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무덤 2차 조국순례기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완도로 향하는 배 옆자리에 앉은 예비군복 차림의 중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쪽 어깨에 파란 지휘관 견장이 있었다. 청산면 예비군 중대장인데 청산도와 인근 여러 섬의 예비군훈련을 맡고 있다고 한다. 회의참석차 완도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나의 여행에 호기심을 가지고 물으면서 그 연세에 대단하다고 놀라워했다. 다음 행선지가 보길도라고 하니 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완도항에서 출항하는 것이 아니라 버스터미널에서 화흥포 가는 버스를 타고 화흥포에서 노화도 동천항 배를 타고 동천항에서 버스타면 보길대교를 지나 보길도에 간다고 했다.

 

 

1513994911714.jpg

완도에서 보길도 가는 배에서

 

 

그는 완도항에 도착하자 자동차를 싣고 왔다며 나를 버스터미널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이래서 길에서 사람사귀는 재미가 쏠쏠한 것이다. 버스터미널에서는 화흥포까지 농협이 운영하는 직행버스가 5백원에 승객들을 태우고 있었다. 화흥포에서 동천항 배는 버스시간에 맞춰 자주 있었다. 선미에서 바다경치를 즐기고 있는데 나보다는 훨씬 늙은 노인이 말을 걸어 왔다. 흰수염에 지팡이 짚고 배낭 매고 벙거지 쓴 나의 행색이 눈길을 끄는지 초면의 사람들이 곧잘 말을 걸어온다.

 

두 번에 걸친 배낭여행에서 늘 느끼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내면에 외로움을 가득 안고 사는 것 같았다. 한가한 사람은 한가한 사람대로 바쁜 생활에 쫓기는 사람들도 역시 그들대로 내면의 고독(孤獨)을 느끼는 것 같았다. 84세 노인은 초면인 나에게 자신의 인생역경을 줄줄이 털어놓았다. 경험상으로 이런 경우에는 간간히 추임새를 넣어주며 진지하게 들어만 주면 된다. 이 노인도 과거 큰 사업체를 운영하다 정치에 휘말리고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고 사기꾼으로까지 몰렸으나 최근 ‘좋은 검사‘의 도움으로 재판에 승소해 거액의 재산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보길도에 은거(隱居)하면서 재기를 노렸는데 내일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다. 그는 되찾은 재산을 ’똑똑한 며느리‘에게 맡겨 평생소원인 강원도 고성에 한옥호텔을 지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 건축허가까지 받았다며 초면인 나에게 호텔도면과 허가증까지 보여주며 설명했다. 나는 좀 지루했지만 영감님 소원이 이루어지기 바라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내년 호텔이 완공되면 꼭 찾아달라며 명함을 건네주었다. 흥미 없는 이야기였지만 참고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노화도 동천항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보길도행 버스가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이제 노화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노화도는 큰 섬이다. 그보다 5800 명 인구에 자가용이 2천대가 훨씬 넘으며 그랜저를 비롯해 에쿠스 체어맨 제네시스 등 고급 승용차는 물론 벤츠 링컨콘티넨털 등 외제차량도 수십 대에 이르고 골프연습장과 실내연습장이 여러 개 있어 골프인구도 수백 명이 넘는다고 한다. 대한민국 섬 중 가장 부자 섬이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섬 마을에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고급주택들도 많이 눈에 뜨였다. 노화도 2600 가구 중 연간 순소득 1억 이상이 6백 가구가 넘는다고 한다. 나는 노인의 설명에 마치 보물섬에 온 것 같은 호기심이 일어났다. “아, 우리 조국 대한민국 외딴 섬 마을도 이제 잘 살게 되었나보다.”

 

나는 예정에 없이 보길도가 마주보이는 노화읍에서 내렸다. 보길도까지는 보길대교를 걸어갈 심산이었다. 도서지방 답지 않게 번화한 거리가 길게 뻗어 있었다. 1.5km는 될 것 같다. 거리에는 육지와 다름없는 유흥가와 노래방 다방 고급양품점 등이 즐비했다. 해변에는 횟집과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규모는 도회지에 비할 수 없겠지만 섬 마을치고는 대단했다. 변두리에는 고등학교까지 있었다. 노화면 도서관도 현대식으로 세워져 있었다. 나는 말상대를 찾으러 해변을 어슬렁거렸다. 하릴없이 담배 태우고 있는 중늙은이에게 말을 붙였다. 슬슬 잡담처럼 시작해 본격적으로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그도 내가 멀리서 온 여행객이라는 것을 알고는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1513994933307.jpg

'부자의 섬'으로 불리는 노화도

 

 

노화도는 김 양식이 주업이었는데 경기가 나빠지자 주민들이 80년대 초 처음 전복양식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씨전복이 폐사하는 등 실패를 거듭했지만 차츰 성공률이 높아지면서 전복양식은 그야말로 주민들에게 횡재(橫財)를 안겨주었다. 한때 전국의 70%를 노화도에서 출하했다. 전복양식도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으로 부자들은 수백 칸 가두리(양식 칸막이)를 운영하며 큰돈을 벌지만 가난한 사람은 양식장 노동으로 연명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전복양식은 거문도 흑산도 청산도 등 남해안 대부분 도서(島嶼)에 확산되어 갈수록 경쟁이 심해 수입이 예전보다 못하다고 했다. 노화도 주민 3분의1 이상이 전복양식에 종사한다고 한다. 그는 주민들 소득이 높아지자 육지로 떠났던 젊은이들이 돌아오기 시작해 이제는 3개 초등학교에 약 3백 명 학생이 있고 중학교는 물론 고등학교까지 있다고 했다. 모르긴 해도 남해안 섬들 중 가장 젊은 섬일 것이라고 했다.

 

나는 설명을 들으며 이곳 뿐 아니라 청산도 흑산도 등 남해안 섬 주민들이 비교적 여유 있게 사는 것이 이해되었다. 반갑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배에서 만난 노인이 보길도 해변식당 앞에서 기다리겠노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그 사람과 작별하고 보길대교로 향하는데 작은 트럭이 멈추며 행선지를 묻는다. 보길도라고 하니 자기도 보길도 간다며 타라고 한다. 다리가 불편한 나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배낭여행하다 보면 도처에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제 ‘부자의 섬 노화도’를 거쳐 고산 윤선도 ‘선비의 섬’ 보길도로 가는 것이다.

 

 

<계속>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bmd

 

 

  • |
  1. 1513994911714.jpg (File Size:82.8KB/Download:23)
  2. 1513994933307.jpg (File Size:135.1KB/Download:30)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 뉴욕의 옐로캡 운전대를 놓으며 file

    나는 왜 택시운전을 그만두었나 지역사회를 가난하게 만드는 우버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지난 21일, 4년 반을 잡았던 택시 운전대를 놓았다. 자의반 타의반(自意半 他意半)이다. 자의라는 것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자 함이고 타의라는 것은 더 ...

    뉴욕의 옐로캡 운전대를 놓으며
  • 비단길에 평화의 수를 놓다 file

    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53)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코카서스 산맥의 두꺼운 산 주름 속을 맨몸으로 달릴 때 낯선 나그네의 발길이 탐탁지 않은 듯 바람은 거셌다. 그러지 않아도 그 장엄하고 경이로운 자태(姿態) 앞에 무릎이 절로 꺾이고 ...

    비단길에 평화의 수를 놓다
  • 지구는 UFO 종합터미널 file

    별나라형제들 이야기(28)     Newsroh=박종택 칼럼니스트         8. 지구는 UFO 종합터미널이고 많은 비행체들이 가고 오고 있다   지구에는 수백, 수천의 외계인 전초기지(前哨基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지구 곳곳에는 적어도 75개 비행체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지구는 UFO 종합터미널
  • 조금 더 해주는 정성, 성업 부른다

    대폭적 경영쇄신에 앞서 봉사의 질을 향상시켜야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 유니버시티 교수) = 텍사스 주의 댈라스에 있는 한 호텔에 새로운 매니저가 부임해 왔습니다. 여성인 매니저는 그 침체된 그 호텔을 성업으로 전환해 달라는 요청을 소유...

    조금 더 해주는 정성, 성업 부른다
  • 자녀에게 좋은 성품 길러주자(4)

    [교육칼럼] '존중'은 자신과 타인이 고귀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행동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엔젤라 김(교육 칼럼니스트) = 시대가 변하면서 유행하고 많이 쓰이는 말들도 자주 변하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는 별로 사용하거나 듣지 않았지만 요새 흔하게 쓰이는 말들 중에...

    자녀에게 좋은 성품 길러주자(4)
  • 햇볕 쬐면 비타민 D 얻는다 file

    [생활칼럼] 피부암 등 자외선 유해성 감안해 노출시간 조절 필요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최정희 기자 = 비타민 D는 음식을 통해서도 얻어지지만 신체내 필요한 분량중 상당 부분이 햇볕에 노출된 피부에서 만들어진다. 비타민 D의 남녀성인 하루 권장량은 400 IU이며, ...

    햇볕 쬐면 비타민 D 얻는다
  • 오래전 솔직하게 했던 말을 후회한다 file

    [이민생활이야기] <조선일보>에 난 북한 어부들 기사를 읽고 지난해 말에 읽은 <조선일보> 기사 한 토막이 요즈음 며칠동안 나의 잠을 설치게 한다. <조선일보> 일본 특파원이 쓴 '일본 해안의 뚜껑 없는 목관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오래 전에 내가 솔직하게 한 말과 ...

    오래전 솔직하게 했던 말을 후회한다
  • 보길도와 바구리섬..정겨운 우리말 file

    부자들의 섬 노화도, 선비의 섬 보길도(2) 빈무덤 2차 조국순례기 열번째 이야기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트럭 운전사는 보길대교를 지나 면사무소 앞에 내려주었다. 식당 앞에서 노인이 젊은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보길도' 지명은 15세기 ‘동국여지승...

    보길도와 바구리섬..정겨운 우리말
  • 환상적인 우주여행을 하자 file

    지구인은 탐구족(The explorer race) 별나라 형제들 이야기(27)     Newsroh=박종택 칼럼니스트     로버트 샤피로(Robert Shaprio)가 쓴 ‘탐구족(The explorer race)’ 이라는 책을 읽었다.   아주 기상천외하고 도발적인 관점들이 많아서 정말 흥미진진했다. 다시 말하...

    환상적인 우주여행을 하자
  • 북미 대화, 미국 태도에 달려 있다

    [시류청론] 대북적대정책 포기만이 평화의 첫걸음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평창올림픽이 시작된 2월 10일 북한 대표단과 펜스 등 미국 대표단이 청와대에서 ‘조건 없는’ 비공개 회담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회담 시작 2시간 전에 북한 측이 회담을 일방적...

    북미 대화, 미국 태도에 달려 있다
  • 혐오와 배제를 극복하려면 file

    [종교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하늘밭교회) = 최근에 읽은 김동문님의 글 '혐오가 복음이고 정답이다?'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배제와 혐오에 깔려있는 정치적으로 극우적 편향은 보수 정권에 대해서는 맹목적인 무비판적 지지로 기울곤 한다. 정치...

    혐오와 배제를 극복하려면
  • NBC의 이상한 ‘평챙’ 고집 file

    ‘평창’ 대신 엉터리 발음 고수     Newsroh=노창현 칼럼니스트     미국인들에게 이번 동계올림픽은 ‘평창’이 아니라 ‘평챙’입니다. 올림픽 주관방송사인 NBC가 초지일관(初志一貫) ‘평창’을 ‘평챙’이라고 발음하기 때문이지요.   올림픽 개최도시 평창(Pyeong Chang)은 ...

    NBC의 이상한 ‘평챙’ 고집
  • 부자들의 섬 노화도, 선비의 섬 보길도(1) file

    빈무덤 2차 조국순례기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완도로 향하는 배 옆자리에 앉은 예비군복 차림의 중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쪽 어깨에 파란 지휘관 견장이 있었다. 청산면 예비군 중대장인데 청산도와 인근 여러 섬의 예비군훈련을 맡고 있다고 한다. 회...

    부자들의 섬 노화도, 선비의 섬 보길도(1)
  • 팁 문제로 고객 잃을 수 있다

    강요적이거나 무례한 행위 조심해야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유니버시티 교수) = 팁이란 영어로 T.I.P. 인데 이는 “To Insure Performance” 의 첫글자를 합친 말입니다. 즉 “좋은 봉사를 확실히 받기 위하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겠습니다....

    팁 문제로 고객 잃을 수 있다
  • 자녀에게 좋은 성품 길러주자(3)

    [교육칼럼] 인내는 수동적이 아닌 적극적 행동 (워싱턴=코리아위클리) 엔젤라 김(교육 칼럼니스트) = 교육 및 유학 상담을 하면서 보면 상담 학생에 대하여 교사들이 추천서에 “인내심이 강하다”라고 쓴 것을 종종 읽을 때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는 쓰여 있지가 않아서...

    자녀에게 좋은 성품 길러주자(3)
  • 단독 올림픽은 이제 그만 file

    올림픽은 비효율의 극치     Newsroh=로빈 칼럼니스트     평창동계올림픽이 25일 폐막식(閉幕式)을 앞두고 있다. 3수 끝에 개최에 성공한 평창 올림픽은 88서울올림픽과 2002월드컵과는 또다른 차원의 대한민국 위상을 과시한 대회임엔 틀림없다. 특히나 북한이 참가하...

    단독 올림픽은 이제 그만
  • 시간의 흐름이 멈춘 청산도, 여서도(3) file

    빈무덤 2차 조국순례기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나는 부두에 도착해 늦은 점심을 먹었다. 슬로시티답게 음식도 천천히 나왔다. 여객터미널에서 배 시간을 보니 여서도 배가 4시 출항이다. 다리가 불편해 걷는 것을 최대한 줄였지만 슬로길과 범바위 등산...

    시간의 흐름이 멈춘 청산도, 여서도(3)
  • 영혼의 우주(the cosmos of soul) 下 file

    별나라형제들 이야기 (26회)     Newsroh=박종택 칼럼니스트         인간의 기원, 진화, 새로운 DNA 출현을 말한다.   태초의 인간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주장하는바 고릴라에서 진화된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만 옳다. 인간은 우주의 여러 존재들의 합작품이...

    영혼의 우주(the cosmos of soul) 下
  • 서울에서 홀로 맞는 설은 섧습니다 file

    Newsroh=신필영 칼럼니스트     정말 설은 섪은것인가     설 전날에 잠을 설친것은 설날을 어떻게 맞을까에서입니다   차라리 설날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큰댁 형수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몇년째 제사며 차례를 지내지 못한   죄스러움이 ...

    서울에서 홀로 맞는 설은 섧습니다
  • 달항아리와 남북단일팀

    달항아리와 남북단일팀   [i뉴스넷] 최윤주 편집국장 editor@inewsnet.net   시작 전부터 우려와 반발이 빗발쳤다. 나라밖에서는 평화올림픽의 토대를 닦았다며 벅찬 감격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정작 나라 안은 시끄러웠다. 정치권에서는 북한의 체제 선전에 이용...

    달항아리와 남북단일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