망률을 줄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동적 모델링 분석 결과, 강도 높은 자살시도 치료를 일상적으로 제공하는 경우 NSW에서 10년 동안 총 자살건수를 6.8%~7% 감소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안전 계획과 전문적인 정신건강 서비스의 역량 증가는 자실을 각각 최대 9.9% 및 4.7% 줄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원들은 또한 일자리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적절한 일이 제공된다면 지역사회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따라서 모든 구직자들에게 적절한 고용을 보장하는 경제정책 채택은 의도적 자해와 자살의 막대한 개인-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 수단 가운데 하나일 수 있으며, 종합적으로 국가 자살방지 전략의 핵심 목표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원들의 이번 연구 논문은 극심한 빈곤 및 인권과 관련, 올리비에 드 슈터(Olivier De Schutter) 유엔 특별조사위원의 일자리 보장 프로그램에 관한 특별 보고서가 발표되고 2주 만에 나온 것이다.

유엔 보고서는 직업 보장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글로벌 고용 문제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드 슈터 조사위원은 유엔 인권위원회에 특별 조사보고서를 제출하기 전, “비참한 근무 조건과 저임금이 전 세계 노동자 대다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AI 활용 증가로 노동시장 혼란 및 일자리 감소가 불가피하기에 이 부분에 대한 시급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는 정부가 단순히 일자리 성장을 위한 적절한 여건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며 “정부는 원하는 이들에게 생활임금을 통해 안전하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직업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것이 진정으로 ‘일할 권리’에 관한 것”이라는 말이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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