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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국이 개최한 ‘FIFA Women's Invitational Tournament’에 참가한 Matildas. 호주 여자 축구에 있어 모든 것이 부족했던 당시, ‘1세대 Matildas’인 이들은 강한 팀웍으로 개막전에 나섰고 FIFA 주관의 첫 여자 축구대회에서 첫 골을 만들어냈다. 사진 : William Yang

 

1988년 ‘FIFA Women's Invitational Tournament’ 앞두고 호주 여자 대표팀 구성

축구자원 부족-국제대회 준비 미흡했지만... 개막전서 FIFA 대회 최초 승리-골 기록

 

1991년 시작되어 올해로 9회가 되는 2023 호주-뉴질랜드 FIFA 여자 월드컵이 7월 20일(목) 개막됐다. 이전 대회와 달리 8개국이 늘어 32개 팀이 본선 토너먼트를 거치는 이번 대회에서, 호주는 아일랜드, 나이제리아, 캐나다와 함께 B조에서 2라운드 진출을 다툰다.

호주 여자축구 대표팀은 첫 여자 월드컵이 열린 1991년 대회를 제외하고 올해까지 8회 연속 본선에 진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4강의 성적을 거둔 적은 없다. 다만 올해는 개최국으로 홈 팬을 등에 업고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내겠다는 각오이다.

그렇다면 국제축구연맹의 공식 첫 여자 국제대회는 무엇이었으며, 호주 대표팀인 ‘Matildas’는 언제 정식 구성됐고, 이들의 도전은 어떠했을까.

 

승산은 없었지만...

 

1988년 6월 첫날, 재닌 리딩턴(Janine Riddington)과 캐럴 빈슨(Carol Vinson)은 중국 남동부 광둥(Guangdong)의 장멘 스타디움(Jiangmen Stadium) 중간 라인에서 마주보고 섰다. 무더운 날씨였고 축구경기장의 열기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

호주 여자축구팀 스트라이커였던 두 선수는 에메랄드그린 색상의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뜨거운 햇볕을 흡수하는 짙은 녹색의 천, 하늘을 두껍게 덮은 스모그로 숨을 쉬고,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중국 남동부, 6월의 더위 속에서 호주 선수들은 경기 전 탈의실에서 많은 물을 마셨고 방광이 빠르게 채워지면서 단 한 개뿐인 공용 화장실 문을 번갈아 여닫아야 했다. 그리고 경기장에 섰지만 입술은 금세 바짝 말라갔다.

‘파일럿 여자 월드컵’(pilot Women's World Cup)으로 알려진, ‘FIFA Women's Invitational Tournament’라는 명칭의 이 대회는 FIFA의 공식 첫 국제대회이자 호주 여자축구가 참가한 첫 FIFA 국제 경기였다.

물론 여자축구 국제 경기가 조직된 것은 이 대회가 처음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 사실상의 첫 대회는 이보다 거의 20년 전인 1970년 이탈리아에서 7개국 여자 축구팀이 참가한 ‘Martini & Rossi Cup’ 대회였다.

이듬해인 1971년, 멕시코는 유사한 토너먼트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서 멕시코는 결승에 올라 덴마크와 맞붙었고, 자국의 우승을 기대하며 11만 명의 홈 팬이 아즈테카 스타디움(Azteca Stadium)을 찾았지만 이들은 자국 대표팀의 패배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4년 후(1975년) 홍콩에서는 첫 번째 AFC 여자 아시안컵 축구대회가 열렸다. 호주는 이 토너먼트에 참가했지만 국가 선발전을 통해 대표팀이 만들어진 대신 스쿼드가 거의 단일 클럽으로 구성되어 ‘공식’ 대표팀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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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이전까지 Matildas는 국제간 경기가 거의 없었지만 ‘FIFA Women's Invitational Tournament’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호주 여자 축구가 더욱 성장한 것이다. 사진 : The Grassroots Football Project

   

1980년대에도 대만에서의 ‘Women's World Invitation Tournament’, 이탈리아의 ‘Mundialito’ 등 여자축구 국제대회는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유럽축구연맹 등 지역 협회 차원에서 독립적으로 대회를 조직한 것이기에 축구 최고 기구인 FIFA의 공식 국제대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 1986년 ‘the mother of women's football’이라 불리는 노르웨이 대표단(delegate) 엘렌 윌레(Ellen Wille)가 FIFA를 찾아가 국제축구연맹 차원에서의 여자 축구대회를 만들 것을 요구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제13회 멕시코 월드컵 대회(1986년)가 열리던 그해, 멕시코시티에서 마련된 FIFA 연례회의에서 노르웨이를 대표한 윌레는 100명 이상의 남자축구 관계자들에게 FIFA 주관의 여자 월드컵 필요성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그 시점까지, FIFA 연례회의에 참가한 유일한 여성은 윌레였다. 그리고 그녀는 세계 여자 축구의 방향을 바꾸어놓은 연설을 한 최초의 여성이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인 지난 2019년, 프랑스 여자 월드컵을 기해 프랑스 언론 ‘리베라시옹’(Liberation)과 인터뷰를 가진 윌레는 FIFA 연례회의에서의 연설 당시를 회상하며 “마지막 순간에 나는 스피치의 시작 부분을 바꾸었다. FIFA가 연례보고서를 연설 몇 시간 전에야 우리에게 보냈기 때문이다. 그 보고서에 언급된 여자 축구에 대한 내용은 정말로 반 페이지뿐이었다. 맙소사, 반 페이지뿐이라니. 그 보고서의 99.9%는 남자 전용이었다”라고 말했다.

FIFA 연설 후 윌레는 FIFA가 주관하는 여자 월드컵 대회와 올림픽에서의 여자 축구 종목 채택을 위한 로비를 펼쳤다. 놀랍게도 당시 회의에 있던 대다수 남성들이 그녀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렇게 하여 FIFA가 주관한 첫 국제대회인 ‘1988 FIFA Women's Invitational Tournament’(공식 여자 월드컵을 위한 시범 대회라 할 수 있다)의 토대가 마련됐다. 이 대회는 대만이 개최한 ‘Women's World Invitation Tournament’에 자극받은 중국이 개최를 자원했다.

 

중국에서 열린 FIFA의

첫 여자축구 국제대회

 

1988년 ‘FIFA Women's Invitational Tournament’에 참가한 국가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선정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FIFA 산하 모든 축구연맹 대표들은 대회장에 있었다(호주는 2006년까지 오세아니아연맹에 포함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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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여자 축구팀은 드물게 국제간 경기에 나선 바 있다. 사진은 1975년 홍콩 여자 아시안컵 대회의 한 장면. 싱가포르와의 경기에서 호주팀의 트릭시 태그(Trixie Tagg. 사진 가운데) 선수가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사진 : Trixie Tagg

   

이 대회에 호주의 참가가 결정되면서 여자 대표팀을 이끌게 된 존 도일(John Doyle) 감독은 자신의 스쿼드를 선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호주 내 여자축구 대회장을 찾아다니며 선수들을 가려냈다.

그의 스쿼드에 포함된 선수들은 그때까지 호주 여자 축구에서 가장 강한 면모를 보였던 NSW 주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주전 스트라이커였으며 지금은 50대 후반이 된 리딩턴은 “우리가 파일럿 여자 월드컵 대회에서 호주를 대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매 주말마다 지속적으로 함께 훈련하고 경기를 펼쳤던 동료들과 함께 가게 되어 아주 황홀한 기분(over the moon)이었다”고 말한 그녀는 “당시 선수들 모두는 국가를 대표하여 국제대회에 나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호주는 여자 축구에 대한 인적 자원이 부족했고(얕은 선수층) 국제대회에 대한 대비도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호주여자축구협회(Australian Women's Soccer Association)가 마련한 것은 대회를 앞두고 일주일간 캔버라(Canberra)에서 가진 훈련 캠프가 고작이었다.

게다가 선수들은 국내에서의 이동을 위한 항공료와 개인 장비를 충당하기 위해 선수 1인당 약 850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이는 일부 선수들의 경우 3주치 급여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그런 과정을 거쳐 호주 여자 선수단은 중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대표팀 선수를 태운 버스는 자전거를 탄 인파가 가득한 광둥시의 도로를 기어가듯 이동했고, 선수들은 도시의 하늘을 뒤덮은 누런색 스모그에 짓눌리는 기분을 참아내야 했다. 버스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판잣집들을 지나 숙소로 배정된 호텔에 호주 선수단을 내려주었다.

빈슨(Vinson)의 기억 또한 비슷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기관총을 든 군인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고, 밖으로 나가면 더위와 습도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또한 그녀는 잊지 못할 장면을 회상했다. “아마 The White Swan이라는 이름의 호텔이었을 것이다. 고급 호텔이었다. 하지만 방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정말 끔찍했다. 사방에 판잣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고, 거리에는 음식을 구걸하는 이들이 많았다.”

빈슨은 이어 한 동료 선수와 나누었던 이야기도 끄집어냈다. “중국이 대회를 개최하면서 우리를 초청한 것은 환상적이지만 지금 이 도시의 사람들은 어떤지를 보라. 이런 대회 개최에 소요되는 비용을 자국민을 위해 더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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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Women's Invitational Tournament’에서 공을 잡고 뛰는 모야 도드(Moya Dodd. 왼쪽). 현재 변호사로 일하는 그녀는 1988년 대회에 나가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참가비를 지불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사진 : Moya Dodd

   

국제대회 준비에 미흡했던 호주 축구팀은 가장 무더운 날씨에 열리는 대회임에도 양털 안감이 있는 운동복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또 기타 필요한 키트는 호주 남자 청소년 대표팀에게서 빌렸기에 나중에 돌려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여러 부문에서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당시 선수들은 이 같은 국제대회에 호주를 대표했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또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리딩턴은 “사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FIFA 역사상 첫 경기이자

FIFA 대회 최초의 골

 

이 대회 개막전에서 브라질과 맞붙게 된 호주팀이 느끼는 부담은 그 어느 경기에서보다 컸다. 개막 경기이자 FIFA 최초의 국제 경기라는 점에서 이런 압박감은 브라질 여자 축구 전설이 된 시시(Sissi) 선수도 마찬가지였을 터이다.

호주 주전 스트라이커인 두 선수는 같은 클럽에서 함께 훈련과 경기를 해 왔기에 서로의 플레이 방식에 아주 익숙했고 호흡이 좋았다. 또한 이들은 1980년대 중반, NSW 대표 선수로, 중국 대회 감독으로 선임된 도일(Doyle)의 코치를 받아왔기에 짧은 국제대회 준비에도 불구하고 득점 잠재력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었다.

리딩턴은 “당시 우리는 호주가 약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개막전 상대인 브라질은 남미에서도 최강으로 인정받고 있었기에 호주가 이들을 넘어설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며 “우리가 가진 것은 우리의 팀웍이었고 함께 했던 훈련이었다”고 덧붙였다.

대회 첫 경기였기에 두 팀은 총력전을 펼쳤다. 개막경기에다 강호 브라질의 경기를 보기 위해 대부분의 참가팀이 경기장에 와 있었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리딩턴은 이 대회 이후 35년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며 당시 경기에서의 기억 하나를 거내놓았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 그라운드를 밟으며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보았을 때 불현 듯 호주 쪽에 더 높은 숫자의 불이 켜져 있을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바로 그 순간, 평온함이 느껴졌다. 대개 경기 전에는 상당히 긴장하지만 그 평온함은 내게 있어 섬뜩하게 다가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날, 장멘 스타디움은 개막전을 직접 보려는 중국 관중으로 가득 찼다. 브라질과의 개막 경기가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빈슨은 “Oh my god”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고 회상했다. 그리고는 “하지만 나는 우리 팀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경기를 펼친 경험이 많고 팀웍도 좋았다. 국내 대회를 치르면서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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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과 벌인 개막 경기(사진). 남미 최강으로 꼽히던 브라질은 경기 내내 주도권을 잡고 호주를 압박했지만 Matildas는 이에 주눅 들지 않고 또 승리를 위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 경기에서 호주는 1대0승리를 거두어 대회 첫 승, 대회 첫 골, FIFA 주관 국제대회 첫 승리 및 첫 골이라는 기록을 만들었다. 사진 : Simone Carneiro(Brazilian Football Museum)

   

이어 그녀는 “그때, 함께 뛰었던 선수들은 강력했다. 줄리 돌란(Julie Dolan), 킴 렘브릭(Kim Lembryk), 레이 워델(Leigh Wardell), 애니사 탄(Anissa Tan) 등이 그들이다. 특히 킴 렘브릭이 여전히 뛰고 있다면 그녀는 세계 최고 선수 중 한 명일 것”이라고 말했다.

빈슨에 따르면 당시 호주는 투톱 전술을 사용했다. 최전방에 두 명의 스트라이커를 놓은 것이다. 빈슨은 주로 오른쪽, 리딩턴은 왼쪽에 있었지만 두 선수는 서로를 위해 대각선으로 뛰는 등 수시로 자리를 스위칭 했다. 그리고 빈슨이 공을 잡으면 리딩턴은 보다 전방으로 이동했고, 그녀에게 빠르게 공을 전해주는 것이, 호주가 골을 만들어내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골을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처음 15분 동안 양 팀은 거미줄 같은 수비망을 뚫고자 애를 썼다. 호주팀은 공을 소유하면서 수비라인을 무너뜨릴 틈을 엿보았지만 상대는 빼어난 수비능력에 흠잡을 데 없는 볼 컨트롤로 쉽게 패스하고 위협적인 공간을 자주 만들었다. 힘겹게 이들을 막아내면서 마틸다들은 딱 한 번이라도 역습 찬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고, 또 그런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라 믿었다.

어느 순간, 빈슨이 공을 받고자 오른쪽으로 더 깊이 전진했을 때 그녀는 브라질 수비수가 이전과 다른 위치에 서 있을 것을 보았다. 빈슨은 공을 받은 뒤 한 번 회전하여 볼을 키핑하고는 대각선 방향에서 질주하는 리딩턴에서 찔러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 파트너는 이 공을 놓쳐 골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약 20분 후, 같은 상황이 다시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패스, 속도, 공을 잡을 선수의 이동이 완벽했다. 역습 상황에서 빈슨이 연결한 공을 잡은 리딩턴은 여러 명의 수비수를 달고 중앙선을 돌파했으며, 뒤에서 수비수가 달려오는 압박감을 느끼면서 골대를 향해 공을 날렸다. 국제대회에서 호주 여자축구팀이 첫 골을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는 FIFA 주관의 공식 첫 국제대회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골이었다.

리딩턴은 “빈슨과 나는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골을 만드는 이 방식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본능이었다. 이것이 도일 감독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이라며 당시 순간을 기억했다.

1대0으로 앞서간 이후 호주는 더욱 강렬해진 브라질의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남은 경기 내내(당시 여자 축구팀 경기는 전후반 80분이었다) 호주는 브라질의 공격에 압도당했고 계속하여 슈팅(대부분 유효슈팅)을 허용했다. 마틸다들은 거의 모두가 수비에 가담했다. 후반에 역습 기회가 왔지만 모두가 수비 지역에 있었던 탓에 이를 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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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Women's Invitational Tournament’ 본선 마지막 경기인 노르웨이와의 경기를 앞두고 그라운드에 도열한 양팀 전체 선수들. 이 경기에서 호주는 3대0으로 패했지만 브라질에 이어 태국을 3대0으로 이긴 탓에 2라운드에 진출했다. 사진 : FIFA​ 

 

그러다 센터백 애니사 탄이 호주 골라인에서의 혼전 중 부상을 호소했다. 그녀의 손목을 부러진 상태였고, 탄 선수는 대회 내내 두꺼운 석고 깁스(plaster)를 하고 있어야 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경기장은 환호와 비명, 박수 소리로 가득했다. 리딩턴이 예감했듯 경기 결과를 보여주는 전광판의 숫자는 호주가 1, 브라질이 0이었다.

 

전설이 된 첫 ‘Matildas’

 

이후 호주 여자축구팀은 태국에 3대0 승리를 거두었고, 노르웨이에게는 3대0으로 패했지만 8강에 올랐다. 2라운드에서 만난 상대는 개최국 중국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중국은 미국과 함께 전 세계 여자 축구의 양대 강국으로 꼽히고 있었다. 이들은 공산당 정부와 자국 축구연맹(실질적으로는 공산당의 감독을 받는)의 지원을 받아 풀타임 선수처럼 훈련을 했고, 그 실력을 뽐냈다.

중국과의 8강 경기는 광저우(Guangzhou)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호주는 이전 경기 이틀 만에 8강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호주팀은 광둥에서 광저우로 이동해야 했고, 휴식을 취하지 못해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으며, 무더운 날씨는 선수들의 컨디션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또한 도일 감독은 중국전 전날, 이전의 포메이션을 재조정했다. 두 명의 스위퍼(sweeper)를 두어 수비를 강화하려 한 것이었다. 이는 전적으로 최후방을 지키는 선수로 핵심 풀백을 두는 4-2-4 포메이션의 한 유형으로, 보다 견고한 수비블록을 만들고 최전방의 두 공격수가 공격 라인을 이끌어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호주의 이 같은 전략을 무색하게 무려 7골을 만들어냈다. 7대0 패배였다.

당시 경기에 대해 리딩턴은 “우리는 완전히 압도당했다”고 말했다. 또 빈슨은 “그들(중국)은 믿을 수 없는 공격을 선보였고 우리는 짓밟힐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빈슨은 특히 중국의 공격력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한 번의 패스로 공을 한쪽에서 대각선의 반대편으로 연결했고 수비 진영에서 공을 잡으면 몇 초 안에 공격 지점을 바꾸었다. 우리의 경기 방식은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대회가 열릴 무렵, 중국은 ‘축구’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전 세계에 문호를 열어가던 시점이어서 ‘Women's Invitational Tournament’는 정치적으로 특히 중요했다. 그 만큼 선수들의 실력 향상에 주력했던 것이다.

4강에 오른 중국은 비록 브라질과의 3위 결정전에서 패했지만 이 대회의 성공적 개최로 3년 뒤 시작된 첫 FIFA 여자 월드컵 개최권을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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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파일럿 여자 월드컵’에서 주전 스트라이커로 뛰었던 호주 대표팀의 재닌 리딩턴(Janine Riddington)은 올해 호주-뉴질랜드 대회에 대해 "오늘날 호주 여자 축구의 토대를 마련한 당시의 팀과 선수들을 기억하게 하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올해 여자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승리한 뒤 응원해 준 팬들에게 인사를 전하는 호주 여자 대표팀(‘Matildas’) 선수들. 사진 : matildas.com.au

   

이후 중국은 계속 여자 월드컵 본선에 올랐고, 1999년 미국에서 개최된 세 번째 대회에서는 결승에서 미국과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슬아슬하게 패했다. 당시 결승전이 열린 로스앤젤레스 로즈볼 스타디움(Rose Bowl Stadium)에는 무려 9만 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메웠다. 이는 여자 축구 대회 최다 관중(90,185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경기에서는 또한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 장면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미국 수비수 브랜디 채스테인(Brandi Chastain)이 승리를 결정짓는 승부차기를 성공시킨 뒤 보여준 세레머니가 그것이다. 채스테인은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시켜 대회 우승을 확정한 뒤 남자 선수들이 종종 하던 것처럼 유니폼 상의를 벗어 머리 위로 흔들며 상체 근육과 스포츠 브라를 노출, 그 자체만으로도 유명 인사가 됐다.

리딩턴과 빈슨은 중국 대회에서의 사진, 프로그램, 대회 장식품 등 기념으로 간직한 몇 가지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은 감독 몰래 훔쳐낸(?) 유니폼이다.

그것은 호주 여자 축구뿐 아니라 전 세계 여자 축구에서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낸, 그들이 갖고 있는 최소한의 명예일 것이다.

전 세계 축구 피크 기구인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의 최초 여자 축구 국제대회에서 첫 득점을 기록한 리딩턴에게 있어 2023년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 대회는 오늘날 호주 여자 축구의 토대를 마련한 당시의 팀과 선수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녀는 “It's something that was the first of its kind, you know?”라고 강조했다. 호주 여자 축구의 첫 시작이라는 얘기다. 중국에서의 첫 토너먼트 이후 긴 시간이 지난 뒤 ‘유투브’(youtube.com)라는 플랫폼이 만들어지면서 당시 첫 마탈다들의 경기 장면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리딩턴은 “직장 동료들이 그때 영상을 보고는 ‘뭐야? 너희들 정말로 대단했어’라는 말을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녀는 “하지만 그것은 나에 관한 것이 아니고 또 개인적 성취도 아니다. 나는 팀 스포츠를 한 것이다. 개개인이 팀 내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만 결과는 팀 전체의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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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9 호주 7월 호주 실업률 3.7%... 일자리 14,600개 실종-실업자 3,600명 늘어나 file 호주한국신문 23.08.25.
6528 호주 CB 카운슬, 예술가-지역 청소년들이 만들어가는 ‘거리 예술’ 추진 file 호주한국신문 23.08.25.
6527 호주 호주 여자축구, 사상 첫 월드컵 4강에 만족해야... 결승 진출 좌절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7.
6526 호주 호주 각 대학에서의 ‘표현의 자유’ 위협, 2016년 이후 두 배 이상 증가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7.
6525 호주 시드니 시, 헤이마켓에 한국-중국 등 아시아 문화 및 음식거리 조성 방침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7.
6524 호주 인플레이션 수치, 호주 중앙은행 목표인 2~3% 대로 돌아오고 있지만...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7.
6523 호주 NSW 주 정부, 신규 주택 위해 시드니 11개 교외 공공부지 재조정 알려져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7.
6522 호주 수천 명의 소셜미디어 이용자들, 온라인상에서 각 지역의 잊혀진 역사 공유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7.
6521 호주 호주 전역 대도시 주택가격 오름세 보이지만... 상승 속도는 더디게 이어져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7.
6520 호주 라이프스타일-대도시보다 저렴한 주택가격이 ‘지방 지역 이주’의 주요 요인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7.
6519 호주 CB 카운슬, ‘War on Waste’ 관련 무료 워크숍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7.
6518 호주 그림을 통해 보여주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의 양면성은...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7.
6517 호주 생활비 압박 속 ‘생계유지’ 위한 고군분투... ‘multiple jobs’ 호주인 ‘급증’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0.
6516 호주 대학 내 만연된 성폭력 관련 ‘Change The Course’ 보고서 6년이 지났지만...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0.
6515 호주 획기적 AI 혁명, “수용하거나 뒤처지거나”... 전문가-학계-기업 관계자들 진단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0.
6514 호주 No dance, No gum, No 방귀! 10 of the silliest laws around the world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0.
6513 호주 공실 늘어가는 시드니 도심의 사무 공간, 주거용으로 전환 가능할까...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0.
6512 호주 일단의 정신건강 전문가들, 장기간의 실직과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 확인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0.
6511 호주 시드니 부동산 시장 회복세 ‘뚜렷’, 주택가격 치솟은 교외지역은 어디?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0.
6510 호주 “NSW 주 ‘유료도로 이용료 감면’ 대신 ‘바우처’ 도입해 통행량 줄여야”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0.
6509 호주 NSW 전역 캥거루 개체 크게 증가... 과학자들, 생물다양성 문제 경고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0.
6508 호주 “뜨개질 그룹에서 치매-손 떨림 예방하고 새 친구들도 만나보세요” file 호주한국신문 23.08.10.
6507 호주 2022-23년도 ‘금융’ 부문 옴부즈맨에 접수된 소비자 불만, 9만7천 건 file 호주한국신문 23.08.03.
6506 호주 ‘메트로 웨스트’ 기차라인 건설 지연, NSW 주택건설 계획도 ‘차질’ 위험 file 호주한국신문 23.08.03.
6505 호주 올해 상반기 전국 주택가격 2.3% 상승... 일부 교외지역 성장세 두드러져 file 호주한국신문 23.08.03.
6504 호주 호주에서 가장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은 누구...? 노년층 아닌 중년의 남성들 file 호주한국신문 23.08.03.
6503 호주 새로운 계열의 알츠하이머 치료제, 초기 단계 환자에 ‘효과 가능성’ 보여 file 호주한국신문 23.08.03.
6502 호주 올해 6월까지 12개월 사이, 광역시드니의 임대료 최다 상승 교외지역은... file 호주한국신문 23.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