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무덤 2차 조국순례기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1512858421060.jpg

 

 

나는 부두에 도착해 늦은 점심을 먹었다. 슬로시티답게 음식도 천천히 나왔다. 여객터미널에서 배 시간을 보니 여서도 배가 4시 출항이다. 다리가 불편해 걷는 것을 최대한 줄였지만 슬로길과 범바위 등산을 합하면 8Km 이상 걸은 셈이다. 나는 식당에 퍼질러 앉아 주인아주머니와 아들 상대로 대화를 시작했다. 어머니 식당일을 거들어주는 젊은이에게 섬에서는 좀체 젊은 사람 보기 힘들다고 했더니 자기도 육지에서 살다 고향으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청산도 뿐 아니라 많은 섬이 젊은이가 없어 일손이 딸려 그 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우는데 청산도는 관광지라 그나마 젊은이들이 있는 셈이라고 했다. 오후 4시 배가 들어왔다. 완도행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작은 철선이다. 그래도 차량 서너 대 실을 수 있는 페리선이다.

 

해상에서 바라보는 청산도는 역시 아름답다. 나는 청산도 만큼은 언젠가 사흘 정도 묵으며 마라톤 코스 길이의 슬로길을 모두 걷겠다고 마음먹었다. 배가 항구를 벗어나자 몹시 흔들려 견딜 재간이 없다. 선체기둥을 꼭 붙들고 있는 나를 보고 선장이 이곳은 내해가 아닌 제주 앞바다로 이 정도는 보통이라고 했다. 몇 명 안 되는 선원들은 모두 선실에 누워 있었다. 나는 한 시간 내내 선미 쪽 쇠기둥을 붙잡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배에서 내일 때 선장이 다음부터는 배가 많이 흔들리면 배 중간부분 마루에 누워있는 것이 좋다고 귀띔했다. 아하, 그래서 선원들이 모두 객실바닥에 누워 있었구나.

 

여서도는 청산도 부속섬으로 배로 한 시간 걸리며 제주도로 가는 길목이다. 둘레는 10Km로 두 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는 거리다. 주민은 30세대 60여 명에 불과하다. 재미있는 것은 주민이 귀하다보니 마을중앙 돌비석에 전체주민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모르긴 해도 주민 전체 이름을 새긴 비석은 이곳이 유일할 것이다.

 

 

1512858427685.jpg

 

 

여서도에 주민이 정착한 것은 오래전이다. 신석기시대 유물까지 발견되었다. 내가 섬들을 여행하며 놀라는 것은 그 옛날 조상들이 외딴 섬까지 어떻게 흘러 들어와 자손을 번식하며 생활했을까 하는 것이다. 울릉도에는 우산국이란 국가까지 존재했다. 여서도 역사도 상당히 길겠지만 기록으로는 1690년대 강 씨 성 가진 사람이 이주한 후 다른 성 씨 사람들이 합류해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여서도'(餘鼠島), 일제 때는 '태랑도'(太郞島)로 부르다 광복 후부터 ‘아름답고 상서로운 섬’이라는 의미로 '여서도'(麗瑞島)로 부른다.

 

해발 352미터 여호산이 중심을 이루며, 2백 개 넘는 완도의 섬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해 제주까지는 40킬로로 여소산 정상에서는 제주도 거문도 청산도까지 보인다. 산 중턱에 조선시대 봉화대가 있다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왜구침략을 방어하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교통은 무척 불편하다, 완도와 청산도에서 하루 한 편 씩 오간다.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과 농업에 종사하며 일부는 소를 방목하고 있다. 농산물은 주민들의 자급자족용이다. 그러나 해산물은 민어, 돌돔, 방어, 갈치, 돌김, 미역, 톳 등이 풍부해 연중 낚시꾼이 찾아든다. 파출소와 보건진료소 경유발전소가 공공기관이다. 청산초등학교 분교가 있었으나 학생이 없어 6년 전 폐교됐다. 주민들 식수는 계곡에서 솟아나는 맑은 샘물이다. 연중 약수를 마시고 사는 셈이다.

 

 

1512858423793.jpg

 

 

오후 5시 도착한 나는 파출소와 마을회관을 지나 몇 집 안 되는 민박집 가운데 깨끗해 보이는 집을 찾아 방을 얻었다. 주인아주머니도 섬사람답지 않게 세련된 모습이었다. 나는 어두워지기 전 골목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외계에 온 느낌이다. 이곳의 집들은 높은 돌담으로 지붕도 보이지 않는다. 집집마다 높다란 성벽에 둘러싸인 성(城)이었다. 집마다 임금과 왕비 공주와 왕자들이 사는 동화책에 나오는 성들처럼 느껴졌다. 돌담마다 위쪽에는 바람이 통하도록 조그만 구멍이 있었다. 마치 외부세계와 통하는 소통의 창구처럼 보였다. 나는 정신없이 신기한 풍광(風光)들을 사진에 담았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나는 어디에선가 여서도를 ‘한국의 이스터 섬’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았었다. 남태평양 외딴 섬에 거대한 석상을 세워놓고 홀연히 자취를 감춘 모아이의 섬 말이다.

 

저녁에 민박집 주인이 들렸다. 경유발전소 책임자다. 80Kw 발전기 3대 중 2대만 가동한다고 한다. 지금은 경유발전이지만 오래지 않아 태양광 발전으로도 이 섬의 전력수요는 너끈히 감당할 것 같아 보였다. 요즘 한국에는 지역마다 태양광 발전설비가 붐을 이루고 있다. 안전하고 공해도 없는 태양광발전은 아무리 권장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민박집 남자는 저녁만 먹고 곧바로 발전소로 갔다, 언제 정전사고가 날지 몰라 늦게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민박집 실내가 너무 아기자기해 식사 후 양해를 얻어 내실까지 둘러보았다. 아기자기한 소품과 수예품으로 정갈하게 꾸며져 있었다. 대부분 주인여자 작품이라고 했다.

 

새벽에 다시 섬 일대를 둘러보았다. 워낙 작은 섬이라 볼거리는 많지 않았지만 높다란 돌담은 상상을 초월했다. 전날 청산도 돌담길 보고 놀랐는데 여서도에 비하면 규모에 있어 비교가 안 된다. 나는 아침식사도 거르고 실컷 쏘다니다 민박집을 나와 부두로 향했다. 다시 청산도에 들러 점심식사하고 오후 5시 출항하는 완도행 여객선에 승선했다. 멀어져가는 청산도를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다시 오리라 다짐했다. 3박4일이면 청산도 슬로길 일주와 여서도 여호산 등반에 충분하리라,

 

 

1512858429584.jpg

 

 

<다음은 보길도>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bmd

 

 

  • |
  1. 1512858421060.jpg (File Size:138.6KB/Download:22)
  2. 1512858423793.jpg (File Size:180.0KB/Download:27)
  3. 1512858427685.jpg (File Size:95.4KB/Download:22)
  4. 1512858429584.jpg (File Size:75.7KB/Download:22)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 트럼프는 북 병진노선 복귀하지 않도록 하라

    [시류청론] 더 괴롭히면 ICBM 발사 가능성 커져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완전 중단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약속을 지키는 척 군사훈련 이름만 ‘키리...

    트럼프는 북 병진노선 복귀하지 않도록 하라
  • ‘우리 행성에 이런 개종자들이..’ 노동신문 논평 file

    하노이회담 관련, 일본 격렬 비난 화제     Newsroh=소곤이 칼럼니스트         ‘엎어치고 메치고 언어를 갖고 노네.’   때로는 가슴을 후벼파는 신랄(辛辣)한, 때로는 해학(諧謔)과 기지(機智) 가득한 문장들. 노동신문의 논평(칼럼)을 보면 드는 생각이다.   하노이 북...

    ‘우리 행성에 이런 개종자들이..’ 노동신문 논평
  • 공덕과 복덕 file

    원영스님 지상법문     철늦게 눈이 많이 내렸다. 불안하지 않다. 경험에 의하면 얼마 후면 녹아 없어질 것이다. 경험하는 것들은 모두 인연(因緣)에 의해 생겨나고 소멸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다. 인연이 모두 없어지면 생멸이 없는 적멸(寂滅)이라고. 열반경(涅槃...

    공덕과 복덕
  • 바람불어 싫은 날 file

    내 몫은 내가 챙겨야...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오면서 eat pray love 인도, 인도네시아 편을 다 들었다. 30대 중반 여성의 구도여행기였다. 생각보다 내용이 좋다. 영화도 있는데 원작보다 뛰어난 영화를 별로 본 적이 없어 그다지 기대는 안 한다. 인...

    바람불어 싫은 날
  • “품삯 한 데나리온” file

    [종교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 김이수 형제(전 헌법재판관) =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그는 품삯을 하루에 한 데나리온으로 일꾼들과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원으로 보냈다. [...]...

    “품삯 한 데나리온”
  • 생각으로 컴퓨터 작동하는 기술

    첨단 기술 개발 소식 듣고 유언 남기지 못한 아내가 떠올라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 유니버시티 교수) = 2년 전 놀라운 기술이 개발되어 세인의 관심과 주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런던발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손발은 물론이고 온...

    생각으로 컴퓨터 작동하는 기술
  • 12학년 2학기 잘 보내기(2)

    연방정부 재정 보조 프로그램 ‘팹사’ 확인해야 (워싱턴디시=코리아위클리) 엔젤라 김(교육 칼럼니스트) = 지난 주에는 12학년 학생들이 어떻게 고등학교의 마지막 학기를 지내야 할 지 일반적인 내용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오늘은 대학 지원과 관련하여 빠진 일은 없...

    12학년 2학기 잘 보내기(2)
  • ‘미국에 가면 미국법을 따르라’ file

    소수민족으로 이 땅에 살면서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독자) = 나는 몇해 전에 영등포 문래동에 모여 사는 동포들의 삶을 TV 방송 다큐 프로에서 보았다. 같은 민족이니 생김새도 같고 언어 음식 의복 등 모든 것이 같으면서 그 동포들은 한국인을 ‘원주민’이라고...

    ‘미국에 가면 미국법을 따르라’
  • 언더그라운드 터미널 file

    오늘은 베이컨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영국 철학자 말고 식품 베이컨이다. 철자는 같다. Bacon.   일어나니 비가 내렸다. 간단한 식사 후 출발했다. 처음 가는 곳이라 낯설다. 좁은 마당이 문제가 되는 시기는 지났다. 1차 배달 후 2차 배달지로 향했다....

    언더그라운드 터미널
  •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시킨 트럼프, 이유는?

    코헨 청문회 증언 충격파와 반 트럼프 세력 불만 억제 노린 듯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북미 2차정상회담 ‘결렬’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기에, 한반도 냉전 유지를 바라던 한.미.일의 극우 세력 및 미국의 북미 관계 개선을 싫어하는 세력을 제외한...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시킨 트럼프, 이유는?
  • 소련, 한국전 비밀전쟁 수행 file

    미국, 중공개입보다 MiG기에 놀라 미그15기, B-29 원폭공격 원천봉쇄 냉전후 한국전 참전 공식 인정     Newsroh=김태환 칼럼니스트     우리는 6.25 동란이라 부르나, 온 세계는 한국전쟁(Korean War)이라 부르는 전쟁기간 동안 여러 가지 생각지도 못한 이변들이 일어...

    소련, 한국전 비밀전쟁 수행
  • 영어공부와 로맨스소설 file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새벽 3시 기상. 8시간 휴식은 지났지만, 아직 10시간 휴식은 안 됐다. off duty drive로 바꾸고 월마트로 향했다.   이 월마트는 주차장은 넓지만 들어가는 입구가 아주 좁다. 다시 대로로 나와 트럭 화물 배달하는 경로로 들어갔다...

    영어공부와 로맨스소설
  • 좋은 직원은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 진다(2)

    적절한 훈련 통해 태도 바꿔주면 유능한 직원으로 변신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 유니버시티 교수) = 좋은 직원을 만드는 11개 원칙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전 칼럼에서 다섯 가지 원칙을 말씀드렸습니다. 즉 1) 상사가 좋은 모범을 보이라...

    좋은 직원은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 진다(2)
  • 12학년 2학기 잘 보내기(1)

    좋은 성적 유지, 방과 후 활동 등 리듬 잃지 말아야 (워싱턴디시=코리아위클리) 엔젤라 김(교육 칼럼니스트) = 지금쯤 고등학교 졸업반에 있는 학생들 중에는 지원 마감일 이 늦은 (1월 15일, 2월 1일 등)일부 학교에 막바지 지원하느라고 바쁜 학생도 있을 것이고 조기...

    12학년 2학기 잘 보내기(1)
  • “제일 못난 짓 한 대통령” file

    미국 대통령의 날을 지내며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독자) = 2월 18일은 미국의 ‘대통령의 날’이다. 멜본은 오늘 낮 기온이 기상 관측 이후 최고의 온도를 기록했다고 한다. 화씨 89도였다. 올랜도는 85도였다. TV 에서는 어제 오늘 미국 역대 대통령중에 전쟁을 ...

    “제일 못난 짓 한 대통령”
  • 삼일절은 삼일혁명이다 file

    “을사늑약 경술합방 원천무효” “일제강점이 아니라 경술왜란이다”     Newsroh=김창옥 칼럼니스트     혁명(革命)의 사전적 의미는 “기존의 사회 체제를 변혁하기 위하여 이제까지 국가 권력을 장악하였던 계층을 대신하여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탈취하는 권력 ...

    삼일절은 삼일혁명이다
  • 독수리형제의 일원이 되다 file

    40번 국도는 피하라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오전 4시 30분 기상, 5시 20분 출발. 펜실베이니아에서 메릴랜드로 갈 때 다시는 40번 국도는 타지 않겠다. 거리가 조금 짧지만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으로 시간도 연료도 더 낭비다. 심한 곳은 등판...

    독수리형제의 일원이 되다
  • 북미정상, 드디어 한반도 평화의 길로!

    [시류청론] 북의 핵무력 완성이 일궈낸 쾌거 (마이매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하노이 파르크 호텔에서 회동 5일 만인 2월 25일 저녁에 있었던 김혁철 북한 대표와 비건 미국 대표의 막판 고위급실무회담은 불과 30분 만에 종료, 비건이 오른손가락 치켜세우기로 ...

    북미정상, 드디어 한반도 평화의 길로!
  • 하나님일 하면서 돈도 벌고 싶은 놈 file

    [종교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서(하늘밭교회) = 분당 ㅎ교회를 다룬 기사를 보았다. 막장이다. 할 말이 없다. 물론 그런 곳을 교회로 알고 다니는 분들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다. 신대원시절 한 무리의 목사들이 채플이 끝난 직후 찾아왔다. 부흥사목사들이...

    하나님일 하면서 돈도 벌고 싶은 놈
  • 60시간 만에 받은 화물 file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오전 7시, 걸어서 인터내셔널 서비스샵으로 갔다. 수리가 끝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가이암은 움직인 흔적이 없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프라임 트럭이 많이 밀려있어 수리할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오늘 중으로는 수리에 들어...

    60시간 만에 받은 화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