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조국순례이야기

천형(天刑)의 섬 낙원의 섬 소록도(2)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나는 이분들과 벤치에 앉아 그분들이 살아 온 소설 같은 인생 역경(逆境)을 들었다. 외로웠던 것일까 그분들은 일단 말문이 트이자 이른 아침임에도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70대 초반의 한 분은 30여 년 전 멀쩡하게 직장생활하다 피부에 하얀 반점이 생기고 병원에서 한센병 진단받았을 때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노라고 했다. 나병(癩病)은 나을 수 있다는 의사의 말도 미덥지 않아 한 달을 고민하다 부인과 초등학생인 두 자녀를 위해 있는 재산, 없는 재산 긁어모아 부인에게 주고 자진해서 소록도를 찾았다고 한다. 이제는 약이 좋아 음성으로 완치되었지만 어쩌다 고흥읍내에 나가면 이발관이나 식당에서 용케 알아보고 못 들어오게 한다고 했다. 그 후 부인은 개가(改嫁)하고 남겨둔 자식들은 장가들어 몇 달에 한 번 씩 찾아오는 데 아직 며느리와 손자는 사진으로만 보았다고 한다. 할아버지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분들은 소록도 생활에 대해서도 자세히 들려주었다. 생활비 의료비 걱정이 없어 음성환자들 중에는 헤어졌던 부인까지 찾아와 함께 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정부에서는 이들에게 생활비는 물론, 노인기초연금까지 타게 해주어 돈 걱정은 없다고 했다. 비교적 건강한 사람들은 구내 기념품점이나 거리청소 화단 가꾸기 등 가벼운 노동으로 과외수입까지 올린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돈 벌어 어디다 쓰느냐고 묻자 사람마다 다르지만 육지 가족에게도 보내주고 술 담배 기호품과 주전부리도 한다고 했다. 가끔 화투판도 벌인다고 한다. 이곳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다. 이들은 돈 때문에 다투기도 하고 홀아비 과부가 상대방 고를 때 돈부터 계산한다고 했다. 특히 얄미운 것은 육지 자식들이 이곳 부모에게 돈을 뜯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때 다른 한 분이 “맞어. 그놈들 문둥이 간 빼먹는 놈들이여”하고 말해 모두 웃었다.

 

70대 중반의 다른 한 분은 과거 비참했던 소록도 생활을 회상하면서 지금은 한센병 환자 중에 유식한 사람들이 많아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금방 항의하고 소송까지 한다고 했다. 조금 전 방문한 검시실에서는 죽은 사람 시체 뿐 아니라 강제 낙태시킨 태아와 영아 시신에서 적출한 장기를 포르말린 용기에 넣어 진열했다고 한다. 한센병 수용자들은 이러한 인권침해 사례를 모아 일제 때부터 박정희 시대까지 계속된 강제낙태와 단종수술(斷種手術), 자식과 강제격리, 폭력, 살인, 감금 등에 대한 인권침해 피해보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오랜 법정투쟁 끝에 지난 2월15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해 모두 환호했다고 한다. 그분은 보상금 몇 푼이 문제가 아니라 한센병 환자들도 보통인과 똑같이 차별받지 않아야 된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해 준 것이 기쁘다고 했다. 그분의 모습에서 나는 나라를 상대로 오랜 투쟁 끝에 승리해 스스로 대견해하는 촌로의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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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을 감금했던 시설

 

 

 

이분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한센인들의 오랜 투쟁 끝에 이제는 소록도가 과거와 비교하면 낙원으로 변했다고 했다. 한 분은 자신들이 투쟁하지 않고 침묵했다면 지금 같은 소록도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소록도는 멀리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한센인들의 투쟁의 역사라고 말했다. 특히 노인은 해방직후 일본헌병과 조선인 자치대에 집단학살당한 소록도 84인 학살사건을 들려주었는데 내가 자료실에서 읽은 기록과는 약간 달랐다. 1996년 발간된 소록도 80년사에는 “해방후 직원들에게 병원 운영권을 빼앗긴 의사 석사학이 병사에 내려와 환자들을 등에 업고 주도권을 찾아볼 욕심으로 ‘오순재 일파가 창고의 식량을 빼돌리고 있다’는 거짓정보를 흘려 흥분한 환자들이 직원지대로 몰려들었고 신변의 위협을 느낀 직원들이 뭍에서 치안대를 몰고 와 주민들을 학살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다른 증언도 있다. 61년 원장에 부임한 송창원 전 원장이 조사한 내용은 일본인 원장이 한국인 의사 석사학에게 식량창고를 인계하자 오순재 송희갑 등 한국인 직원 2명이 의사를 두들겨 팬 뒤 열쇠를 빼앗아 창고를 강탈(强奪)하려고 해 흥분한 환자들이 몰려오자 이들이 치안대를 끌고 와 주민들을 죽창과 총으로 학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84명이 총과 죽창으로 살해됐다는 일치된 증언을 보면 나는 학살사건에 일본군이 확실히 개입했다고 믿는다. 소록도에 해방소식이 전해진 것은 8월18일이며 학살사건은 22일이다. 당시 총기를 소지한 세력은 일본군경 뿐이다. 일본군 무장해제는 9월8일 미군이 진주하고 이틀 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동안 남한의 치안은 여전히 일본군이 담당했다. 따라서 죽창은 모르되 총에 죽은 사람이 많다면 틀림없는 일본군경 짓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부 기록에는 일본헌병이 치안대와 함께 저질렀다는 구절도 있다. 노인들도 일본 헌병을 언급했다. 어쨌든 소록도 주민 84명이 학살당한 것은 틀림없다. 이들의 유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2001년12월8일 발굴해 수습했고 이듬해에는 병원입구에 ”애한의 추모비(哀恨의 追慕碑)“라는 위령비가 세워졌다. 문자 그대로 슬프고 원통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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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자료실

 

 

나는 이분들 안내로 한센병 자료역사관을 관람하고 중앙공원으로 올라갔다. 공원에는 한하운의 버들피리 시가 넓적한 바위에 와불(臥佛)처럼 새겨져 있다. 공원중앙에는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구호가 새겨진 공원의 상징 구라탑이 세워져 있다. 미카엘 대천사가 긴 창을 들고 찌르는 석상이 세워진 구라탑은 천사가 나병을 무찌른다는 의미다. 공원 한구석에는 한센병 환자들의 강제노역장인 벽돌공장터가 있다. 이곳에는 천주교에서 대형십자가를 세워놓았다. 손이 뭉그러진 한센병 환자들이 매일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겪은 고통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으로 상징한 것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 5월 4일 소록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는 석등 형상의 기념비도 있다. 당시 교황은 전두환정권의 극력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고집으로 5.18의 현장 광주와 가장 소외되고 비참했던 소록도를 방문했다. 교황은 이날 한센병 환자들을 어루만지면서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달려 왔다고 인사해 한센병 환자들을 감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환자구역 안에는 교황방문 기념성당이 세워져 있다.

 

나는 이분들 안내로 한센병 환자전용 성당에 들어가 한참 기도하고 나왔다. 그동안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서 인간의 무지(無知)와 편견(偏見)이 가져온 차별이 엄청난 죄악임을 새삼 깨달았다. 한센병은 단순한 질병이다. 양성환자와 상처난 피부를 직접 접촉하지 않는 한 전염위험도 없고 양성환자도 발달된 의학 덕분으로 쉽게 치료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한센병 환자 신규발생이 거의 없다. 가끔 외국 노동자들에게 발견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수많은 나환자 정착촌도 머지않아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중앙공원에는 또 하나의 감사비가 세워져 있다.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다. 오스트리아인으로 젊은 처녀의 몸으로 이역만리 낫선 땅 소록도에서 43년을 봉사하고 홀연히 사라진 두 천사의 이야기를 두 노인으로부터 상생한 증언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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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b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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