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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크,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그들이 돌아온다.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팬을 보유한 헐리우드 마블사의 초대형 흥행작 '어벤저스' 시리즈의 속편이 개봉을 앞두고 있어, 영웅들의 귀환을 기다린 이들의 기다림은 비로소 끝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열기가 한국에서는 유난히도 뜨겁다. 이는 바로, 어벤저스의 영웅들이 '지구 방위'라는 본연의 임무 외에도, '한국 홍보'라는 보조 임무까지 맡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알다시피, 마블사는 이번 작품의 주요 배경으로 한국의 서울을 선택했고, 많은 한국 네티즌들은 이를 통해 한국의 모습이 전세계인들에게 간접 홍보가 될 것이라 내심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와 정부 당국은 영화 상영에 따른 광고 효과 1566억원, 영화 외 미디어 노출로 인한 간접광고효과 2200억원, 관광 수입 증대 효과 327억원 등 약 4000억원에 달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발표했었고, 이를 위해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약 12시간에 가까운 마포대교 양방향 전면 통제를 비롯한 파격적인 편의를 제공했다. 물론 서울 시민들은 '한국을 전세계에 홍보 할 수 있다'라는 거국적인 대의명분 앞에 기꺼이 (혹은 강제적으로)그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최근에 공개된 예고편을 본 네티즌들의 반응에는 아쉬움도 묻어났다. "한국 사람은 저곳이 서울인지 알겠지만 외국인들은 아무런 감흥이 없을 듯", "콘크리트 건물만 가득 보여서 부끄럽다", "경복궁이나 광화문 같은 곳은 안 나오나" "한국만의 색이 없다" 등의 의견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뚜껑을 열어 봐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예견한 이들도 있었는데, 어벤저스 시리즈 자체가 배경이 아닌 캐릭터들 간의 스토리 위주의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대부분이 CG로 덮어 씌어진 파괴 장면들이라는 점, 이로 인해 아름다운 서울의 모습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화면 가득 낭만을 담아 파리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비포 선셋'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어벤저스 영화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인 이미지는, 최첨단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서울의 모습 정도가 타당할 것이다.


 자, 그렇다면 "한국적인 모습이 없어 아쉽다"라는 네티즌들의 볼멘소리는 과연 한국 내에만 국한된 현상일까? 700만 해외동포 시대를 사는 오늘, 외국 현지에서 보여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현지인들이 가장 쉽게 한국의 문화를 경험하고 이미지를 갖게 될 코리아타운의 모습을 살펴보며 생각해보자.


 ◇ 'Korea'가 없는 '코리아타운'


 10여 년 전 처음으로 로스엔젤레스의 코리아타운을 방문하게 되어 가슴이 설레었던 기억이 있다. 100만의 한인 동포들이 살고 있는 코리아타운에 가면 한국을 옮겨 놓은 듯한 모습과, 이역만리 미국 한복판에서 한국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알릴 수 있는 많은 볼거리들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코리아타운으로 접어들면서 그 기대감은 실망으로 바뀌어버렸다. 코리아타운임을 상징할 수 있는 한국 전통 양식의 구조물은 하나도 없고, 단지 'Koreatown'이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 하나와, 사방을 어지렆게 뒤덮고 있는 한글 간판들뿐이었다. 한국의 문화를 상징할만한 그 무엇도 없는 이곳은 'Koreatown'이 아닌 단지 “코리안들이 모여 사는 상업 구역”이라고 불리는 게 더 나을 법 했다.


 이와 반대로, 차이나타운은 중국의 성처럼 지어진 Main Gate를 통해 주 광장인 Central Plaza로 들어가면서 마치 중국의 한 마을을 옮겨 놓은듯한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중국을 대표하는 색깔인 붉은색으로 칠해진 기와 건물들과 황금색 용들 사이에 둘러싸여 중국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찾아 사진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매년 2월에는 중국의 새해를 기념하기 위해 폭죽 쇼와 함께 용/사자 춤으로 성대한 퍼레이드를 펼치며 중국의 문화를 뽐낸다.


 문화와 전통을 중시하는 것은 중국인들만이 아니었다. 1884년 독일인 마을에 일본인 요리사가 살기 시작하면서 그 시초가 된 일본인들의 거주 지역인 'Little Tokyo'에서도 일본의 문화를 잘 느낄 수가 있는데, 이곳에는 일본인들이 노력하여 만든 일본식 정원만도 14개에 이르고, 일본 전통의 망루나 전원 마을도 있어, 나도 모르게 일본의 문화에 둘러싸이게 된다.


 실제로, 구글의 이미지 검색 창에 'LA Koreatown', 'LA Little Tokyo', 그리고 'LA Chinatown'을 차례대로 검색해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LA Little Tokyo'와 'LA Chinatown'은 그 상징이 되는 전통 건물들을 대상으로 삼아 찍은 기념사진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비하여, 'LA Koreatown'의 경우에는 갈비나 김치 같은 음식의 사진이나 노래방을 즐기고 있는 인물들의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외국인들의 눈에는 코리아타운을 대표할 만한 시각적인 상징물이나 볼거리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 유사점은 한국 내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고도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 가옥들이 헐리고 무미건조한 성냥갑 아파트들이 가득한 서울의 모습에는 한국을 상징할만한 볼거리가 많이 없다는 지적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50만 동포가 산다는 뉴욕의 코리아타운 역시 예외는 아니다. 차이나타운에는 중국 전통 건축물을 본 딴 대형 건축물도 있고, 춘절과 같은 명절이면 가게마다 걸린 홍등을 필두로 온통 붉은 물결이다.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어대느라 정신이 없다. 이에 비해, 우리는 한글 간판 외에는 아무 것도 보여줄 것이 없다. 보여줄 것이 없다는 것은 바꿔 말해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요소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인들은 스스로 홍등을 내걸었고, 일본인들은 망루와 정원을 꾸미며 자신들만의 색깔과 볼거리를 제공해 왔다. 언젠가 코리아타운에도 아름다운 청사초롱의 물결이 넘치고 이를 구경하기 위해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한국 내에서 더욱 활발히 이루어져야만 한다. 기존의 문화유산을 더욱 잘 보존하고 가꾸어내며, 현대의 것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번 어벤저스 영화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기대에 못 미친다 하더라도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말자. 어벤저스의 영웅들은 지구를 지키기에 바쁘고, 우리의 문화를 지키고 가꾸어 홍보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글=강우성




* 필자는 뉴욕대 대학원 재학 때부터 파워블로그 '코리아브랜드이미지닷컴'을 통해 저평가된 코리아 브랜드와 정체성을 환기시키는 캠페인을 주도해 왔다. 2010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뉴욕 한복판에서 미국인들에게 한글 티셔츠 1000장을 배포하고 할로윈 퍼레이드엔 사상 처음 고구려 장수 등 한국 캐릭터 수십 개를 소개한 주역이기도 하다.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에 '강우성의 오 필승 코리아'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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