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 이야기] '허무'의 파문이 일 때면

 

(탬파=코리아위클리) 신동주 = 요즘 나는 늙어 가는 징조를 여러 가지로 느끼고 있다. 한 쪽 귀가 잘 들리지 않고 목소리도 변하는 것 같다.

 

이런 징조들은 간혹 내 마음 깊은곳에 파문을 일으키고 그 파문은 계속 번져가 소박한 삶을 사는 나를 잠식한다. 잠깐 방관하는 사이에 나를 휩싸는 그 파문은 급기야 목구멍으로 타고 올라와 탄식과 같은 한 숨을 뱉어낸다. 그 한 숨 속에 "오랜 이민생활 동안 정말 힘들게 일을 했다. 그동안 이룬 것도 없고 몸만 늙어가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라고 토해내곤 한다.

 

갑자기 왜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일까?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만 하고 마냥 쉰다 한들 뭐라 할 사람도 없다. 황당한 일이다.

 

한 번 파문을 일으킨 생각들은 마치 물이 마른 모래를 적시며 스며는 듯 내 속으로 계속 번져간다. 이럴 때면 내 자신이 점점 이 생각에 설득 당하고 있는 것 같아 두렵기 까지 하다. 외롭다는 생각, 인생이 참으로 힘들다는 느낌, 인생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지는 듯한 상실감, 인생은 덧없다는 허무감 등 이런 복잡한 감정들이 실 타래처럼 뒤엉킨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이전에 세탁소를 하면서 많은 고객들을 접했지만 게중에 유독 인상에 남던 사람이다.

 

산타 마리아 라는 이름의 노인인데 우리 가게에서는 그를 멋쟁이 영감이라고 별명을 붙였다. 또 어느때 부터인가 인보이스에도 이 별명으로 적기 시작했다.

 

이 노인은 나이가 85세 인데도 허리나 등이 굽지도 않고 자세가 한 점 흐트러지지 않은 반듯한 분이었다. 게다가 키는 6척이 넘고 군살도 전혀 없는 건강한 체격을 가졌다.

 

매주 혹은 격주에 한 번 들르는 세탁소를 방문하는 데도 구두 신고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중절모자를 쓰는 등 아주 말쑥한 정장차림을 하고 왔다. 세탁물 색깔도 하얀색, 검정색, 회색, 노란색, 밤색, 핑크색, 오랜지색 등 다양했는 데, 평소 셔츠의 색과 타이의 색을 조화시키는 차림새로 보아 당연했다. 또 자세히 눈 여겨 보면 모자도 색상이 다양해 양복 색과 어울리게 쓰고 왔다.

 

그래서인지 세탁소를 올 때마다 매번 다른 옷을 입고 온다는 느낌을 받았는 데, 영감의 모습이 보일 때 마다 나는 아내더러 "영감 타이와 모자 좀 봐, 오늘은 또 달라" 하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의 젊었을 때의 직업이 무척 궁금했다. 한 번은 대화 중에 "혹시 영화배우 하시지 않았냐" 고 운을 띄워 보았다. 그런데 그의 답은 우리 기대와는 매우 달랐다. 그는 정부 관련 직장에서 일했던 공무원이었다.

 

나는 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또 옷은 계절에 맞고 상황에 맞는 편안한 옷 차림이면 무난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산타 마리아 할아버지가 다시 떠오르는 것은 '그의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는 공무원 출신으로 계획된 삶을 살고 있었겠지만 지루했을 것이다. 그 지루함을 떨쳐 내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활기와 생명력을 추구하면서 건강 관리를 하고 새롭게 가꾸고자 했을 것이다.

 

그는 기나긴 세월을 자신의 멋을 가지고 사는 사는 사람이며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분명 남도 기분 좋게 했다. 그는 아마 남은 여생도 멋있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늙어서 한숨 보다는 산타마리아 할아버지 처럼 깨끗하고 멋을 즐기며 사는 삶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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