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계선(뉴스로)

 

김포공항 가는 등촌동 언덕배기에 서있는 나사렛신학교. 여름방학이라 기숙사는 빈집이었다. 졸업반인 난 잠간 들릴 일이 있어 문을 여는데 찬송(讚頌) 소리가 들려왔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아름다운 테너목소리였다. 난 노래가 끊길 가 봐 몰래 서있었다. 이번에는 ‘선구자’를 시작으로 가곡이 들려왔다. 어찌나 성량이 큰지 ‘가고파’를 부를 때는 창문이 떨리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거지가 앉아있었다.

 

“짝짝짝, 거 임만섭이나 이인범보다도 위대한 하늘이 낸 대형 테너 목소리이군요”

 

거지는 내 칭찬에 깜짝 놀라며 이런 말 부터 했다.

 

“폐인으로 끝난 전설의 테너 임만섭을 아시는군요. 내가 서울음대입학실기시험을 보는데 교수들이 그랬어요. ‘넌 임만섭 보다도 더 곱고 큰 목소리다. 해방이후 서울음대 입학생중 최고의 목소리로 조영남을 치는데 넌 조영남만 못하지 않다’. 서울대 교수가 나에게 해준말을 오랜만에 다시 듣는군요.”

 

Cho_Youngnam.jpg

<사진 www.ko.wikipedia.org>

 

 

난 그때부터 조영남 매니아가 됐다. 그게 1968년. 거지청년이 맺어준 인연(因緣)인 셈이다. 잠깐, 그거지 이야기를 마저 들어 보자.

 

“서울음대에서 이인범의 계보를 잇는 테너유망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미술여대생에게 실연을 당하는 바람에 홍대미대로 옮겨 도자기를 전공했지요”

 

한양음대 다니다가 애인에게 버림받아 서울음대로 전학한 조영남과 비슷하다. 조영남은 대학을 옮긴후에도 파던 우물인 노래 부르기를 계속해서 성공. 그 청년은 파던 우물을 버리고 미술을 전공하다가 알거지가 됐다. 그런데 이번에 조영남이 파던 우물을 버리고 대작(代作)그림을 팔다가 쫄딱 망해 버렸다. 두 사람 비슷하다.

 

염창동 작업실에 가보니 청년은 거지답게 움막에서 살고 있었다. 등촌동 길건너 염창동은 조선시대부터 도자기를 구워내는 도요지(陶窯地)로 유명했다. 홍대 졸업후 청년은 움막에서 열심히 도자기를 구워냈다. 사주는 사람이 없었다. 며칠 굶은 몸으로 근처를 걷는데 빈집이 보여 들어와 보니 나사렛신학교기숙사였다. 옛날에 다니던 교회 생각, 음대생각이 나서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난 즉석에서 양복과 와이셔츠 넥타이를 벗어서 그에게 주었다. 콤비로 입는 빨간 양복인데 양복점을 하는 동생이 며칠전에 지어준 고급쟈킷이었다. 쌈지돈도 안 되지만 주머니도 톡톡 털어줬다. 거지청년은 자주 들려 기숙사 밥을 먹곤했다. 올적마다 내 주머니를 털어갔다. 그해 가을에 내가 졸업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헤어졌다. 48년 전일이라 거지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 못한다. 그러나 그가 불렀던 노래목소리만은 지금도 내 귀에 쟁쟁하다.

 

조영남이 우수에 젓은 감미로운 목소리로 임만섭을 닮았다면 거지는 강하고 맑은 미성 이인범의 목소리다. 거지의 노래는 더 이상 들을수 없지만 덕분에 난 조영남의 노래를 무지무지하게 좋아하게 됐다. 조영남의 노래는 유성기판에서부터 시디(CD)까지 모두 갖고 있다. 조영남이 부른거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찬송가는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세계”, 성악은 “제비”, 흘러간 노래로는 “아, 꿈은 사라지고”를 최고로 친다. 박인수 임응균 엄정행 조수미 홍혜경 신영옥은 물론 이미자 이동원이 뉴욕에서 콘서트를 열면 찾아간다. 그러나 조영남쑈에는 애들까지 데리고 온가족이 참석하는 열성팬이다.

 

요즘 복서출신 테너 조용갑이 등장하여 성악계를 평정하고 있다. 그러나 조영남이 30대에 부른 “제비”를 못 따라간다.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더 아름다운 조영남의 “제비“는 박인수의 ”제비“와 쌍벽을 이루는 명창이다. 조영남의 ”제비“가 감미로운 사랑의 그리움을 물어다준다면 박인수의 ”제비“는 달고 시원한 수박같은 소망을 노래한다. 둘다 복바가지를 선사한 흥부의 ”제비”급들이다.

 

조영남은 노래(가수)잘하고 말(방송인)잘하고 글(작가문인) 잘 쓰는 만능천재다. 그러다 화투그림(화가)까지 그려 4관왕이 됐다. 고등학교 때 미술부장이였다. 미대로 갔으면 한국의 피카소가 됐을지도 모른다. 유명세를 타고 그림이 대작(大作)처럼 고가(高價)에 팔리는걸 보고 대작(代作)수법으로 물량을 늘렸다. 그러다가 대작을 그려준 송기창의 폭로로 들통나버리고 말았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난 조영남의 노래 글 방송은 좋아하지만 그림은 별루다. 동키호테와 바보산초가 화투하는 그림 한 두점 그리고 그만뒀어야 했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먹는 걸 흉내내어 조영남은 화투그림을 대량으로 팔아먹다 망했다. 며칠전 쎄시붕 무대에서 고백한 조영남의 고해성사.

 

관객을 향해 90도로 인사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노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의사가 처방해준 독한 수면제를 먹어 정신이 몽롱해요. 나오기 전에 윤형주가 손을 잡고 기도해줬습니다. 어른들이 화투 가지고 놀면 안 된다고 했는데 제가 너무 오래 화투 가지고 놀다가 쫄딱 망했습니다”

 

그는 “제비” “딜라이나” “모란동백”을 불렀다. 제비를 부르기전 이런 말도 했다.

 

”제비들이 작은 날개로 폭풍우를 뚫고 날라 가다 낙오되면 무인도에 떨어지는데 저도 갔다가 잘 돌아오는 도중에 지쳐서 떨어지는 제비가 됐습니다“

 

마지막 곡 모란동백을 부를때는 눈물을 흘렸다.

 

“이 노래는 제가 죽었을 때 부르려고 만든 노래인데 이제 진짜로 부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시대의 마지막 피터팬 조영남. 영원한 자유인 조영남. 조영남답게 기인으로 행동하다가 조영남답게 일을 저질렀다. “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 을 쓰고도 묘하게 살아 돌아온 조영남이다. ”대작“그림파동이라는 폭풍우를 뜷고 조영남의 제비는 살아 돌아와 다시 날개를 펼수 있을까?

 

조영남 기사를 읽는데 염창동의 거지가 생각났다. 그가 부른 테너목소리가 워낙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천당에 가는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 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목회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하고 있다.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에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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