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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가 참전한 모든 전쟁에서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안작데이’(ANZCA Day) 기념행사의 주축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자들이지만 생존자는 매년 크게 줄어들고 있다. 사진은 일본군 포로가 됐다 살아남은 참전용사 키이스 파울러(Keith Fowler)씨의 복무 시절.

 

호주 사회에 영향 준 전쟁의 기억, 이제 관련 서적으로만 남을 것...

 

20세의 젊은 병사 키이스 파울러(Keith Fowler)는 자신의 목에 총검을 들이댄 일본군 병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경비를 서던 일본군 병사는 확실하게 파울러를 죽일 수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 기적적으로 파울러는 목숨을 구했다. 이제 98세가 된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파울러씨는 “일본군 병사가 총검을 들이댔을 때, 공포에 휩싸여 온 몸이 완전히 마비됐었다”며 70여년 전의 당시를 회상했다.

 

2018년 참전용사 보건카드

발급 건수, 절반으로 감소

 

키이스 파울러씨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군의 포로로 잡혔던 2만2천여 호주군 가운데 한 명이다.

캔버라(Canberral) 소재 전쟁기념관(War Memorial)에 따르면 이 전쟁 당시 100만 명 가까운 호주인이 군인으로 복무했다. 당시 호주 인구가 700만여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는 이 같은 참전용사 수는 놀랄 만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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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98세가 된 2차 대전 참전용사 키이스 파울러씨. 전쟁 당시 일본군 포로가 됐던 호주 군인은 2만2천 명에 이른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보훈부(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DVA)가 내놓은 통계는 파울러씨 세대가 겪은 전쟁, 그 끔찍한 기억을 잃어버릴 날도 가까이 와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지난해 6월, DVA가 참전용사들에게 발행해 주는 보건카드 목록에는 1만3,278명의 의 생존자가 있었다. 이전 해의 2만3천 명에서 엄청난 수가 줄어든 것이다.

역사학자인 애들레이드대학교 로빈 프라이어(Robin Prior) 교수는 “‘안작데이’ 퍼레이드에는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이 두드러지게 참여해 왔지만, 이들이 현저하게 감소한 것은 커다란 변화”라면서 “호주가 지금까지 싸워 왔던 전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이들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이제 겨우 수년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주 목요일(25일)은 올해로 104주년이 되는 호주 현충일, ‘안작데이’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을 이끌던 영국의 요청으로 호주-뉴질랜드 젊은이들을 모집, 급조한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는 제대로 된 훈련조차 받지 못한 채 연합군 사령부가 전쟁의 전환점을 마련하고자 계획한 터키 갈리폴리 상륙작전(Gallipoli Campaign)에 참전했다. 하지만 상륙 후 안작부대원들은 제대로 된 참호도 없는 해안에서 터키 방어군의 총격에 속절없이 쓰러져 갔다. 불과 수개월의 전투가 이어진 뒤 아무런 성과 없이 철수해야 했던 이 전투에서 호주군 사망자는 8천709명, 부상자는 1만9,441명에 달했으며 뉴질랜드 전사자는 2천721명에 4,752명 부상이라는 참혹한 결과만 남겼다.

안작데이는 바로 이 안작부대가 터키 갈리폴리에 상륙한 날을 기해 이듬해 시드니에서 거행된 전사자 추모에서 시작돼 오늘날에는 모든 전쟁에 참전했던 호주 병사를 기리는 국가적 현충일이 됐다.

안작데이를 앞둔 지난 금요일(19일) ABC 방송은 “사람들이 모든 역사적 전쟁과 참혹함이라는 면에서 전쟁을 잊을 수는 없겠지만 그 전쟁의 배후에 있던 이들의 개인적 기억과 감각은 사라질 것”이라며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이 점차 줄어드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현재 2차 대전 참전자 관련 책을 쓰고 있는 프라이어 교수는 “이제 호주 참전용사들의 이야기가 이런 역사서로만 남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집단적 기억이라는 것은 관련 책으로 기술된 것에서 알 수 있는 것과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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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병으로 복무하다 독일군 포로로 2년여 수용됐던 놈 진(Norm Ginn)씨. 그는 전쟁 상황과 포로로 생활했던 당시를 또렷이 기억했다.

 

“겁에 질려 그대로 꼼짝없이 서 있었다”

 

전쟁 당시 베를린 인근 상공에서 자신의 랭커스터(Lancaster) 폭격기가 격추되던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놈 진(Norm Ginn. 95)씨에게서는 당시의 감정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진씨는 2차 대전 당시 통신병으로 복무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폭격 당시의) 두려움과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진씨는 “폭격기에서 튕겨져 나가며 얼굴 한쪽에 화상을 입었는데, 밖의 공기는 너무 시원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간신히 공포감을 억눌렀다. 그리고 얼마 후 독일군 폭격기들이 멀리 사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진씨는 3일간 나치 군을 피해다녔다. 그 3일이 독일군 포로가 되어 2년간 수용되기 전, 마지막으로 맛본 자유였다.

독일군은 그를 포로로 잡은 뒤 심문을 하고 총살을 시킬 것이라며 조롱했다. 한 장교는 그를 벽돌담 앞에 세워두었다. 진씨는 “그들이 말할 기회를 주었지만 정말로 총살형에 처해지는가 싶어 아무 말도 못하고 꼼짝없이 서 있었다”고 당시 기억을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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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 진(Norm Ginn)씨와 동료들. 그는 전쟁 중 베를린 인근 상공을 비행하다 독일군에 의해 그가 탄 랭커스터(Lancaster) 폭격기가 격추된 뒤 포로가 됐다.

 

전쟁의 경험,

호주 사회에도 영향 미쳐

 

1945년, 러시아가 독일군 포로 캠프를 접수하면서 풀려난 진씨와 동료 수용자들은 옛 소련의 붉은 군대(Red Army)가 인근 마을에서 독일 민간인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행위를 저지하기도 했다.

진씨는 “당시 민가의 한 농부가 마지막 한 마리 남은 닭을 빼앗기려 하지 않자 소련군 병사가 농부의 머리에 총을 대고 그대로 쏴버리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포로수용소 인근의 마을을 지키며 그런 행위를 막았다”는 진씨는 “그 때 소련군 일부는 매우 잔인했고, 독일 민간인들은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키이스 파울러씨는 일본군에 포로로 잡혀 있었던 오랜 전의 기억을 다 회상하지는 못했다.

포로로 잡힌 호주군에 대한 일본군의 잔인함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다. 호주 포로 3분의 1이 사망했다. 이들 가운데는 굶어 죽거나 작업장에서 맞아 사망하기도 했다.

파울러씨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거의 죽을 만큼 자신을 때렸던 한 일본군을 잊을 수 없다. 그런 가운데서 포로수용소의 동료들이 ‘47’이라 불렀던, 다소 인간적이고 유머러스 했던 일본군에 대해서도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는 전쟁을 일으킨 자기네 나라 천왕에 대해 상당히 불만을 드러냈다. 아내,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어야 하는데, 전쟁터에 끌려나와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47’이라 불렸던 그 일본군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파울러, 진씨는 가족들이 모인 식탁에서 자녀, 손주들과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끔찍했던 전쟁의 경험은 전후 호주의 정치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호주 사회 일각에도 새로운 파문을 남겼다. 극우 세력이 보다 적극적으로 표면에 부상한 것이다.

프라이어 교수는 “전쟁이 끝난 후 참전자들 가운데 극우주의로 돌아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우리는 지금, 이런 세력과 대항했던 참전 용사들을 잃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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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참전자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있는 애들레이드대학교 역사학자 로빈 프라이어(Robin Prior) 교수. 그는 “호주 참전용사들의 이야기가 이런 역사서로만 남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결국 그것은 인생의 낭비였다”

 

2차 세계대전 참전, 그로 인한 호주 젊은 인력의 손실이 우파 세력을 자극하고, 올해 초 멜번에서의 극우단체 랠리나 크라이스트처치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우익 세력에 작용을 했는지는 사실상 증명할 수 없다.

프라이어 교수는 “2, 30년 전만 해도 (극우단체들이 펼치는) 공개적인 나치(Nazi) 용품들 전시를 보기는 힘들었다”면서 “제2차 세계대전 세대는 호주 좌익과 우익 세력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낸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우리가 조금만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면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전쟁이든 이념이든) 모든 면에서 인생을 낭비한 셈”이라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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