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김중산 칼럼니스트

 

 

지난 2일 터키인 약혼녀와의 결혼에 관한 서류를 떼기 위해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 들어갔다가 미리 기다리고 있던 요원들에 의해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다 참수(斬首) 당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60) 사건의 끔찍한 정황이 속속 언론을 통해 밝혀지면서 전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터키 정부는 사우디 최고위층의 지시를 받은 요원들이 눈엣가시 같은 반체제 언론인 카슈끄지를 토막 살해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우디 정부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Jamal Ahmad Khashoggi.jpg

Jamal Ahmad Khashoggi  www.en.wikipedia.org

 

 

언론 보도에 의하면 요원들이 카슈끄지의 손가락을 여러 개 절단했고, 고문을 시작한지 7분 만에 참수했다고 한다. 그들 중 사우디 내무부 법의학자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카슈끄지의 시신을 훼손했다니 21세기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어떻게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반문명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 애국지사들의 투쟁상을 담은 영화 ‘밀정’에, 일본 경찰에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당하는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원의 손 마디가 하나씩 잘려나가는 순간 고통을 못 이겨 단장의 비명을 지르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혹한 장면과 카슈끄지의 비참했을 최후의 순간이 오버랩되어 현기증을 느끼면서 컴퓨터 키보드를 누르는 나의 손끝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 잠시 글쓰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카슈끄지 사건은 우리의 흑역사를 소환한다. 김형욱 실종 사건을 말함이다. 두 사건은 공권력이 개입됐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알다시피 김형욱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미국에 망명 중인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을 파리로 유인 납치해 살해한 엽기적인 사건이다. 권력에서 밀려난 김형욱이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는 등 박정희 정권에 비수(匕首)를 겨누자 중정 요원들이 그를 파리로 꾀어내어 납치한 후 마취가 된 채 대한항공 화물칸에 실려 운반되어 청와대 지하실로 끌려간 김형욱을 박정희가 직접 사살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아직까지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각설하고, 카슈끄지 사건과 관련해 지금 지구촌은 온통 세계 ‘인권 전도사’를 자처하는 미국의 대응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평소 언론 자유와 인권을 유난히 강조해온 미국인만큼 이번 사건에 어떻게 반응할지 전세계가 비상한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박정희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 사건에 사우디 정부가 개입한 정황이 확실한 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강조하면서도 “두고 보자”고 얼버무리며 사우디를 비호해 빈축을 사고 있다.

 

사우디는 아랍권 국가들 중 가장 친미적인 국가로 한국과 함께 미국산 무기 최대 수입국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번 사건으로 지난해 사우디와 체결한 1,150억달러(약 130조원) 규모의 무기 거래 계약이 취소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란 제재에도 사우디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보니 트럼프가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아무튼 이번 일을 계기로 ‘야누스의 얼굴’을 한 미국의 추악한 민낯이 또다시 가감 없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사우디는 이슬람 근본주의 왕정국가로 가혹한 언론 탄압과 인권 유린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항상 사우디 정부의 폭정을 눈감아 줬다.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들이 피살 또는 실종되고, 특히 여성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극심한 차별 등 사우디 국민들의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는데 대해선 애써 침묵하는 미국이 북한 인권 타령을 하는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으로 국제적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이라크의 석유자원을 노략질하기 위해 대량살상무기가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있는 것처럼 날조해 쳐들어가 사담 후세인을 처형하고 수백 만 명의 무고한 국민들을 살상한 천인공노할 반인륜적 만행을 저지른 미국이 과연 북한 등 멀쩡한 남의 나라 인권을 거론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사람 목숨보다 더 소중한 인권은 없다.

 

 

(필자 주) 사우디 정부는 카슈끄지 사망 사건이 발생한지 2주가 지난 18일 밤에야 국영TV를 통해 성명을 내고 카슈끄지가 살해된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 사우디 당국은 성명에서 “카슈끄지가 영사관 내에서 만난 사람들과 논쟁을 하다 ‘주먹다짐(fist fight)’ 후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의 죽음을 규명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들어 한 달 내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는 보나마나 불문가지일 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중산의 LA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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