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기후 정책 1).jpg

퀸즐랜드와 NSW 주, 빅토리아 주가 산불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가운데 전직 소방 최고 책임자들로 구성된 ‘Emergency Leaders for Climate Action’이 호주 정계를 향해 기후변화 행동을 촉구했다. 이번 산불 사태로 가옥이 전소된 NSW 주 위탈리바(Wytaliba) 지역의 한 농가에 불탄 트럭이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남아 있다(사진).

 

“극단적 기후 상황, 호주 정치 실패도 하나의 요인이다”

‘기후변화 행동’ 없는 정치권의 실책으로 자연 재해 더욱 커진다는 지적

 

호주의 기후 여건이 보다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다. 약 10여 년 전부터 극심한 가뭄이 반복되는가 하면 예년보다 이른 시기인 9월에 발생한 산불이 가뭄과 이상 고온 현상을 끼고 5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천문학적 피해를 입히는 등 기후변화에 대한 국내 논쟁을 가열시키고 있다.

이미 지난 2007년 연방 총선 당시 호주 유권자들이 새롭게 눈을 돌린 부분은 주요 정당의 기후 관련 정책이었다. 가뭄과 함께 자주 반복되는 산불의 위협에 정치계가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지를 지켜본 것이다.

당시 총선 캠페인에 주력하던 주요 정당들도 유권자들이 기후변화에 눈을 돌렸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 연임을 노리던 자유당의 존 하워드(John Howard) 당시 총리는 탄소배출 거래 계획(emissions trading scheme)에 동의한다고 입장을 선회했으며, 정권 탈환을 노리던 노동당의 케빈 러드(Kevin Rudd) 대표는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 기후변화 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관한 의정서.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되었다)를 비준하고 기후 행동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목표를 설정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당시 호주를 방문했던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씨는 자신의 칼럼을 통해 “비가 그치면 호주 정치는 흥미로워진다”고 꼬집으면서, 기후변화가 어떻게 정책을 바꾸는지를 풍자했다.

 

실제로 유권자들은 ‘흥미로운 것’(유권자 시선을 끄는 정책 공약)이 ‘좋은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나쁜 것’임을 확인했다.

당시 총선에서 러드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의 가뭄 공약은 깨어졌고 보수(자유당)는 분열 양상을 보였으며, 기후변화 행동에 관한 정계의 의견은 계절에 따라 바뀌었다.

거대 광산기업들을 주요 정치 후원 그룹으로 두고 있는 자유당은 하워드의 후임으로 당 대표를 뽑는 경선을 치렀고, 토니 애보트(Tony Abbott)는 라이벌인 말콤 턴불(Malcolm Turnbull)을 한 표 차이로 앞서 당 대표에 선출됐다. 그러자 그는 기후변화에 대한 타협안을 만들었다. 녹색당은 녹색당대로 상원에서 탄소 배출권 거래계획을 거부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행사했다.

이렇게 2007년 총선 이후 한 달 동안 호주 정치계가 기후문제를 놓고 정치적 이득을 저울질했던 당시의 이 행태가 결국 10여년이 지난 지금, 더 큰 재해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계의 행태가 보여준 교훈은 ‘산불이나 가뭄은 (기후변화 정책의) 변화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극심한 자연재해가 10년 주기로 일어난다는 주장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러한 자연재난들은 호주 정치의 반복적인 기후행동 정책 실패에서 기인한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종합(기후 정책 2).jpg

지난해 2월 내셔널 프레스센터에서의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기후변화와 산불 등 재해가 관련성이 있음을 언급한 모리슨 총리. 하지만 그는 현재까지도 기후변화에 대한 보다 강한 발언은 자제하면서 관련 정책 또한 미루고 있다. 사진 : 시드니 모닝 헤럴드 뉴스 동영상 캡쳐

 

지난해 11월14일(목), NSW 전직 소방관들의 요청으로 마련된 시드니의 기자회견 자리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고발과 함께 이에 대한 정부 정책의 시급함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이날 기자들 앞에 나선 21명의 남성, 2명의 여성은 기후변화 행동에 앞장서고 있는 ‘Emergency Leaders for Climate Action’의 핵심 인사들로, 호주 전역의 화재 및 응급 서비스를 주도했던 이들이었다.

이들의 메시지는 ‘현재 호주는 전례 없는 산불 위험에 직면한 새로운 시대’에 처해 있으며, 이는 ‘기후 변화가 상황 악화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 따라서 ‘정부는 더 많은 자원과 정책으로 배기가스를 줄이고 청정에너지 활용을 넓혀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기자회견 다음 날 논평을 통해 호주가 극단적인 자연재해에 직면하는 것이 ‘호주 정치의 반복적인 기후행동 정책 실패’라고 단정하는 것은 산불에 관해 가장 직접적 경험을 가진 이들(Emergency Leaders for Climate Action 핵심 인사들)의 지적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실천적 행동을 촉구, 눈길을 끌었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Fire and Rescue NSW’ 청장을 지낸 그렉 멀린스(Greg Mullins)씨는 “(NSW 중북부에 엄청난 재산 피해를 입힌 산불을 포함해) 올해 산불 시즌은 앞으로도 몇 달 동안 계속될 것”이라며 “(소방 관계자들은)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있기에 그냥 있을 수 없었다”고 자신들이 미디어 앞에 선 이유를 밝혔다.

23명의 전직 소방대원을 대표해 전면에 나선 이들은 멀린스씨를 비롯해 전 ‘Queensland Fire and Emergency Services’ 청장 리 존슨(Lee Johnson), ‘Country Fire Authority Victoria’ 전 소방청장 닐 비비(Neil Bibby), 전 ‘Tasmania Fire Service’ 청장 마이크 브라운(Mike Brown)씨 등이었다. 이들은 “길어진 산불 시즌, 그리고 이미 발생한 산불 진화가 어려운 이유는 기후변화 때문”임을 강조했다.

멀린스씨를 포함, ‘Emergency Leaders for Climate Action’ 인사들은 이 자리에서 연립 여당, 노동당, 녹색당 및 기타 크로스벤처 등 모든 정치계와 함께 ‘기후 비상사태’(climate emergency)를 선포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의 산불 위험은 전례 없는 일로, 기후 과학자, 응급서비스 책임자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이 위험을 경고해 왔다”면서 “산불과 기후변화 사이의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는 보수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고 비난했다.

사실 호주의 자연 재해가 기후변화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왔다. 시드니대학교 자연재해 전문가인 데일 도미니-호우스(Dale Dominey-Howes) 교수는 지난 9월 호주 비영리 학술연구 전문지 ‘The Conversation’에 기후변화와 산불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이 글에서 그는 “비록 산불이 직접적으로 기후변화 때문에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인간 활동에 의한 급속한 온난화가 더 빈번하고 강력한 산불 사태를 불러오고 있으며 또한 그로 인한 위험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호주 과학아카데미’(Australian Academy of Science) 또한 아카데미 소속 자연재해 관련 전문가들의 연구 자료를 요약, “기후변화로 인한 평균 온도 상승은 삼림지대를 건조하게 만들며 간접적인 산불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매년 산불을 피할 수는 없지만 보다 나은 토지관리, 변화하는 기후 및 산불 행동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과거 산불로 인해 발생된 치명적인 인명 손실을 피할 수 있다”고 정리한 바 있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이 논평에서 “이 같은 경고에도 불구, 호주 정치는 이 문제를 회피하는 것으로 일관해 왔다”고 지적했다.

모리슨(Scott Morrison) 총리는 지난해 2월,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의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기후변화와 기상 이변의 연관성을 언급하면서 “물론 그것이 한 요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신문은 지난 10여 년 사이 자유당 내부의 권력투쟁(존 하워드의 퇴임 이후 자유당에서는 세 차례 당권 경쟁이 벌어졌다)을 감안할 때, ‘기후’ 관련 문제는 상당히 위험한 영역이라고 진단한다. 이 때문에 모리슨 총리는 기후문제에 대한 강력한 말을 자제하고 있으며, 나아가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보다 큰 목표 설정을 미룬다는 것이다.

반면 앤서니 알바니스(Anthony Albanese) 노동당 대표의 발언은 보다 적극적이다. 그는 “우리는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면서 “(호주) 과학계는 산불이 더 강력해지고 산불발생 시즌 또한 더 길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당이 관련 정책을 제기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알바니스 대표는 올해 12월에 있을 노동당 전당대회를 기해 탄소배출 목표를 설정할 것으로 보이며 그 세부 사항은 2021년에야 드러날 전망이다.

신문은 현재 기후변화 행동과 관련한 호주 각 정당의 입장을 거론하면서 “정치적 수사(political rhetoric)가 항상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전직 소방 책임자들이 기자 회견을 자청해 호주 정치권에 기후변화 행동을 촉구한) 이번에는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9년 2월 빅토리아 주를 강타한 호주 사상 최악의 산불(발생 5일 만에, 사망 181명 가옥 800채 이상이 전소)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역동성이 살아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어 “실패는 쉽게 반복될 수 있다”면서 관련 정책의 시급함을 적극 강조했다.

 

김지환 객원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 |
  1. 종합(기후 정책 1).jpg (File Size:86.3KB/Download:18)
  2. 종합(기후 정책 2).jpg (File Size:42.6KB/Download:16)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6551 호주 시드니 주택가격, 5월 이후 다시 ‘오름세’ 호주한국신문 14.07.03.
6550 호주 아프가니스탄 파병 호주 군인 사고로 사망 호주한국신문 14.07.03.
6549 호주 비만 및 과체중, “천식 유발과 깊은 관련 있다” 호주한국신문 14.07.03.
6548 호주 베트남 전쟁 난민에서 남부 호주 주 총독 지명자로 호주한국신문 14.07.03.
6547 호주 호주 10대 2명, 중동 지역 반군 세력에 합류 ‘추정’ 호주한국신문 14.07.03.
6546 호주 ACT, ‘호주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역’ 꼽혀 호주한국신문 14.07.03.
6545 호주 연방정부, “가정폭력 가해자, 숨을 곳 없다” 호주한국신문 14.07.03.
6544 호주 호주 최고 부자들은 누구... 호주한국신문 14.07.03.
6543 뉴질랜드 주택구매 능력 하락, 건설승인은 최고치 기록 굿데이뉴질랜.. 14.07.09.
6542 뉴질랜드 경찰 피해 수영으로 강 횡단… 맞은편서 기다리던 경찰에 결국 검거 file 굿데이뉴질랜.. 14.07.09.
6541 호주 시드니, 고층 건물 건축 경쟁에서 멜번에 뒤져 호주한국신문 14.07.11.
6540 호주 “아베는 세계 악의 축”... 한-중 교민들, 항의 시위 호주한국신문 14.07.11.
6539 호주 OKTA 시드니, 오는 8월 차세대 무역스쿨 개최 호주한국신문 14.07.11.
6538 호주 한국대사관, ‘한국음식 소개의 밤’ 마련 호주한국신문 14.07.11.
6537 호주 주택임대 수요 지속,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져 호주한국신문 14.07.11.
6536 호주 ‘One-punch’ 사망 가해자, 검찰 항소심서 추가 실형 호주한국신문 14.07.11.
6535 호주 기차 안서 특정 승객에 폭언 퍼부은 여성 기소돼 호주한국신문 14.07.11.
6534 호주 호주 상위 7명의 부, 173만 가구 자산보다 많아 호주한국신문 14.07.11.
6533 호주 웨스트필드 쇼핑센터 살인사건, ‘삼각관계’서 비롯된 듯 호주한국신문 14.07.11.
6532 호주 NSW 교정서비스, 재소자 ‘자체 생산’ 프로그램 ‘결실’ 호주한국신문 14.07.11.
6531 뉴질랜드 2014 Korean Culture Festival 500여 명 열광의 밤 file 굿데이뉴질랜.. 14.07.11.
6530 뉴질랜드 노동당 총선공약 교육분야에 총력전, 10억불 소요예상 file 굿데이뉴질랜.. 14.07.11.
6529 뉴질랜드 NZ방문-日총리 아베, 집단 자위권 이해 구해 굿데이뉴질랜.. 14.07.11.
6528 뉴질랜드 NZ 우유가격, 캐리 트레이드에 '역풍'될 수도 file 굿데이뉴질랜.. 14.07.11.
6527 뉴질랜드 NZ텔레콤-SK텔레콤, 사물인터넷 MoU 체결 file 굿데이뉴질랜.. 14.07.11.
6526 호주 파라마타 고층 빌딩 건설, 계속 이어져 호주한국신문 14.07.17.
6525 호주 시드니 이너 웨스트 지역 임대료, 크게 치솟아 호주한국신문 14.07.17.
6524 호주 동포 자녀 탁구 꿈나무들, 전국대회서 기량 뽐내 호주한국신문 14.07.17.
6523 호주 상공인연 강흥원 부회장, 17대 회장에 호주한국신문 14.07.17.
6522 호주 김봉현 대사, 호주 정계 인사 면담 호주한국신문 14.07.17.
6521 호주 이스트우드 추석 축제, 오는 9월6일 개최 호주한국신문 14.07.17.
6520 호주 호주-한국 대학 공동 ‘현대 한호 판화전’ 개막 호주한국신문 14.07.17.
6519 호주 한인회, ‘문화예술 전당 및 정원’ 건추위 구성 호주한국신문 14.07.17.
6518 호주 호주 정치인, 노조 관계자도 ‘세월호 특별법’ 청원 동참 호주한국신문 14.07.17.
6517 호주 주택 소유 또는 임대, 어느 쪽이 더 경제적일까 호주한국신문 14.07.17.
6516 호주 육아 전문가들, ‘부모환경 따른 육아 보조금 제한’ 비난 호주한국신문 14.07.17.
6515 호주 호주 수영계의 전설 이안 소프, “나는 동성애자” 호주한국신문 14.07.17.
6514 호주 호주 수영(자유형) 간판 이먼 설리번, 은퇴 발표 호주한국신문 14.07.17.
6513 호주 센트럴 코스트서 ‘위기의 남자’ 구한 영화 같은 장면 호주한국신문 14.07.17.
6512 호주 NSW 스피드 카메라 단속, 1억5천만 달러 벌금 부과 호주한국신문 14.07.17.
6511 호주 자유민주당 레이온젬 상원의원, 동성결혼 법안 발표 호주한국신문 14.07.17.
6510 호주 상습 무면허 운전 남성, 2153년까지 ‘운전 금지’ 호주한국신문 14.07.17.
6509 호주 길거리서 인종차별 폭행, 두 캔버라 주민에 ‘유죄’ 호주한국신문 14.07.17.
6508 호주 호주국적 이슬람 전도사, 테러리스트로 체포 호주한국신문 14.07.17.
6507 호주 시드니 부동산 경매 시장, 2주 연속 낙찰률 ‘순조’ 호주한국신문 14.07.24.
6506 호주 SIFF, 제2회 영화제 앞두고 도심서 ‘Art Market’ 마련 호주한국신문 14.07.24.
6505 호주 ‘독도 알리기’ 5km 단축 마라톤 열린다 호주한국신문 14.07.24.
6504 호주 인문학자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 호주한국신문 14.07.24.
6503 호주 ‘한상대회’ 인적교류,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져 호주한국신문 14.07.24.
6502 호주 ‘월드옥타 시드니’ 차세대 무역스쿨 강사진 구성 호주한국신문 14.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