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LA=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얼마 전에 제가 쓴 글, "저는 거지 목사입니다"라는 글에 moita라는 아이디를 사용하시는 분이 이런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목사님의 고백에 의문이 많고 따라 하기 힘들겠지만, 어느 날 그렇게 된다면 크게 힘이 될 듯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분은 항상 좋은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토를 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댓글을 보는 순간 제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이분의 저에 대한 신뢰가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분인데 이런 신뢰를 보내준다는 것이 많이 고마웠습니다. 예, moita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moita님을 위해 가난을 주제로 글을 써보려 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제가 오만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성령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예수님에게 임했고,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 그분은 가난한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은 근본적으로 가난한 자들과 관련된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마11:5. 눅4:18, 눅6:20, 눅7:22 참조)

그런데 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가난이라는 말만 들으면 진저리를 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었을까요? 적어도 가난에 대해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가난을 주제로 한 제 글들에는 거의 예외 없이 멸시의 손가락질과 가난한 자에 대한 무례함이 가득 담긴 댓글이 달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가난한 자에게만 복음이 전파될 수 있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가난을 알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은 아무런 가치도 소용도 없는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 전파됩니다.

돈과 가난에 대한 이해와 태도

오래 전 '그 나라 공동체'라는 공동체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 공동체의 살림을 도맡아하던 총무님이 갑자기 공동체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모님이 공동체의 재정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은 늘 돈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던 돈을 관리하는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 하셨습니다. 저는 사모님의 그런 태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저는 많은 돈을 벌어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하려는 열망으로 가득했고, 돈에 취약한 인간의 속성을 제대로 알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고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돈의 효용에만 눈이 팔려 있었던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경제적 몰락을 경험한 후에야 돈이 가지고 있는 위력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극한 가난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저 개인에게는 극한 가난이었던 가난의 경험이 제게 복음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돈에 대한 이해 역시 달라졌고, 돈을 두려워하던 사모님이 무척 영적인 분이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돈이 영적이라는 사실을 제게 깨우쳐준 고마운 분입니다.

돈과 가난에 대한 이해와 태도는 신앙의 핵심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시대에도 돈의 사용이 영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분들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난에 대해서도 똑같은 태도를 취하는 분들은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영적인 인물들을 살펴보면 가난은 예외 없이 그런 분들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프란치스코와 같은 사람은 가난을 자신의 신부라고 여길 정도였고, 모든 시대의 진정한 영적인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모든 소유를 버리는 것으로 영적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가난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거나, 복음을 모르는 사람 혹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으로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복이 있다고 말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가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에게 적대감을 드러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는 말씀으로 복음을 각색한 기복 신학이 실뱀처럼 온 교회를 흐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서가 가난을 칭송하고 있고, 기꺼이 가난해지려 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예수님의 제자도, 진지한 신앙인도 될 수 없다는 이 사실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이냐 돈이냐

자끄 엘륄은 그의 책 <하나님이냐 돈이냐>에서 성서가 말하는 가난의 정의를 '하나님 이외에는 어떤 희망도 없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상황을 타개할 아무런 대책이 없는 속수무책의 무방비 상태를 의미합니다. 물론 주변에 그를 도울 아무런 대책도, 사람도 없는 절망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아무런 대책도 없는 무방비 상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냐 돈이냐는 질문은 이 성서적 가난에 비추어 판단해야 합니다.

엘륄의 하나님이냐 돈이냐, 라는 질문은 지나치거나 회피할 수 없는 기독교 신앙의 근원적 질문입니다. 그리스도인 또는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독교 신앙을 가지기 전에 먼저 이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라고 답한다면 그는 하나님 이외에는 어떤 희망도 없는 상태를 기꺼이 택한 것이며 그것은 곧 가난을 선택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논리의 비약이나 지나친 억측이라는 항의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그분에게 모든 것을 의뢰하겠다는 선택이며 결코 재물을 의지하거나 재물로 어떤 일을 도모하거나 해결하려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서가 말하는 가난이란 단순히 재물이 없거나 부족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이란 하나님과 돈 중에 하나님을 선택한 사람의 삶의 방식이며, 그것은 곧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난 여정 역시 그 길이었으며 예수님이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좇으라고 한 말의 의미 역시 동일합니다. 따라서 가난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려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숙명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닌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체험과 하나님 백성

가난과 관련하여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이스라엘을 생각해야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광야 체험은 우리의 신앙에서 가난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역설합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체험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가장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훈련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광야라는 곳은 사람이 머물기에는 너무도 척박하고, 생존 자체가 힘든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충분한 소유도 없고, 광야에서의 삶으 경험도 없었던 이스라엘이 단체로 생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극한 가난에 처했습니다. 광야에서의 불타는 태양의 열기와 밤의 한기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 열기와 한기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가고서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물은 더욱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듣도 보지도 못했던 만나라는 음식이 날마다 공급되었고, 바위에서 물이 폭포수처럼 솟구쳤습니다.

2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물의 양은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양입니다. 그런데 그런 물이 모래바닥을 판 것도 아니고 바위에서 솟구쳤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공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그들은 그렇게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하는 삶을 배우고 익혀야만 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배우고 익히고자 이스라엘은 열흘이면 지날 수 있는 광야 길을 40년이나 헤매야 했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힘겨운 삶을 지켜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런 삶을 40년이나 지속해야 했습니다. 그 기간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출애굽 1세대들이 모두 죽었을 만큼 긴 기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극한 가난 속에서 죽어갔지만 그렇게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한 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한다면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백성은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교리를 믿고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약간의 봉사와 자선을 베푸는 것으로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모든 것을 버린 사람, 다시 말해 기꺼이 가난으로 뛰어드는 사람만이 오직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파르헤지아

그렇다면 가난이 이처럼 기독교 신앙의 관문이며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과정임에도 이 시대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난을 외면하거나 경원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셀 푸코의 '파르헤지아'라는 단어가 생각납니다. '파르헤지아'는 '진실을 말하기'란 뜻입니다. 철학자인 푸코는 철학이 '파르헤지아'와 관련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실을 말해 본 사람은 모두 알게 됩니다. 진실을 말한다는 것이 생각과 다르게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향해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고, 너와 살며 견디는 것은 네가 벌어오는 돈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엄마에게 효도를 하고 말을 잘 듣는 이유가 엄마가 학비를 대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진실을 이야기하면 인생이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푸코는 '파르헤지아'를 말하면서, "진실을 말하는 순간 우리는 실존의 형태를 선택하게 된다."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진실을 말하면 우리의 삶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위기에 빠지고 내 삶이 다른 방식으로 결정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급적 진실을 말하지 않고 에둘러 돌아가거나, 어쩔 수 없이 진실과 마주치는 경우 오히려 진실을 부정하는 길을 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서의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장면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파르헤지아를 요구했습니다.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시며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고 물으셨습니다. 파르헤지아를 따라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 법, 율법에 갇혀 있던 바리새파 사람들은 끝내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파르헤지아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을 하는 것, 목숨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지만, 그 진실을 말하는 순간 자신들의 삶의 실존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소중하게 가꾸고 유지해온 권위가 무너지고,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가난에 대한 이해와 태도 역시 이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이 마비되지 않은 한, 조금이라도 성서를 진지하게 읽어보거나,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사랑의 섬김을 실천해 본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난이란 숙명과 같다는 것을 못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난이라는 진실은 두려운 것입니다. 자신은 물론 자신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두렵기 때문에 파르헤지아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파르헤지아, 즉 진실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진실을 잘 안다고 믿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난을 무시하려 하고, 가난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는 것은 탐욕이 선으로 추앙을 받으며 자본이 신이 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것은 명백하게 파르헤지아, 즉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돈 가운데 하나님을 선택한 사람은 가난을 선택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가난이라는 믿음의 시련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히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모든 것을 그분께 전적으로 의탁할 수 있는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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