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아메리카를 발견한 후 스페인으로 돌아간 콜럼버스는 

다음해 17척의 군함을 이끌고 되돌아왔다. 

피의 역사는 그의 배가 카리브 해안에 닿으면서 시작했다. 



기록에 의하면 1493년 800만명이었던 

에스파뇰라섬의 원주민 타이노족은 

콜롬버스가 이 땅을 밟은 지 3년만에 300만명이 됐고, 

7년이 지난 1500년경에는 10만명으로 감소했다. 

그리고 49년만인 1542년, 겨우 200명만이 남았을 뿐이다.



스페인·포르투갈·영국·프랑스 등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서 1억명 이상의 원주민들이 학살됐다. 

처녀림같던 산천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가장 아름다운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다’는 끔찍한 구호 속에 

미국의 역사는 잔인무도한 학살 위에 건립됐다.



잔혹한 정벌전쟁은 야만인들에게 문물과 문명을 전파했다는 선한 이미지로 왜곡됐다. 

가려진 진실은 ‘신대륙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후대로 이어졌다.



‘그들의 역사’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유럽사람도 아닌 동방의 우리가 

잔혹한 학살에 눈을 뜨지 못하고 

콜럼버스를 ‘신대륙을 개척한 위대한 탐험가’로 인지하는 건 왜일까.

 

교과서 때문이다. 

영미권에서 ‘세계사’를 공부한 사람들이 

승자의 시각에서 왜곡된 반쪽 역사를 고스란히 우리의 교과서에 옮겨놓으면서 

어린 시절 우리는, 잔혹한 정벌전쟁의 수장인 콜럼버스를 

용감한 탐험가로 배우고 외웠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한국 정부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결국 강행했다. 

정부가 정한 한 가지의 이야기로만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의미다.

학살을 지휘한 콜럼버스를 '세계 위인전'에서 읽어야 했듯이,

친일을 친일이라 부르지 못하고
독재를 독재라 말하지 못하도록 교육시키고 세뇌하겠다는 심산이다.

다양성과 창조적 사고를 최우선시 하는 지식정보 시대에 

권력이 원하는 역사만 가르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지구상의 자유민주주의 국가 중에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는 나라는 없다. 

빈곤에 허덕이는 후진국이거나 일부 이슬람 국가,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가 전부다. 

정권과 우익이 나서서 역사를 조직적으로 왜곡하며 

‘독도 침탈 야욕’을 숨기지 않는 일본의 교과서 마저도 국정이 아니다. 



“역사교육은 결코 정쟁이나 이념대립에 의해 

국민을 가르고 학생들을 나누어서는 안된다.” 

행정예고가 발표됐던 12일(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다. 

박 대통령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 중에 단연 최고다.

역사교육을 정쟁이나 이념대립으로 만들어 

국론을 분열시킨 사람이 누구인지 정녕 알지 못하는 것일까.



국정교과서는 

일제의 식민통치를 미화하고 

독재정권에 면죄부를 주었던 

2013년 교학사 교과서의 재현일 거라는 게 중론이다. 



손에 쥔 권력으로 

선친이 남긴 잘못된 족적마저 미화시키겠다는 속내는, 

현재의 공권력으로 과거의 역사를 바꿔 

미래마저 손 안에 틀어쥐겠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무서운 정권이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를 장악한다고 

국민의 역사의식마저 빼앗을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착각이다. 

유신시대, 박정희 정권의 집요한 세뇌교육에도 불구하고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한국사회에 민주주의를 세운 주체는 

국정교과서로 교육받은 세대였다.



문득 영화 <암살>의 마지막 대사가 심장을 파고 든다. 

친일파 두명을 죽인다고 해방이 되지 않는데 

왜 죽이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안옥균은 답했다.



“알려줘야지.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다고.”



역사는 시대적 분노 앞에 목숨을 걸고 싸운 민초들의 기록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가 계속 싸워야 할 이유다.




[뉴스넷] 최윤주 편집국장 

editor@newsnetus.com
  • |
  1. YCHOI.jpg (File Size:53.7KB/Download:56)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 강한 지도자는 겸손합니다 [1] file

    독재 스타일 경영자 시대는 지나… 이타심 구비해야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 교수(내셔널 유니버시티) = 현대의 경영분야에서 경영지도자의 정의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언성이 높고 독재성 지도자가 강한 지도자로 여겨졌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현대의 기...

    강한 지도자는 겸손합니다
  • “응답하라 1988” [4] file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  행진 행진 행진 하는거야 (행진_1985년)   1980년대 중후반, 젊은 층은 ‘들국화’에 열광했다.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시위가...

    “응답하라 1988”
  • 얼래, 내 친구가 간첩이 되었네?

      * 아래는 지난 28일(토) 오후 7시 '역사와 평화'(역평) 포럼 첫 모임에서 행한 '여는 말'을 정리한 글입니다. '역평'은 '역사 바로 알기' 차원에서 <코리아위클리>가 마련한 정기 모임으로, 궁극적으로는 남북화해와 분단의식 극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모임은 ...

    얼래, 내 친구가 간첩이 되었네?
  • 피의 악순환 file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는 9명의 이스라엘 선수를 죽음으로 몰았다.  이 사건은 당시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사건의 장본인인 ‘검은 9월단’은 9명의 희생자를 내고도 전 세계에 악명을 떨칠 수 있었다.    지금은 어림도 없다. 테러도 내성을 가지는지,  한 사람...

    피의 악순환
  • 플로리다로 은퇴를 즐기러 오신 장로님께 file

     인식 정지증의 해소를 위하여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우선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오신 장로님께 뒤늦게나마 환영의 인사를 올립니다. 이 곳 플로리다에는 늘푸른 골프장, 그리고 던지자 마자 입질을 하는 환상의 낚시터가 많아 은퇴생활 하기에 정말 좋은 ...

    플로리다로 은퇴를 즐기러 오신 장로님께
  • 대체, 언론인은 누구인가? [1] file

    [허리케인 칼럼] 다시 돌아보는 언론인의 기본 자세   리영희 교수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암울했던 70년대 중반, 몇 권의 시대 풍자적 저작으로 유신정권의 철권통치에 감히 도전하고 나선 교수가 있었다. 그는 군 장교 시절 사병에게 돌아갈 식량을 한...

    대체, 언론인은 누구인가?
  • 국정 교과서 ‘유감’ file

    1492년 아메리카를 발견한 후 스페인으로 돌아간 콜럼버스는 다음해 17척의 군함을 이끌고 되돌아왔다. 피의 역사는 그의 배가 카리브 해안에 닿으면서 시작했다. 기록에 의하면 1493년 800만명이었던 에스파뇰라섬의 원주민 타이노족은 콜롬버스가 이 땅을 밟은 지 3년...

    국정 교과서 ‘유감’
  •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file

    미국의 사멸위기 언어연구소에서 100년 안에 세계 언어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적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는 7,000여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2주에 하나꼴로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500년 동안 세계 언어의 절반 가량이 사라졌...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 '엄지'의 삽질 file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 속에는 ‘엄지’라는 불리우는 존재가 등장한다. 존재 ‘엄지’는 순식간에 ‘찍어 누르기’로 개미의 목숨을 앗아가는 절대파워의 소유자다. 개미 한 마리의 존재가치는 한없이 미력하고 나약하다. 그러나 그것은 ‘1’일 때의 얘기다. 인간 ...

    '엄지'의 삽질
  • 지중해의 비극 file

    한 장의 사진이 지구촌을 울리고 있다. 지난 2일, 싸늘히 식은 몸으로 터키의 휴양지 보드룸 해변에 떠밀려 온 인형같이 작은 몸. 무심한 파도가 연신 얼굴을 적셔도 해변에 엎드려 누운 아이는 꼼짝하지 않았다. 올해 겨우 3살이었던 에이란 쿠르디는 이슬람 극단주의 ...

    지중해의 비극
  • 뉴욕의 별난 ‘負褓商(부보상)

    목록 글쓰기 뉴욕의 별난 ‘負褓商(부보상)’ 글쓴이 : 韓 泰格 날짜 : 2015-09-01 (화) 10:36:58 #qr_code_layer { display:none; position:absolute; background-color:#fff; border:2px solid #ccc; padding:10px; width:280px; } #qr_code_layer .qr_code_google ...

    뉴욕의 별난 ‘負褓商(부보상)
  • 칼날 위에 서다

    분단의 세월 70년을 지내오면서 우리 민족은 서로를 향해 칼을 품고 살아왔다. 위태로운 그 칼날 위에서 숨 죽이며 서 있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21일(금)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전방지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다음날인 22일(토) 오후 5시 30분까지 대북...

    칼날 위에 서다
  • 우리 말 속의 ‘일본말’

    광복 70주년이다. 간악한 일본이 조선을 병탐한 뒤 우리 민족을 능욕했던 35년의 시간이 두 번 지나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35년의 일제강점기동안 일본은 엄청난 양의 ‘그들의 것’을 우리 강토에 심어놓았다. 창씨 개명을 통해 민족정신을 말살했고, 신사참배로 황국신...

    우리 말 속의 ‘일본말’
  • 막말과 망언

    막말과 망언이 화제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후보의 막말이, 한국에서는 대통령 동생의 망언이 온 나라를 들끓게 하고 있다. 미국은 요즘 공화당 대선 경선에 나선 부동산 갑부 도널드 트럼프의 막말로 뜨겁다. ‘언론은 트럼프에 중독됐다’는 어느 분석가의 말처럼 하루도...

    막말과 망언
  • 일상화된 ‘피비린내’

    1492년 콜럼부스의 배가 카리브 해안에 닿은 것은 역사적인 실수였다. 이 실수를 미국 역사는 ‘위대한 신대륙의 발견’이라 부른다. 광활한 대지 위에서 목가적인 평온함을 영위했던 원주민들에게 탐욕 가득한 유럽인들의 침입은 재앙이었다. 평화롭던 원주민들의 땅에 ...

    일상화된 ‘피비린내’
  • 해킹정국

    바야흐로 해킹정국이다.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 의혹에 이어, 국정원이 대선을 목전에 둔 시점에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을 상대로 불법사찰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힘이 실리고 있다. “대북 정보전을 위한 정당한 활동이었다.” 이병호...

    해킹정국
  • 호락호락하지 않은 깃발

    노예제도를 정당화 하기 위한 미국의 인종차별은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가 해방된 지 15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왔지만 여전히 현실 속에 건재해왔다. 그 상징이 남부연합기의 존속이었다. 그러나 21세의 어린 백인 우월주의자가 저지른 참극 이후 미국은 150여년의 세월...

    호락호락하지 않은 깃발
  • 민낯 뒤의 가면

    그리스 시대,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가면’을 썼다. 가면을 쓰는 순간, 배우 자신은 가면 뒤에 철저히 가려졌다. 맡은 배역의 인격만이 무대 위에 존재할 뿐이다. 고대의 연극이 가면을 사용한 이유는 배역의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두 개의 가면을 쓰면...

    민낯 뒤의 가면
  • 모방과 표절

    스티브 잡스는 인류의 혁신을 이끌었다. 한 때 그를 가리켜 외계인이라는 우스개소리도 있었다. 지구행성에 온 외계인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별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선보인다는 농담이 진담처럼 덧붙여졌다. “우리는 위대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

    모방과 표절
  • 리플리 양성소

    알랭들롱이 열연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영국의 여류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쓴 소설 ‘재능있는 리플리씨’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별 볼일 없는 주인공이 재벌 아들인 친구를 죽인 후, 죽은 친구의 신분으로 위장해 새로운 삶을 산다는 내용이다. 주인공 이름도 ...

    리플리 양성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