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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북한을 탈출한 박은희씨. 한국에 정착한 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현재 멜번(Melbourne)에서 지내고 있는 그녀가 호주 현지 미디어를 통해 북한을 빠져나오기까지의 힘겨웠던 상황, 현재의 삶과 북한에서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털어놓았다. 박씨는 “때때로 북한에 대한 오해와 폐쇄적인 태도를 가진 호주인들을 볼 때마다 좌절감에 빠지고 화가 나기도 한다”며 호주 언론과의 인터뷰 결정 이유를 밝혔다.

 

멜번서 ‘워홀’ 보내는 박은희씨의 탈북기... 죽음 무릎 쓰고 국경 넘어

 

미사일 시험 발사, 핵실험 등 김정은의 도발이 호주 미디어를 장식하는 가운데 20대 초반 북한을 탈출해 비로소 “사람답게 살게 됐다”는 박은희(26세)씨의 이야기가 지난주 토요일(4일) 시드니 모닝 헤럴드를 통해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호주’라는 나라조차 들어본 적 없었다는 그녀는 북한을 빠져나온 수많은 탈북인 중 한 명으로, 현재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통해 멜번에 체류하고 있다.

박씨는 “억압적인 공산주의 국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 기분”이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박씨가 자라온 북한 북부 해안의 원산은 장작을 주 연료로 사용하는 탓에 산에는 나무가 거의 없으나, 자동차가 많지 않아 대기는 깨끗한 마을이다. 김정은 정권 아래 이 지역은 북한의 공식 관광지로 지정되기도 했으며, 또한 미사일 발사 시험이 진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박씨는 “호주와 북한의 가장 큰 차이는 자연환경이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의 생일은 몰라도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생일은 기억한다”며 “북한에는 인터넷이나 정보가 없고 모든 것이 이 지도자들로 가득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김일성과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울었고, 북한 사람들의 절반이 김일성 주체사상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박씨는 “이제 북한에서 배운 대부분의 것을 믿지 않는다”며 자신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설명했다.

18살이 된 해 박씨는 “자유를 누리고 사람답게 살고 싶으면 이 나라를 떠나라”는 할머니의 말씀에 따라 탈북을 결심했다. 박씨에 따르면 그녀의 조부모는 중국에 있는 친척을 방문하기도 해 다른 북한 주민들보다 열린 시야를 갖고 있었으며, 북한의 폐쇄된 사회를 벗어나 다른 세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암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미국, 한국영화를 구입해 시청하기도 했다.

탈북을 결심한 그녀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가족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4년 후 22살이 되던 해 밀수업자들과 연락하며 국경을 넘기 위한 계획에 착수했다. 그녀는 “탈출하다 죽어도, 북한 경찰에 붙잡혀 죽임을 당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다른 나라로 가야 한다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느날 밤, 박씨는 중국과 국경을 마주한 압록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녀와 어린 아기 한 명을 포함, 4명이 함께 어깨까지 차오르는 강물을 가로질렀다. “중간에 아기가 울기 시작해 군인들이 이 소리를 듣고 총을 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중국에 입국한 후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7일간은 택시와 트럭을 타거나 걸어서 어딘가로 향해 무작정 가야만 했다. 트럭 안에는 사람을 숨겨놓는 장소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곳에서 그녀는 성희롱을 당하기도 했다.

“세 명의 남자들이 다가와서 몸을 만지기 시작했는데, 경찰이 우리를 붙잡아 북한으로 돌려보낼까봐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며 당시 끔찍했던 상황을 전했다.

미국 북한인권단체 ‘링크’(Liberty in North Korea, LiNK)의 박석일 정책연구국장에 따르면 탈북자의 70%는 여성이다. 그는 “북한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가정주부로 전락한 여성들은 불법 암거래를 통해 돈을 버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여성들이 밀수업자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탈북을 계획하는 데 있어 좋은 기회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일부 중국 남성들이 북한 여성들을 사는 경우도 있다. 탈북자 중 여성이 많은 또 다른 이유이다.

“일부 여성들은 탈북을 위해 중국 남성과의 결혼을 선택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박씨의 탈북기는 중국에서의 여정에 그치지 않았다. 라오스로 건너가 태국으로 이어지는 비밀 산길을 걷기도 했다. 그러던 중 여권이 없어 난민 자격증을 받으려고 기다리다가 감옥에 수감되어 실제 범죄자들과 함께 지내기도 했다.

그녀는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 탈북이 올바른 결정이었는지 스스로 되묻기도 하고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며 끔찍했던 기억에 몸서리 쳤다.

50일이 지나 비로소 박씨는 한국정부 구금소에 보내졌고, 그곳에서 3개월을 살았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그녀가 스파이인지를 가려내기 위해 북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등을 세세하게 조사했다.

스파이가 아니라는 것이 판명된 후 6개월 동안 탈북자 교육이 진행됐다. 그곳에서 박씨는 한국 역사 및 컴퓨터 사용 방법, 한국의 미국화와 이에 따른 콩글리시(Kongllish, 잘못된 한국식 영어) 등을 배웠다. 정부의 탈북민 프로그램을 마친 후 그녀는 비로소 한국땅에서 자유를 찾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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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한인권단체 ‘링크’(LiNK)의 박석일 정책연구국장. 그는 “탈북자의 70%를 차지하는 여성들은 지하시장을 통해 돈을 벌고 밀수업자들과의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탈북을 계획한다”고 전했다.

 

현재 박씨는 멜번(Melbourne)의 한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에 있을 당시 “커피를 주문하는 방법조차 몰랐다”는 그녀는 마끼아또와 카푸치노가 무엇인지를 배우며 “모든 것이 새로워 기억하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미국을 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국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고, 스무 살이 넘어 처음 먹어보는 서양 음식과 소고기 등에 익숙해지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때때로 북한에 대한 오해와 폐쇄적인 태도를 가진 호주인들을 볼 때마다 좌절감에 빠지고 화가 나기도 한다”며 페어팩스 미디어(Fairfax Media)와 인터뷰를 하게 된 이유를 전했다.

그녀에 따르면, 북한에는 가난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 및 부유한 사람들도 존재한다.

“인터넷도 없고 다른 국가에 대한 정보도 없지만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며 북한 상황을 언급한 그녀는 “가족들과 연락하고 돈을 보낼 수 있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 중국 모바일폰을 사용해 친가족과 연락하고 이를 통해 북한 주민들은 정보를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탈북 후 지금까지, 3년 전에 할머니와 통화한 것이 전부다. “할머니는 계속 울기만 했어요. 저도 함께 울었죠. 제가 말을 했는데 억양이 변해서 할머니가 잘 못 알아 들었어요.”

“꿈에 종종 할머니가 나온다”는 그녀는 “20년 간 키워주신 것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북한에 계시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그녀는 호주에서 지내며 자신의 삶을 불평하는 이들에게 “자유와 가족이 있는 호주인들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과 다름없다”며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북한 주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생각해보라. 그러면 현재의 자기 삶에 더 만족하게 되고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마지막 말을 전했다.

박 정책연구국장은 “탈북민들은 북한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의 원천”이라며 “탈북민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돕겠다”고 전했다.

호주 이민부(Department of Immigration and Border Protection)에 따르면 북한을 탈출한 이들의 호주 입국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현재 매년 5명가량의 탈북민이 영주비자를 취득하고 있으며, 다섯 명 정도가 관광비자를 통해 호주에 입국하고 있다.

 

김진연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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