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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214일 동안 재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민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호주인의 삶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한 군주이자 공인이었다. 사진 : ABC 방송 뉴스 화면 캡쳐

 

“재임 70년간 호주가 변화한 모든 방식 상기시키며, 그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영국과 연 연방에 막강한 통치력을 발휘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했다. 70년 214일간의 재임 기간을 감안하면 대부분 호주인의 삶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한 군주이자 공인이었다.

특정 지도자의 장수(또는 장기 통치)는 필연적으로 세대와 계층간 의식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여왕의 70년 재임은, 그녀가 진실로 누구이며 여왕이 대표하는 이미지가 영국과 호주는 물론 여왕을 군주로 하는 국가들에서 세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게 됨을 의미한다.

여왕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유사한 삶에 대한 감정이 있었고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다. 이런 것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트라우마였다. 이후 여러 세대 동안 그들은 서로 다른 시간의 조각을 통해 여왕을 보았고, 서로 다른 프리즘을 통해 관찰했다.

호주에서는, 여왕과 관련하여 아마도 가장 큰 세대차이는 공개 행사나 콘서트, 심지어 영화관에서 ‘God Save Queen’(호주 국가가 제정되기 전 사용)을 부르기 위해 서 있어야 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후의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의 서로 다른 인식일 것이다.

상상해 보라. 모든 중요한 행사, 그 삶의 순간에 군주가 있었다. ‘누가 우리를 다스리는지’를 끊임없이 상기하도록 하는 것, 그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의도를 가진 군주이며 심지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있었을 터이지만, 아마도, 엄밀히 말해 다른 국가의 왕을 기리고자 다른 나라의 국가(national anthem)를 부르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74년 ‘Advance Australia Fair’라는 노래를 호주 국가로 채택했을 때 모든 것이 바뀌었다. 우선 국가(national anthem)로 모든 것을 시작하는 관행을 중단했다. 그리고 호주는 호주를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Advance Australia Fair’의 가사처럼 ‘우리가 얼마나 행운의 땅에 사는지’를 생각하면서.

지난 9월 8일(영국 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가 공식 발표된 후 ABC 방송의 정치부 선임 기자인 로라 팅글(Laura Tingle)씨는 관련 칼럼을 통해 70년 넘는 여왕의 장기 재임(사실상 호주의 현대사 대부분 기간)과 그녀의 사망이 호주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분석, 눈길을 끌었다.

 

“왕실 입장에서 호주는

작은 지역이었을 뿐”

 

호주의 국가(national anthem)가 만들어진 것은 군주의 통치를 받는 호주인들의 일상적 경험에서 하나의 획기적 전환점이 되었다.

이는 호주 국가 원수로서의 여왕의 역할에 대한 정치적, 헌법적 현실과 큰 관련은 없었다. 하지만 이는 영국다움(perceptions of Britishness)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계급과 지위에 대한 어느 정도의 경외심, 존경심 측면에서도 호주사회의 중요한 변화를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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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과 관련하여 호주인들 사이의 가장 큰 세대차이는 호주 국가(national anthem)가 제정되기 전, ‘God Save Queen’을 제창했던 이들, 그리고 지금의 호주 국가인 ‘Advance Australia Fair’를 부른 사람들 사이의 서로 다른 인식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진은 1954년 3월 9일 브리즈번(Brisbane)에 도착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공(Prince Philip). 사진 : National Library of Australia

   

최소한 그때까지 여왕은 대부분의 평범한 호주인들에게는 ‘완전히 다르고 도달할 수 없는 세계의 어떤 것, 그리고 누군가’로 묘사됐다. 이는 왕실의 소소한 일들이 가십 잡지의 먹이가 되기 전이었고, 고프 휘틀럼(Gough Whitlam. 호주 제21대 총리. 1972년 12월~1975년 11월 재임) 총리의 해임(여왕을 대신한 호주 총독에 의해)에서 볼 수 있듯, 실제로 영국 군주가 여전히 우리(호주)의 입헌 제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날카로운 초점을 두기 이전의 일이다.

그런 점에서 호주는 (영국 군주 입장에서) 작은 지역(?)일 뿐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제국(the British Empire)의 아웃라이어(outlier), 영외 지역으로 느껴졌다.

앤서니 알바니스(Anthony Albanese) 총리는 1954년(왕위에 오른 지 2년 후) 이루어진 여왕의 첫 호주 방문이 “호주 역사상 가장 큰 단일 행사였으며 우리 국가 역사상 결정적인 순간으로 남아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당시 호주 인구의 70%에 해당하는 700만 명의 국민이 도로를 지나는 젊은 여왕을 보고자 운집했다”고 말했다.

총리의 표현은, 사실 그 당시 호주가 (영국 입장에서) 얼마나 다른 곳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이자 신호이기도 하다.

 

키팅 총리의 발모랄 방문,

‘공화제’ 반응은 호의적

 

여왕의 집권 시절, 호주인들은 영국 여권을 갖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여성 잡지의 왕실 및 왕족에 관한 기사에는 킬트(kilts)나 키아라(tiaras)를 입은 왕실 가족의 건전한 사진만 게재됐었다. 가령 경마장에서 여왕이 아주 흥미로워하는 것 같은 이미지, 즉 여왕도 평범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장면이 커다란 뉴스거리였던 때가 있었다.

여왕의 장수(longevity), 장기간의 재임은, 호주의 젊은 총리 폴 키팅(Paul Keating. 호주 제24대 총리. 1991년 12월~1996년 3월 재임)이 스코틀랜드의 발모랄(Balmoral)로 여왕을 찾아가 호주의 공화제 추진 의도를 밝혔던 게 벌써 30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충격적인 정도이다. 당시 ‘플리트 스트리트’(Fleet Street. 과거 많은 신문사들이 있었던 런던 중심부, 오늘날 런던 신문 업계를 일컫는 용어로도 사용) 기자들은 키팅 총리를 ‘오즈의 도마뱀’(the Lizard of Oz)이라 부르며 발모랄까지 총리를 쫓아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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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기간 중의 런던 거리 곳곳에 장식된 여왕의 이미지(사진). 여왕은 오래 전부터 호주의 공화제 전환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ABC 방송 뉴스 화면 캡쳐

   

당시 여왕의 반응은 ‘호주가 스스로의 진로를 정할 것이며, 또 그래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호의적이었다’고 보도됐다.

공화국에 대한 논의는 국가 원수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과는 다르다. 1993년 발모랄을 방문했던 키팅 전 총리는 여왕 서거 소식이 전해진 뒤 “20세기에 자아는 사유화되고 공공 영역, 공익 부문은 광범위하게 무시되었다”면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 점을 이해했고 사적 이익과 사적 보상의 감정적 해일(tidal wave)이라고 인식한 것에 맞서 본능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집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왕은 평생 그렇게 했고 절대로 이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로 여왕을 추모했다.

 

대개의 호주인들,

“여왕과 함께 행복했었다”

 

호주인들은, 1954년 첫 방문에서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은 젊은 군주로서의 여왕을, 그리고 2011년 국회의사당 그레이트 홀(Great Hall of Parliament House)에서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애정이 느껴지는 노부인으로서의 여왕을 만났다(그 사이 여러 차례 방문이 있었다).

그 긴 시간 사이, 한때는 유사하게 상징적 지위를 가졌던 많은 인물(교회 수장, 총독 등)들이 공적 자리에서 물러났다. 존 하워드(John Howard)를 필두로 하는 호주 총리들은 한때 국가 원수 영역이었던 일종의 의식 및 지도적 역할을 점점 더 많이, 스스로 하게 되었다.

물론 70년 사이, 그 외에도 호주에서는 많은 것이 변했다.

1954년, 첫 호주 방문에서 시드니에 도착한 여왕은 “드디어 호주 땅, 국가 시작점인 이 자리(Farm Cove, Sydney)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되어 얼마나 행복한지 말해주고 싶습니다”(standing at last on Australian soil, on this spot that is the birthplace of the nation [Farm Cove, Sydney], I want to tell you all how happy I am to be amongst you)라고 말했다.

여왕의 이 발언은 ‘Terra Nullius’(주인이 없는 땅, Nobody's territory)에 대한 지배적인 법 견해뿐 아니라 그 위에 세워진 국가 상태, 즉 호주에 도착한 첫 죄수호송선 제1함대(First Fleet)와 함께 국가가 시작(1월 26일)되었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물론, 오늘날 이는 가장 논쟁의 여지가 많은 역사(이미 6만 년 전부터 호주에는 지금의 원주민 조상들이 거주해 왔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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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방송 정치부 선임 기자인 로라 팅글(Laura Tingle)씨는 관련 칼럼을 통해 여왕의 죽음으로 호주인의 삶에 있어 달라질 것은 없을 터이지만 지난 70년 사이 호주가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또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런지를 생각하게 한다고 진단했다. 사진은 지난 1992년 캔버라 국회의사당을 찾아 방명록에 서명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사진 : National Archives of Australia

   

팅글 기자는 호주 입장에서의 여왕의 통치, 연관성 및 호주인의 인식을 설명하면서 또한 “지금 세계가 그 어떤 프로토콜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상황에서 여왕의 죽음, 왕세자 찰스의 왕위 계승 등을 둘러싼 시간표, 관련 발언들이 얼마나 고풍스러운지 상기시키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팅글 기자의 말처럼 호주는 여왕의 서거와 함께 연방의회 일정을 갑작스럽게 취소했으며(알바니스 총리는 이 취소된 일정을 보충할 것임을 밝혔다), 지금 순간(여왕의 서거)을 호주가 어떻게 추모할 것인지에 대한 2주간의 상세한 계획이 나오기도 했다.

이어 팅글 기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죽음으로 호주인의 삶이 달라질 것은 없을 터이지만 지난 70년 사이 호주가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또 앞으로 얼마나 더 변하고자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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