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정용섭 목사(샘터교회) = 한쪽에서는 기독교 신앙과 정치는 아무 상관없는 실재로 간주하는 반면에 다른 한쪽에서는 매우 긴밀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 아주 간략이 구분해서, 전자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수적이라고 한다면 후자에 속한 사람들은 진보적이라고 구분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거나 다른 한쪽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서로의 관점이 서로 다르기도 하지만 각각의 주장이 성서나 기독교 역사에서 그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빌라도 앞에서 심문 당하시던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 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요 18:36).

예수님은 정치질서나 경제질서에 의해서 작동되는 국가를 세우시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것과 전혀 다른 나라를 선포하셨을 뿐이라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오늘도 교회는 공연히 정치 세력과 경쟁할 필요는 전혀 없다.

반드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인간이 성취한 정치제도를 통해서 인간 구원이 가능하지 않다는 이 세상의 이치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신앙과 정치의 다른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힘을 그런 정치 문제에 소진시킬 게 아니라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에 기울여야한다는 대답이 나온다.

반면에 우리는 기독교 신앙이 정치의 영역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주장을 부정할 수 없다. 사회, 국제 정치적 주제를 예언의 대상으로 삼은 구약의 예언자들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곧 로마의 정치법에 의한 결과였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정치적 성격을 배제하면 안 된다.

예수님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획득하려는 목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세력이 예수님을 그런 위협으로 판단했다는 것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정치적 성격이 비록 은폐의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내재해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또한 로마의 일부 황제들이 초기 기독교인들을 그렇게 잔인한 방식으로 다룬 이유는 그들의 신앙을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에 위협적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에 미묘한 긴장이 있다. 명시적으로는 전혀 정치적 의도가 없었던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마찬가지로 오직 예수님의 재림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그렇게 신경질적이고 야만적인 정치적 반발을 불러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문제를 충분히 해명하려면 신학석사 학위 논문 정도는 써야하겠지만, 여기는 그 단초만 간단히 제시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기독교 신앙은 형식적으로는 전혀 정치적이지 않지만 내면적으로는 철저하게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바로 그 대답이다.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정치 질서를 통해서 완성되지 못하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정치 질서를 철저하게 상대화한다. 그래서 정치는 그런 기독교 신앙의 태도를 용납하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우리에게 실현될 수 있는 그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 땅의 정치와 경제 질서를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것을 절대화하는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기독교 신앙의 토대인 하나님 나라는 배타적인 성격이 있다. 즉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이르렀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되거나 획득되는 게 아니라 오직 ‘회개’만으로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철저하게 배타적이다. 이런 주장은 율법을 통해서 어떤 것을 성취해온 사람들인 바리새인들에게는 매우 불만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것이 졸지에 상대적인 것으로 떨어져버리는 이 모욕을 참을 수 없었던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모함하고 죽게 했다. 이 사람은 신성모독자라고.

하나님 나라의 절대성, 또는 배타성은 기독교 역사에서 세 가지 현상으로 나타났다. 물론 세세한 갈래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수없이 많겠지만 크게 보아서 그렇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를 완전히 이원론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초월적인 관점에서만 받아들임으로써 이 세상의 정치, 경제와 단절한 채 살아갔다.

둘째는 4세기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가 된 이후 나타난 현상으로서 형식적으로는 교회를 정치와 구별하면서도 실제로는 매우 밀접하게 연결시켰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신앙과 정치는 서로 침범할 수 없는 다른 질서로서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셋째는 기독교 신앙을 정치 질서보다 우위에 두는 입장이다. 주로 칼빈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이 세속질서를 철저하게 교회 질서 안에 편입시키려고 했다.

이 글에서 명시적으로 정치적이지 않은 기독교 신앙이 정치 세력을 불안하게 만드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는데, 다음 기회로 미루자.

다만 우리는 정치적이지 않은 형식과 정치적인 내용 사이의 긴장을 허투루 허물어 버리지 말고 지속시켜나가야만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해두자. 그 긴장이 유지되지 못할 때 교회는 한편으로는 어용종교가 되든지 아니면 역사 낙관론적 혁명주의가 될 수 있다.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는 어용종교의 위험성이 훨씬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 |
  1. index.jpg (File Size:6.8KB/Download:20)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 여름방학 준비 지금 해야 한다

      [교육칼럼] 2, 3월에 마감되는 프로그램 많아 (워싱턴디시=코리아위클리) 엔젤라 김(교육가) = 여름 방학 준비를 벌써 하냐구요? 2,3월에 마감되는 많은 기회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잘 생각하고 준비하실 수 있도록 미리 말씀드립니다.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내는지...

  • 코로나19 정부대응 헐뜯기 일관하는 한국언론

      [시류청론] 재난에 공동 대응하고 사실 보도하는 외신 배워야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코로나19가 미국, 유럽 등 전 세계로 번지자, 세계 언론은 비상시국을 돕는 차원에서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한 냉철한 분석을 통해 근거 없는 공포심을 막고 필...

    코로나19 정부대응 헐뜯기 일관하는 한국언론
  • 남편과 아내는 서로 보완자임을 인식해야

    경쟁자가 아닌 자금심을 북돋우어 주는 관계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유니버시티 교수) =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이 시시하게 보이면 우월의식 증세이고 자기가 남보다 처량하게 느껴지면 열등의식의 증세를 갖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두가지 ...

    남편과 아내는 서로 보완자임을 인식해야
  • 다수 대학에 합격, 전공 프로그램 우수성 따져봐야

    학교 위치와 분위기도 중요, 재정 보조 내용 비교해야 (워싱턴디시=코리아위클리) 엔젤라 김(교육가) = 대학 진학을 앞둔12학년 학생들 중에는 조기지원으로 이미 진학할 학교가 결정난 학생도 있을 것입니다.   ▲ 엔젤라 김   혹은 조금 발표가 이른 주립대학에서 합격...

    다수 대학에 합격, 전공 프로그램 우수성 따져봐야
  • 남자 혹은 여자로 사는 것, 어느 쪽이 어려울까

    양쪽 모두 서로 다른 삶의 어려움 있지만...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유니버시티 교수) = 다수 독자층을 갖고 있는 '타운홀닷컴(Townhall.com)'이라는 온라인 칼럼집에서 흥미로운 칼럼을 실었습니다. 트위터를 통하여 무작위로 남녀 여론 조사를...

    남자 혹은 여자로 사는 것, 어느 쪽이 어려울까
  • 영어가 부족한 학생은 조건부 입학 고려

    어학 과정 이수 조건으로 일단 입학 허가 받아 (워싱턴디시=코리아위클리) 엔젤라 김(교육가) = 오늘은 조건부 입학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미국에서 자라고 교육 받아서 영어가 모국어인 학생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내용입니다만, 미국에서 공부한 기간...

    영어가 부족한 학생은 조건부 입학 고려
  • 코로나19 대처 ‘코리아 모델‘ 칭송하는 미국 file

      [시류청론] 억지부리며 정쟁에 이용하는 한국 보수정계와 언론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미국 보건당국과 언론은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처에 큰 박수를 보내고 있다.   앨릭스 에이자 미 보건복지부 장관은 3월 1일 “한국과 이탈리아는 매우 선진...

    코로나19 대처 ‘코리아 모델‘ 칭송하는 미국
  • 코로나19 당신들의 한국은 안전하다 file

      Newsroh=로창현 칼럼니스트           27일 하루에만 신규 코로나19 확진자(確診者)가 505명 발생했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날 코로나19 확진자가 505명을 기록했고 누적 국내 확진자는 총 1,766명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대구에서만 422명이...

    코로나19 당신들의 한국은 안전하다
  • 미국 대선, 트럼프 지지할 이유 있나?

    '기생충' 비난, 대형광고 해줘… 속속 등 돌리는 동맹국들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2일 콜로라도 대선 유세 중 뜬금없이 아카데미 상 4개 부문을 휩쓸어 전 세계의 박수를 받은 한국 영화 ‘기생충’을 두고 ‘어찌 이런 영화가 오스카...

    미국 대선, 트럼프 지지할 이유 있나?
  • 만혼, 출산율 감소는 세계적인 현상

    스웨덴 초혼 연령은 34.8세로 가장 높아, 한국은 아시아 최고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 유니버시티 교수) = 어떤 인종이나 종교에 속한다 해도 우리의 자녀는 가장 귀중합니다. 그런데 현대의 젊은이들은 결혼을 피하거나 연기하는 경향이 극심하...

    만혼, 출산율 감소는 세계적인 현상
  • 대학 합격 통지를 기다리는 학생들에게

    합격, 불합격, 대기자 명단 등 여러 상황 고려해 대처해야 (워싱턴 디시=코리아위클리) 엔젤라 김(교육가) = 지금쯤 대학 입학을 앞둔 12학년 학생들은 고등학교의 마지막 시간을 최대한 즐기려고 하는 한편, 한 달내로 도착하게 될 합격 통지를 기다리며 초조해 하는 ...

    대학 합격 통지를 기다리는 학생들에게
  • 문재인의 남북관계 구상, '말' 아닌 '실천'이 필요하다

    [시류청론] 미국에 ‘No!’ 할 수 있는 담력부터 길러야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새해 들어 문 대통령은 우리 민족은 물론 미국에 충격을 주는 신년사를 발표, 남북 국민의 귀를 번쩍 띄게 했다. 그가 밝힌 ‘남북관계 구상’의 핵심 내용은 “북미 대화만 쳐...

    문재인의 남북관계 구상, '말' 아닌 '실천'이 필요하다
  • 고객 잃지 않으려면 회사 정책 위에 융통성 놓아야

    좋은 고객 서비스는 업체 경쟁력 강화의 원리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유니버시티 교수) = 지난 칼럼에서 경쟁력의 10대 요소 즉 1)상품의 디자인, 2) 원가, 3) 업체의 위치, 4) 품질, 5) 신속성, 6)융통성, 7)재고관리, 8) 조달관리, 9) 서비스,...

    고객 잃지 않으려면 회사 정책 위에 융통성 놓아야
  • 외국 학생이 치루는 토플, 무엇인가

    영어 실력 측정을 위한 가장 공신력 있는 시험 (워싱턴디시=코리아위믈리) 엔젤라 김(교육가) = 학생의 일반적인 학습 수행 능력을 측정하고자 고안된 것이 SAT라고 한다면 토플이란 TOEFL, 즉 'Test of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의 약자로서 말 그대로 해석하면 ...

    외국 학생이 치루는 토플, 무엇인가
  • 정치와 신앙 file

    [종교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정용섭 목사(샘터교회) = 한쪽에서는 기독교 신앙과 정치는 아무 상관없는 실재로 간주하는 반면에 다른 한쪽에서는 매우 긴밀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 아주 간략이 구분해서, 전자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수적이라고 한다...

    정치와 신앙
  • 기생충과 부재의기억 file

      Newsroh=로창현 칼럼니스트     작품상 수상으로 아카데미를 오로지 ‘기생충 잔치’로 만든 9일(미국 시간) 뉴욕타임스는 인터넷판 프런트면에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 등 제작진 출연진이 무대에서 기뻐하는 사진을 올리고 ‘Parasite’ Makes Oscar History With Bes...

    기생충과 부재의기억
  • 3월 한미연합훈련은 ‘북침훈련’, 제발 북한 자극 말라

    한미 연합훈련 평균 이틀에 한번씩 강행해와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38노스> 1월 23일치를 보면, 17일과 21일 강원도 원산갈마비행장을 찍은 상업 위성사진에 북한의 주력기종인 미그(MiG)-21(마하 2.05), 구형인 미그-17(마하 0.9), 날개의 각도를 20...

    3월 한미연합훈련은 ‘북침훈련’, 제발 북한 자극 말라
  • SAT 성적 낮으면 토플 성적 제출

    외국인 학생이 미국 대학에 지원하는 방법 (워싱턴 디시=코리아위클리) 엔젤라 김(교육가) = 미국의 대학 지원을 위해 별도로 치루어야 하는 시험은 학생에 따라 다르지만 SAT, TOEFL이 있습니다. 외국인 학생, 즉 학생비자 (F-1) 로 미국에서 공부하게 될 학생들 중에 ...

    SAT 성적 낮으면 토플 성적 제출
  • 전광훈의 길 VS. 그리스도인의 길 file

    [호산나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하늘밭교회) =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빤스에 이어 불멸의 대 히트작이 될 전광훈의 말이다. 용납될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도 정욕 가운데 내어 버려두신다. 이런 인물은 추종하는 이들 때...

    전광훈의 길 VS. 그리스도인의 길
  • 비 백인 정치세력 급증하는 미국

    흑인은 일반 민주당유권자보다 보수 성향 강해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유니버시티 교수) = 미국은 급속히 비 백인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고 퓨 리서치 (Pew Research)가 발표했습니다. 2020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 중에서 66.7% 만이 백인일...

    비 백인 정치세력 급증하는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