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그레이 노마드 1).jpg

지난 수십 년 사이 엄청나게 치솟은 주택 가격 등 부동 자산으로 부를 쌓은 베이비부머(Baby boomers) 세대들은 은퇴 이후 ‘그레이 노마드’(Grey nomad)로 즐거운 노후를 보내고 있지만 이후 세대들은 이들처럼 안락한 노후가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다.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의 한 해안 길을 달리는 캐러밴(사진).

 

높아진 주택 장벽-어려워지는 구직 시장 속 청년 세대들, 은퇴 이후도 ‘걱정’

 

한해 걸러 은퇴한 요르그(Jorg)와 얀(Jan) 커플은 빅토리아(Victoria) 주 남동부,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 상의 아름다운 타운인 포트 페어리(Port Fairy)에서 5천 킬로미터를 여행해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 북쪽 브룸(Broome)까지 왔다. 캠퍼밴(campervan)을 직접 운전해 장거리 여행을 떠난 것은 그들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며 또한 자신들이 거주하는 남동부 해안 지역과는 또 다른 호주의 자연 풍경을 만끽하고 싶어서였다.

거기서 요르그와 얀 부부는 호주 전역 각지에서 온 다른 커플 여행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들은 함께 저녁 식사를 위해 해변에 모이기도 한다.

브룸에 있는 한 캐러밴 파크에서 요르그와 얀씨는 몇 주간 머무르며 휴식을 취하고 또 가까운 지역을 둘러볼 예정이다.

이들 부부는 젊은 시절부터 열심히 일을 하고, 직장을 그만 둔 이후에는 새로움 모험을 즐기거나 보다 온화한 기후 지역을 찾아, 또는 보다 돈독한 부부애를 확인하고자 호주 대륙을 가로질러 여행을 하는 수만 명의 은퇴한 성인 중 한 커플이다.

이들처럼 시간이 날 때마다 특정 지역을 찾아 떠나거나 캐러밴을 운전해 호주 곳곳을 장기간 여행하는 ‘그레이노마드’(grey nomad. 캐러밴, 캠퍼밴을 이용해 여행하는 은퇴 노인들)들은 호주 고령 인구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있다.

평생 일을 해 오다 은퇴한 이들은 비활동적이고 보수적 성향을 갖고 있으며 또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하기보다는 급진적 형태의 도시주의 옹호자들, 즉 이동 가능한 주거지(캐러밴)를 갖고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휴대하고 있으며 폭넓은 네트워크를 가진 채 매일 또는 매주 다른 곳으로 여행하는 이들이다.

‘그레이노마드’라는 말은 수주에서 수개월 또는 몇 년에 걸친 장기 여행을 즐기며 살아가는 은퇴 노인을 말한다. 이 용어는 1997년 호주 제작의 다큐멘터리 ‘Grey Nomads’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대중화된 것으로, 당시 이 다큐멘터리는 캐러밴을 이용해 여행하면서 곳곳의 캐러밴 파크에 임시 주거지를 마련해 한 동안 지내다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는 은퇴 노인들의 색다른 삶을 다룬 것이다.

 

종합(그레이 노마드 2).jpg

WA 주 정부에 따르면 지난 2016년 WA 주를 방문, 캐러밴 또는 캐러밴 파크에서의 캠핑 등으로 시간을 보낸 154만 명의 여행자들이 주 경제에 기여한 비용은 10억 달러가 넘는다. 사진은 은퇴 후 캐러밴을 이용해 호주 전역을 여행 중인 레이-애니 보로우(Ray and Annie Barrow)씨 부부.

 

사실 정부로부터 고령 연금(Age pension)이 지급되는 65세(남성은 기준 연령이 다소 늦춰졌다)를 넘겨 은퇴한 뒤 캠퍼밴이나 캐러밴을 구입해 은퇴 이후의 삶을 여행으로 즐기는 것은 호주 직장인들의 보편적인 희망 사항이다. 기존에 구입해 놓은 주택을 매각해 일부 자금으로 여행을 즐기고, 이후에는 작은 규모의 주택(downsizing)을 마련해 여생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삶이 다음 세대에도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요르그와 얀씨처럼 그레이노마드로 새로운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이들은 전후 세대를 일컫는 ‘베이비 부머’들로 끝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높아진 주택 구입 장벽, 갈수록 부족해지는 일자리 등으로 지금의 은퇴 연령 세대들처럼 부를 쌓지 못할 것이라는 데서 나오는 진단이다.

최근 멜번 소재 모나시대학교 건축학과 강사인 티모시 무어(Timothy Moore) 박사와 멜번 소재 건축디자인 회사 ‘Sibling Architecture’의 아멜리아 보그(Amelia Borg) 대표는 호주의 ‘그레이노마드’와 현 세대 젊은이들의 상황에 대한 진단을 공동 명으로 ‘The Conversation’에 게재, 눈길을 끌었다. ‘The Conversation’은 학술 연구, 정치 분석, 사회 현상, 시사 문제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비영리 매체이다.

 

‘grey nomadism’의 규모는?

 

‘그레이노마드’를 포한한 여행자들은 ‘로밍 경제’(roaming economy)에 기여한다. 즉 분산된 주거지로 분산된 지출이 발생하는 것이다.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 주 정부는 지난 2016년 WA 주를 방문, 캐러밴 또는 캐러밴 파크에서의 캠핑 등으로 시간을 보내낸 154만 명의 여행자들이 한 해 10억 달러 이상을 주 경제에 기여했다고 파악했다.

캐러밴 여행자 클럽인 ‘Campervan & Motorhome Club of Australia’에 따르면 캐러밴이나 캠퍼밴 등 RV(recreational vehicle) 차량 운전자들은 주(week) 평균 770달러를 소비하고 있다. 또 이들의 먼 오지 지역으로의 여행은 단순히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것에서 인적 자본을 제공하는 것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그레이노마드’들은 종종 캐러밴을 세워 놓는 캐러밴 파크 또는 인근의 마을에서 그들만의 전문 기술로 노동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가드닝(gardening), 집 돌봐주기(house-sitting) 등 단순한 일에서 은퇴 전 기술을 이용한 전문 노동력까지.

사실, 캐러밴 파크나 또는 이들이 야영을 할 수 있는 공원은 그레이노마드를 먼 오지의 마을로 끌어들이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캐러밴 여행자들은 캐러밴 파크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서부 호주 주 관광청(Tourism WA)의 2012년 캐러밴 및 캠핑 여행 자료에 따르면 현재 WA의 769개 지역에 3만7,369곳의 캠프 사이트가 마련되어 있다. 또 캠핑 및 캐러밴 파크 정보를 제공하는 ‘WikiCamps Australia’ 등의 앱(App)을 통해 먼 오지 지역에 사유지를 갖고 있는 개인에게도 캠핑장으로 대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대개 캐러밴 여행자들은 전기를 만들어내는 태양전지 판넬이나 발전기를 갖고 있지만 캠핑 여행을 하는 이들은 주차와 텐트를 설치할 수 있고 전기와 물, 샤워, 화장실이 있는 장소를 찾는다.

 

종합(그레이 노마드 3).jpg

밴(Van) 차량을 타고 여행 중인 젊은이들. 이들의 노후는 전 세대들처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래 세대는 운이 좋을까?

 

지난 반세기에 걸친 그레이노마드의 부상은 노후에도 충분히 여유 있는 생활이 가능한 경제적 여력을 통해 가능했다.

이들은 본인 소유의 주택을 매각하거나(정부 주택을 얻어 거주함으로써 더 큰 이익을 얻기도 함) 퇴직연금, 기타 고령연금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이 노후를 즐기는 삶의 한 방식인 ‘Nomadism’은 사실 각 개개인을 직장과 특정 생활공간에 묶어 놓은 사회-경제적 시스템에서 반평생 노동력을 제공한 뒤에 나이가 들어 받는 보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호주의 직장인들이 가장 원하는 은퇴 이후의 삶의 방식 중 하나인 그레이노마드로서의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내집 마련’의 꿈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이들은 점차 확대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임시직 선호 경제 형상으로, 일자리에 계약직이나 프리랜서 등을 주로 채용하는 현상)로 퇴직연금을 마련할 길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는 높은 주거비용으로 저축이 어렵고 불안한 일자리로 인해 은퇴를 했다 하더라도 지금의 그레이노마드처럼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미리 실망할 일은 없을 듯하다. 여러 흐름을 감안할 때 ‘grey nomadism’은 미래 세대들에게까지 은퇴 이후의 삶에 있어 지속 가능한 모델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유사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즉 내륙 지방 지역 커뮤니티에서 일정 기간 머물며 인적 자원을 제공하고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같은 방식으로 거주하는 형태의 여행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들은 각 지역사회의 공공도서관이나 카페, 또는 공동작업 공간에서 클라우드 기반의 통신망을 통해 개인 일을 지속할 수도 있다. 새로운 스타일의 ‘그레이노마드’인 셈이다.

그레이노마드가 없는 캐러밴 파크는 이들에게 새로운 장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주거지 찾기 앱을 통해 어느 지역이든 비어있는 주거 공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그레이노마드를 받아들이던 오지의 타운들도 새로운 ‘노마드’들을 위해 저렴한 숙소, 온라인 네트워크, 빠른 인터넷 속도 등 새로운 기반을 갖추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노마드’는 분산형 기반시설이 필요한 그룹으로 인식된다. 이들은 가정을 위한 능력을 보여주면서 또한 도시와 경계가 없는 삶을 증명한다.

이들은 여행을 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안정적이지 않은 경제 환경(새로운 스타일의 고용 형태 등)에서 나온 새로운 선구자들이다. 이는 이들이 결코 한 곳에서 오래 머물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 |
  1. 종합(그레이 노마드 1).jpg (File Size:52.8KB/Download:20)
  2. 종합(그레이 노마드 2).jpg (File Size:75.9KB/Download:18)
  3. 종합(그레이 노마드 3).jpg (File Size:62.3KB/Download:17)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5051 호주 턴불 총리 “역사 기념물 논쟁은 스탈린주의 발상, 대다수 국민 경악” 톱뉴스 17.08.28.
5050 호주 복지수당 수급자 대상 약물 테스트 대상 지역 3곳 확정 톱뉴스 17.08.28.
5049 호주 연방정부, 호주 내 난민희망자 100명 재정지원 중단 및 출국 통보 톱뉴스 17.08.28.
5048 호주 멜버른 카운슬로 튄 쿡 선장 동상 등 역사 기념물 훼손 불똥 톱뉴스 17.08.28.
5047 뉴질랜드 “4천불 현상금까지 걸었건만…” 총에 맞아 죽은 채 발견된 반려견 NZ코리아포.. 17.08.29.
5046 뉴질랜드 경찰무전기에서 들리는 ‘돼지 꿀꿀’ 소리의 정체는? NZ코리아포.. 17.08.29.
5045 호주 Ch10, 도산 위기 모면…미국 CBS 인수 확정 톱뉴스 17.08.29.
5044 호주 호주 “북한 미사일 도발, 전 세계 평화와 안보 위협”…강력 규탄 성명 잇따라 톱뉴스 17.08.29.
5043 뉴질랜드 향후 2년간 뉴질랜드 방문 크루즈 유람선 50% 신장 NZ코리아포.. 17.08.30.
5042 뉴질랜드 북한에 대한 미국 주도 공격 NZ 지지 여부, 반반 의견으로 나눠져 NZ코리아포.. 17.08.30.
5041 호주 CBA ‘산 넘어 산’…AUSTRAC이어 APRA도 조사 착수 톱뉴스 17.08.30.
5040 호주 2017 NSW 카운슬 선거, 한국계 후보 6명 출사표 톱뉴스 17.08.30.
5039 호주 ‘리틀 코리아’ 스트라스필드 카운슬의 ‘진흙탕 싸움’ 톱뉴스 17.08.30.
5038 뉴질랜드 폐쇄된 옛날 노천광산 인근에서 대형 싱크홀 나타나 NZ코리아포.. 17.08.31.
5037 뉴질랜드 뜨거운 한낮에 차에 아기 방치한 채 한잔 하고 잠들었던 아빠 NZ코리아포.. 17.08.31.
5036 뉴질랜드 승객 급증으로 본격 확장에 나서는 퀸스타운 공항 NZ코리아포.. 17.08.31.
5035 호주 지난 주 이어 낙찰률 하락... 16개월 만에 가장 낮아 file 호주한국신문 17.08.31.
5034 호주 탈북 학생들의 꿈... “어려운 이들 위해 일하고 싶다” file 호주한국신문 17.08.31.
5033 호주 ‘용의자 사살권’ 등 경찰 공권력, 시민들의 공포 탓? file 호주한국신문 17.08.31.
5032 호주 최장기간 연구 보고서, “성공하려면 성(姓)도 잘 타고나야?” file 호주한국신문 17.08.31.
5031 호주 베레지클리안, 서울 명예시민 되다 file 호주한국신문 17.08.31.
5030 호주 우울증-불안감에 시달리는 여성 비율, ‘우려’ 수준 file 호주한국신문 17.08.31.
5029 호주 호주 초등학교 남학생 5명 중 1명, ‘정서행동장애’ file 호주한국신문 17.08.31.
5028 호주 저소득층 지역, 임대주택 보증금 환불 거부 비율 높아 file 호주한국신문 17.08.31.
5027 호주 보수 진영 정치 인사들, 동성결혼 ‘Yes’ 캠페인 시작 file 호주한국신문 17.08.31.
5026 호주 ‘동성결혼’ 관련 우편조사 등록 마감일의 ‘해프닝’ file 호주한국신문 17.08.31.
5025 호주 Australia's best country and outback festivals(4) file 호주한국신문 17.08.31.
5024 호주 베레지클리안 주 총리, “한국어 등 가상교실 확대하겠다” file 호주한국신문 17.08.31.
5023 호주 호주 대학 평가... 골드코스트 ‘본드대학교’, 최고 점수 file 호주한국신문 17.08.31.
5022 호주 “동성결혼 반대진영의 광고도 결사 반대하는 노동당” 톱뉴스 17.08.31.
5021 호주 수그러들지 않는 연방의원 이중국적 파동…이번에는 노동당과 무소속으로 톱뉴스 17.09.01.
5020 호주 해리 큐얼, 잉글랜드 감독 데뷔 후 ‘첫 승’ 톱뉴스 17.09.01.
5019 호주 갈 길 바쁜 사우디, UAE에 덜미…원정 경기서 1-2 역전패 톱뉴스 17.09.01.
5018 호주 NSW 전 교육장관 피콜리 의원 정계 은퇴…보궐 선거 3곳으로 늘어 톱뉴스 17.09.01.
5017 호주 쇼튼 당수 “잘못된 역사는 바로 잡아야…” 톱뉴스 17.09.01.
5016 호주 NSW주 카운슬 선거 9월 9일 톱뉴스 17.09.01.
5015 호주 "내 옆자리에는 앉지 마!" 톱뉴스 17.09.01.
5014 호주 연방법원, 아다니 탄광개발 무효 소송 항소심 기각 톱뉴스 17.09.01.
5013 호주 주택문제 전문 정당 창당…급진적 주택난 해소 대책 발표 톱뉴스 17.09.01.
5012 호주 "출산 전후 우울증 챙기자" 호주, 정신건강 검진비 무료로 톱뉴스 17.09.01.
5011 호주 호주 콴타스항공, 시드니-런던 1만7천km 무착륙 비행편 추진 톱뉴스 17.09.01.
5010 호주 호주 부모 10명 중 7명 "스마트폰 때문에 '차'에서도 대화 단절" 톱뉴스 17.09.01.
5009 호주 자동차 번호판이245만 달러….호주 번호판 경매 최고가 톱뉴스 17.09.01.
5008 호주 “주택난, 최소 40년 지속된다” 톱뉴스 17.09.01.
5007 뉴질랜드 해안 절벽 아래서 난파된 후 11시간 만에 구조된 남녀 NZ코리아포.. 17.09.02.
5006 뉴질랜드 5년 이래 주택 가격 상승 속도 가장 느려 NZ코리아포.. 17.09.02.
5005 뉴질랜드 라이벌 갱단 간의 장례식장 싸움에서 총까지 발사했던 갱 단원 NZ코리아포.. 17.09.02.
5004 뉴질랜드 경고!!페이스북 메신저로 받은 비디오 링크 클릭하지 말것 NZ코리아포.. 17.09.02.
5003 호주 호주, “북한의 무모한 도발행위, 강력 규탄”…가능한 모든 조치 촉구 톱뉴스 17.09.04.
5002 호주 북한 수소탄 실험 성공 주장 톱뉴스 17.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