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충일에 전쟁영화를 보고 나서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 = 5월 30일은 미국의 현충일이었다. 현충일에 미국 텔레비전은 사흘 연속으로 수많은 전쟁영화를 방영했다. 이를 보니 곧 다가오는 6.25 기념일이 떠오르고 다시금 마음이 숙연해졌다.

어느 나라나 전쟁은 없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처참한 전쟁을 치룬 이후에도 남북간에 긴장이 채 가시지 않고 있으니 전쟁영화를 보는 마음은 무거울 수 밖에 없다. 다시는 그 처참한 민족의 비극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하였던가. 상상도 하기 싫지만 최악의 경우 어떠한 상황이 다시 생길 지 모르니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만반의 대비는 하여야 한다.

사흘 동안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이런 저런 영화를 보다가 625를 상기시기는 영화를 보게됐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그린 영화들은 같은 민족이 서로 싸우며 피를 흘리는 장면들이 여지없이 등장한다.

내가 본 영화는 한국에서는 '영광의 깃발'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한 1989년작 '글로리(Glory)'이다. 영화는 기존의 전쟁영화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흑인 연대를 소재로 다루며 감동적으로 그려내어 호평을 받았다. 여기서 나온 남성 흑인 배우 2명은 현재 미국에서 흑인 배우 하면 떠오르는 톱배우들이라고 한다.

1862년 미국이 남북으로 갈려 전쟁을 할때 북군은 링컨대통령의 노예해방 선언 이후 본격적으로 흑인들을 모집해 북군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고 부대를 편성하게 된다. 이 중 유명한 부대가 메사추세츠 54연대였고 영화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연대를 만든 북군 책임자는 나이가 겨우 23살인 중위였다. 그는 육군 중령의 지위를 받아 1개 대대 병력의 흑인들을 모아 메사추세츠에서 신병훈련을 시작하였다. 얼마 동안은 군복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을 받은 흑인들 중에는 오른발 왼발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 장면을 보니 자연 나의 옛 시절이 떠올랐다. 1960년 어느 가을날 서울에 있는 야간대학에 등교하기 위해 수원역에서 호남선 열차에 무임승차하였다. 화물칸에 올라타니 마침 최전선에 있는 아들을 면회가는 촌노들이 내가 군대생활 하면서 학교 다닌다는 소리를 듣고는 자기들 자식 까막눈만 면하게 하여 제대시켜 달라고 삶은 달걀 하나와 고구마를 내 손에 꼭 쥐어 주었다. ‘대학’이라는 단어 한마디로 내가 무슨 선생님이나 되는 것처럼 대우받을 정도로 당시에는 많은 병사들이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 있었다.

1863년 부터 흑인 대대는 남부군과 싸워 혁혁한 전공을 세워 나가지만 백인병사들의 멸시는 여전했다. 당시 북군 백인 병사들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남부군 군사 요새를 함락시키기 위해 수없이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흑인대대의 백인 지휘관이 흑인대대가 요새 함락을 한번 시도해보겠다고 제의하고 나섰다.

그리고 그는 대대 맨 앞에서 칼을 높이 쳐들고 ‘돌격!’을 외쳤다. 지휘관은 요새 앞까지 와서 무참히 전사하고, 이 모습을 본 흑인 병사들은 고개를 쳐들고 다시 돌격하여 요새를 함락한다. 영화는 혈투를 치루는 요새전의 처절함을 매우 잘 재현한다. 젊은 백인 지휘관이나 흑인 병사들은 영광을 위해 혹은 명예를 위해 싸웠던가 생각해 본다.

한국서도 6.25때 흑인병사 같이 화력이나 보급등이 열악한 한국 해병 1개대대 병력이 인민군 1개연대를 물리친 적이 있다. 이를 보고 미국 참전기자가 본국에 전공담을 전송하면서 '귀신 잡는 한국 해병대'라고 송전한 것이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니 '귀신 잡는 해병대'이니 하며 해병출신들의 기를 모으는 모토가 됐다.

그렇다면 이같은 전승담을 그린 감동깊은 소설이나 영화 한편 정도는 남겨질 만 한데 어디 없나 하고 궁금해 진다. 은퇴자 늙은이의 오지랖이 또 발동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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